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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5-10 22:45
[한국사] 산서성 리민보(利民堡)는 명나라 대에 설립되었습니다
 글쓴이 : 위구르
조회 : 294  

利民堡位于山西省朔州市,始建于明成化十七年(1481),嘉靖十八年(1539)设守备

리민보(利民堡)는 산서성(山西省) 삭주시(朔州市)에(于) 세워졌다(位)

처음(始) 명나라(明) 성화(成化) 17년(十七年)에(于) 건립됐다(建)

가정(嘉靖) 18년(十八年) 수비를(守备) 세웠다(设)

https://you.ctrip.com/sight/shuozhou903/134078551.html

万历四年增修

만력(万历) 4년(1576년) 증수했다(增修)

https://www.cidianwang.com/lishi/diming/6/44536xv.htm

즉, 현 산서성 삭주시(Shuòzhōu)의 리민보라는 지명은 명나라가 중기에 들어서고 붙였습니다

금사 24권에 리민채가 등장하는 대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興州,甯朔軍節度使。本遼北安州興化軍,皇統三年降軍置興化縣,承安五年升為興州,置節度,軍名寧朔,利民寨為利民縣,撥梅堅河徒門必罕、甯江、速馬剌三猛安隸焉。貞祐二年四月僑置於密雲縣。戶一萬五千九百七十。縣二:又有利民縣,承安五年以利民寨升,泰和四年廢

흥주, 녕삭군 절도사. 본래 요나라의 북안주 흥화군이다. 황통(해릉왕) 삼년(1143년) 군치를 흥화현에 두었다. 승안(장종) 5년(1200년) 흥주로 올렸다. 절도를 두었다. 군명은 녕삭이다. 리민채를 리민현으로 고쳤다 --- 중략 --- 현은 2개가 있다. 승안 오년에 리민채를 올렸다. 태화(장종) 4년(1204년) 폐했다

즉, 금나라의 흥주는 요나라의 북안주 흥화군의 자리에 설립됐고 그곳에 리민(利民)이라는 지명이 있었습니다. 리민채가 리민현으로 승격됐죠. 그러다가 서기 1204년에 폐지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77년 후에 명나라의 산서성 삭주시에 같은 이름의 (리민)보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점을 무시하고 산서성에 리민채가 있었다는 이유로 금나라의 흥주, 즉 요나라의 북안주가 지금의 삭주시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일은 몰라서 그랬다면 무식한 일이고 알면서 그랬다면 인면수심의 만행입니다

고작 지명이나 지도로 혁신적인 지리 비정을 벌이는 자들은 대게 저런 수법을 씁니다


추가(수정함)


새김.jpg


북경로의 범위입니다

북안주의 땅에 세워진 흥주가 이 북경로에 소속되어있었습니다

북경로의 핵심 도시인 중경 대정부는 11개 현에 호수 6,4047로 5를 곱하면 32,0235명이 

전체 인구였습니다

북경로의 전체 현이 42개이니 122,2715명이 살았습니다

1개 현 당 호수가 5822개입니다.

지금의 산서성 일대에 있었던 서경로의 중심인 서경 대동부가 호수가 9,8444였고 5를 곱했을 때 

인구는 49,2220명이었으며 현은 7개였습니다

서경로 전체의 현은 39개이므로 대입하면 전 인구가 274,2368명이 됩니다

1개 현 당 호수는 1,4063개입니다.


새진.jpg

파란색 범위: 북경로
빨간색 범위: 서경로

서경로가 북경로에 땅은 절반인데 현은 고작 3개가 적고 또 인구는 2.25배 가량에 달합니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이시윤님이 소개한, 흥주의 호수가 1,5970이고 현은 2개. 인구는 7,9850명입니다

북경로의 현 당 평균 호구수에 2를 곱한 값이 1,1644

서경로의 2개 현의 평균은 2,8126입니다

서경로가 아니라 북경로에 가깝죠

금나라의 흥주가 지금의 산서성에 있었단 주장은 정황상으로 봐도 맞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정 내용: 북경 대정부와 서경 대동부의 현과 호구수를 북경로와 서경로의 전체의 것으로 착각하고 기술해서 수정합니다(2024-05-11-14:37)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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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시윤 24-05-11 09:14
   
