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정작 그 상황 이후에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이렇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당시 각 국의 사정을 고려하면 그다지 밝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조선의 주도권을 두고서 해외 열강들이 경쟁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우리의 발언권은 극히 위축된 상태였고, 설령 러시아가 일본에 승리하였더라도 그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에 기회가 있었을 것인가와, 그 기회를 잡을만한 여력이 있었는가는 또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제정 러시아의 파멸에 있어서 러일전쟁 패배는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이었기에, 이것부터가 달라지면 제정 러시아의 존립 여부로까지 가정을 세워야하는 것도 이야기를 어렵게 합니다. 물론 당시 제정 러시아가 재정을 비롯한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불온한 상황이었기에 제정 러시아가 계속 존립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지만, 어느쪽이어도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영향력 행사를 유지하긴 어려웠을 것이라 보입니다.
영향력 행사가 어렵다는 것은 곧 다른 열강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해주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러시아의 입김이 덜했을 터이니 그 가운데 조정에서 정신을 차렸다면 분명 기회는 있었을 터이지만, 반대로 그 기회조차 붙잡지 못하였다면 지속적으로 팽창하려던 일본과는 필연적으로 엮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지도 시뮬레이션 장르 게임을 좋아하죠. ㅎㅎ 유로파 유니버셜리스, 하트 오브 아이언 등에서 열세에 속한 국가로 시작해서 활로를 찾아내는 식의 플레이를 즐겨보았습니다. 장르가 장르인데도 압박감이 대단하죠.
그런 의미에서 게임에서조차 열세에 위치한 나라가 활로를 찾기 어렵듯이, 현실의 국가. 조선은 그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씀처럼 러시아가 기술을 제공하였다 하더라도, 정작 조선의 내부 문제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경제적 잠재력은 이전 동아시아 게시판에 올라온 자료들을 보아도 충분했지만, 문제는 그 잠재력을 이끌어 올리기 위한 위정자들과 백성들의 인식, 관념, 시스템. 그 전반이 모두 부족하였습니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다른 국가들은 정책 6,7단계 찍고 있을 때 이쪽은 1단계부터 시작해야하는 내정의 차이가 심하였고 생각합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기술을 받아도, 이 기술을 활용할 능력이 떨어지는 상태입니다. 이러면 이야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옆에 청나라가 그 잘못된 예시를 몸소 보여주었지요.
솔직히 러일 전쟁이 아니라 한참 이전시기라면 모를까, 이미 제국주의시대가 범람하기 직전인 러일 전쟁 무렵에 위와 같은 여건을 단순히 기술력 하나만으로 극복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