이게 현 지나국의 공식입장이네요

흥주(興州)

영삭군절도사(甯朔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 1143년 요나라 북안주를 군으로 격하시키고 흥화현(興化縣)을 두었다. 1200년(승안 5년) 흥주를 설치하고 절도를 두었으며 군명을 영삭군으로 하였다. 2현 15,970호를 거느렸다. 1214년 몽골제국에게 점령당했고 밀운으로 치소를 옮겼다.


흥화기 興化倚 청더시 서
1143년 북안주가 폐지되면서 흥화군을 두었고 대정부에 소속시켰다. 1200년 흥주를 세우면서 현으로 바뀌고 기곽(倚郭)으로 칭하게 되었다. 옛 한나라의 어양군 백단현의 땅이 있다.

이민현 利民縣 청더시 룽화현 북
1200년, 이민채(利民寨)를 현으로 승격시켰다. 필한맹안(必罕猛安), 영강맹안(寗江猛安), 속마랄맹안(速馬剌猛安)을 통치했다. 1204년 폐지되었다.
     
위구르 24-05-11 14:43
   
백도백과에도 요나라의 북안주가 승덕시의 서남쪽으로 나오네요

말씀하신 흥주에 대한 정보 덕분에 치명적인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위구르 24-05-11 15:03
   
그리고 금나라군의 여정에 대해 백도백과에 기술된 '二月,占领北安州(今承德西南)。前锋进至松亭关(今迁西北喜峰口)、古北口(今北京密云东北)一带。辽天祚帝见金军有直取南京'이 '2월, (금나라군이)북안주를 점령했다(지금의 승덕 서남). 전봉(선봉)이 진격해 송정관(지금 천서현 북쪽 희봉구), 고북구(지금 북경 밀운 동북) 일대에 닿았다. 요나라 천조제가 금나라군이 남경을 점령하려는 것을 알았다'에서 고북구가 승덕시의 서남부에 있기 때문에 그 근방의 북안주 또한 승덕시 부근이라는 점을 알 수 있죠

이렇게 봐야 모든 지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르뫼 24-05-11 10:15
   
위구르님 반박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1. 이민보 지역이 1481년 이전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졌다는 기록으로 반박하셔야 합니다.
  1481년 이전 뭐라 불리어졌나요?
2. 님이 제시하신 1481년 이민보는 본인이 올린 지도 원안에 있는 지역이 아니며
达木河村에 세워진 이민보 초소를 말함이니 더욱 그 지역이 이민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네요.
님이 제시한 이민보는 명나라 장성이 지나가기에 이민보라는 군조직이 생겼다고 보이며
1481년 세워진 이민보 초소는 현재 공개된 지역의 중간 达木河村에 유지가 남아 있다고 중국 문물지도에 나와 있네요.
达木河村 지역까지 이민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면 이민현이 있었을 확률이 높겠지요.
3. 16세기 명나라가 지명을 이동하고 만든 광여도의 삭막도를 보면
명나라 자신들이 스스로 지명을 고증했네요...상기 제시하신 담기양의 역사지도 역시 그를 바탕으로 써진 것인데
이를 믿는 어리석운 짓을 할 필요가 있나요...
     
위구르 24-05-11 15:04
   
'위구르님 반박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 끝까지 이 따위로 천박한 태도를 유지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위구르 24-05-11 15:10
   
1. 이민보 지역이 1481년 이전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졌다는 기록으로 반박하셔야 합니다.
  1481년 이전 뭐라 불리어졌나요? <- ???

본문에 '처음(始) 명나라(明) 성화(成化) 17년(十七年)에(于) 건립됐다(建)'라고 쓴 대목이 안 보입니까? 1481년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뭐가 더 필요해

댁이 얼마 전에 쓴 글에 있던 '(이민이라는 지명이)영무와 삭주 사이에 甯朔軍節度使 관할 지역에 존재할 확률이 얼마인가?'라는 대목이 리민이라는 지명은 특정한 지역에만 있었으며 그것이 있는 곳이 곧 금나라의 리민채가 있던 옛 북안주의 땅인 흥화현이라는 주장이잖아

그래서 댁이 산서성의 리민이란 지명을 바탕으로 산서성 삭주시 = 북안주라고 떠들어대길래 반박을 했는데 뭔 또 딴 소리야
     
위구르 24-05-11 15:11
   
'님이 제시하신 1481년 이민보는 본인이 올린 지도 원안에 있는 지역이 아니며
达木河村에 세워진 이민보 초소를 말함이니 더욱 그 지역이 이민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네요.
님이 제시한 이민보는 명나라 장성이 지나가기에 이민보라는 군조직이 생겼다고 보이며
1481년 세워진 이민보 초소는 현재 공개된 지역의 중간 达木河村에 유지가 남아 있다고 중국 문물지도에 나와 있네요.
达木河村 지역까지 이민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면 이민현이 있었을 확률이 높겠지요.
3. 16세기 명나라가 지명을 이동하고 만든 광여도의 삭막도를 보면
명나라 자신들이 스스로 지명을 고증했네요...상기 제시하신 담기양의 역사지도 역시 그를 바탕으로 써진 것인데
이를 믿는 어리석운 짓을 할 필요가 있나요...'

자폐증과 치매에 동시에 걸린 늙은이처럼 이리 알 수 없게 지껄이면서 보는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선동하는게 수법이지

내가 어제 쓴 해족에 관한 댓글에서도 아무 반박을 못 했고 말야

식민사학이 이 따위로 교묘하게 간첩질을 하는구나

전광훈이 우파 진영에서 일부러 자폭행위를 일삼듯이
          
구르뫼 24-05-11 16:03
   
자기 불리한 건 말안하고 말꼬리 잡아 자기 주장하는데 피곤해서 답변할 필요도 없고
맘대로 글 쓰시오...인신공격하지 말고 당신 인품이 보이니까.

조작된 지명에 의한 고증을 뭐하려 답변할 필요없고 다 거기에 맞게 수정된걸 아는데....

그럼 하나만 물어보고 답변 제대로 하면 내 주장 다시 한번 고려해보지.
상기 산서성 삭주지역과 그 남쪽 일부는 전국시대 임호와 루번의 영역이었소.
  (중국의 역사지도에 고증된 자료)

사기 소진열전에 임호와 루번 남쪽에 연나라가 있다고 하는데
왜 연나라는 없고 태원이 있는지 말해주시오...
               
위구르 24-05-11 16:06
   
'자기 불리한 건 말안하고 말꼬리 잡아 자기 주장하는데 피곤해서 답변할 필요도 없고
맘대로 글 쓰시오...인신공격하지 말고 당신 인품이 보이니까.'

한 마디로 육갑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을 보면 누가 억지를 부리고 누가 적극적으로 무식을 활용하는지가 명백한데 이런 소리를 한다?

'조작된 지명에 의한 고증을 뭐하려 답변할 필요없고 다 거기에 맞게 수정된걸 아는데....'

이런 총론적이면서 헛된 소리나 연발하는 꼴을 보니 요양원에 갇혀야 할 환자께서 고생이 많으시겠음
               
위구르 24-05-11 16:10
   
'상기 산서성 삭주지역과 그 남쪽 일부는 전국시대 임호와 루번의 영역이었소.
  (중국의 역사지도에 고증된 자료)

사기 소진열전에 임호와 루번 남쪽에 연나라가 있다고 하는데
왜 연나라는 없고 태원이 있는지 말해주시오...'

금나라 때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뭔 전국시대?

하긴 치매에 걸리면 어린아이처럼 굴게 되지

병원이나 가보기를 추천함
                    
구르뫼 24-05-11 17:15
   
당신이 말한 이민보는 이민채 북쪽의 达木河村에 처음으로 세워진 요새이고
내가 말한 이민보는 그 북쪽에 있는 마을이란 점이요. 지금은 이민진으로 바뀌었고요...

처음始는 달목하촌에 군사요새가 처음으로 1481년 생겼다는 이야기라 始建이고
마을 등  주군현 등을 설치할 때는 始置라는 말로 써야지.
마을에 始자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지...대대로 살아온 곳이기에
이민보와 단지 내가 올린 지도에 이름이 같을뿐 개념이 다른거야...
이해를 못하니 상대할 가치를 못느끼는 거야...

그리고 내가 물어본 거 모두 일관적인 하나의 흐름이 있어서 물어본 거고
지금 당신이 주장대로 북안주가 베이징 북쪽 승덕에 있어야 되는데
담기양보다 더 유명한 대만의 전묵은 더 서쪽으로 비정했지...
왜 중국과 대만이 다르게 고증해...
그런데 둘 다 임호와 루번은 산서성과 섬서성 북부에 동일한 위치에 고증했지...

임호와 루번 남쪽에 연나라가 있어야 하니
지금 이민진과 이민채 위치가 연나라 동북쪽 위치가 되어
사마천 사기와 일치하는 지역이 되는거야....

이해 못하면 욕하지 말고...너무 천해보여...

댓글 달려면 모레 해...나 놀려가야 하니까....
                         
위구르 24-05-12 12:32
   
뭔 헛소리를 길게 늘어놨나 했더니 또 거기서 거기네

댁이 말한 이민진(이민보)와 达木河村이 거의 2km 밖에 안 떨어져있는데

그 지명들이 명나라의 이민채에서 유래했다고 봐야 정상이잖아

둘이 어원이 다르다고?

진짜 바보 행세도 이렇게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는게 놀랍다
                         
위구르 24-05-12 12:37
   
https://baike.baidu.com/item/%E5%88%A9%E6%B0%91%E9%95%87/9932188

利民镇因明代嘉靖、隆庆年间,境域为军事要地,驻军称利民营得名

리민진은 명대 가정, 가경 년간에 이 지역을 군사 요지로 삼은 데서 유래한다. 군사를 리민영에 위치시켰기에 이름을 얻었다

너가 말한 이민진은 1481년에 세워진 명나라의 지명에서 유래했고 금나라의 리민현은 1204년에 폐지됐고

그러니까 '당신이 말한 이민보는 이민채 북쪽의 达木河村에 처음으로 세워진 요새이고
내가 말한 이민보는 그 북쪽에 있는 마을이란 점이요. 지금은 이민진으로 바뀌었고요...' <-

'达木河村에 처음으로 세워진 요새'와 '지금은 이민진'인 지역 모두 명나라에서 유래했다고

이해되냐?

놀러갈거면 간 김에 운동삼아 댁의 무덤이나 파라
                         
구르뫼 24-05-14 13:42
   
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는 어디일까? 내 글에 댓글을 달았으니
청주에 대해선 거기다 쓰고 정날 말귀 못알아 먹네...

그래 당신 주장대로 이민보가 1481년에 생겼다 그러자구.
그럼 지금 이민진 지역은 주변지형상 마을이 있어야 하는 곳인데
어디에서 갑자기 지명이 떨어진 것은 아닐테고
개똥이던 뭔가 있었을 거 아니냐고...

지금 명나라가 아니고 고려때 이야기이니 고려때 무슨 이름으로 불리어졌냐고...
이민채에서 유래했다고 해도 이민채는 왜 존재해야 하는데...
지금 이민보가 아니라 이민이라는 이름이야....
1481년 이전에 뭐라 불리어졌는지 당신이 밝혀야지....
1481년 건립은 남쪽에 요새를 만든것이니 마을이름을 밝히란 말이야...~~~~
아니면 마을이 없다고도 하던지...
정확하게 요나라 금나라일때 마을이름이 뭐냐고....
현에서 강등되었으니 이민촌 이민향 등 이민이 안들어간  다른 이름으로 증명해야 되는거야....
                         
위구르 24-05-14 18:23
   
'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는 어디일까? 내 글에 댓글을 달았으니
청주에 대해선 거기다 쓰고 정날 말귀 못알아 먹네...'

바보냐

'진서 청주 기록에 "正東曰青州"라고 했는데
전에 태평환우기 와 원화군현지 하북성 주현의 거리를 지도로 만들었는데
옛 선인들 동서남북에 있어 정확했네요.
즉 낙양기준 제시된 글은 동북이지 정동이 아니지요...'

라고 그 짝이 지껄였잖아

그래서 낙양이 아니라 천하의 형세를 기준으로 청주가 동쪽에 있으니 낙양 운운하는건 틀려먹은 짓이라고

미친놈이야?
                         
위구르 24-05-14 18:24
   
'그래 당신 주장대로 이민보가 1481년에 생겼다 그러자구.
그럼 지금 이민진 지역은 주변지형상 마을이 있어야 하는 곳인데
어디에서 갑자기 지명이 떨어진 것은 아닐테고
개똥이던 뭔가 있었을 거 아니냐고...'

모든 지명이 연고가 있어야 생길 수 있다면 3000년 전 지명이 지금까지 다 이어져온 셈이겠네 틀딱아
                         
구르뫼 24-05-14 18:38
   
당신이 주장한 이민진은 이민보에서 유래했소...지명이 연원이 있지요.

그럼 이민보는 이민채나 이민촌 이민향 등 연원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요.
다른 지명에서 생길수도 있을 확률도 있지만 반대의 확률도 있다는 사실이요.

그러니 당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금나라시대에 다른 지명명을 제시해야한다는 사실이요.
이를 제시하고 얘기를 해야하는데 언행이 너무 천해서 상대하기 싫었던거요.
또한 이것 말고도 고려시대 복원자료는 차고넘치니
조작된 사료 기반의 역사를 나에게 강요하지 마시요.
                         
위구르 24-05-14 18:53
   
'그러니 당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금나라시대에 다른 지명명을 제시해야한다는 사실이요.
이를 제시하고 얘기를 해야하는데 언행이 너무 천해서 상대하기 싫었던거요.
또한 이것 말고도 고려시대 복원자료는 차고넘치니
조작된 사료 기반의 역사를 나에게 강요하지 마시요.

지랄 꼴깝을 떨어라

금나라의 이민채가 1204년에 폐지됐다고 명백히 나오고 명나라의 이민보는 1481년에 설치됐는데 뭘 어쩌라고

억지를 부리며 지껄이는 꼬라지가 우리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중국 간첩새끼같음

일부러 민족사학을 망칠려고 온 간첩이냐? 민족은 조선족 한족 둘 중 어디냐?

'또한 이것 말고도 고려시대 복원자료는 차고넘치니
조작된 사료 기반의 역사를 나에게 강요하지 마시요.'

특히 이건 가관이다

그리 넘치면 진작에 제시하지 그랬냐 추리도로 날조를 할 시간에 말야
하이시윤 24-05-11 18:24
   
구르뫼님이 제기한 문제 : 사기 소진열전에 임호와 루번 남쪽에 연나라가 있다고 하는데 왜 연나라는 없고 태원이 있는지 말해주시오... 에 대한 답변



요동이 고조선의 영역에 속해 있었음은 전국책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전국책 연책”에는 전국시대의 策士(책사)였던 蘇秦(소진)이 연국의 문후(기원전 362~333)를 만나서 合從(합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연국의 동쪽에는 조선의 요동이 있고 북쪽에는 林胡(임호). 樓煩(누번)이 있으며 서쪽에는 雲中(운중). 九原(구원)이 있고 남쪽에는 呼陀(호타). 易水(역수)가 있으며 국토가 사방 2천리나 되며,,,,,,”子

 

라고 말하고 있다

 

전국책은 서한의 류향에 의하여 편찬된 것이지만위의 소진과 문후의 대화는 중국의 전국시대에 고조선이 연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음을 알게 하여준다. 그런데 “조선의 동쪽에 조선의 요동이 있다”는 구절의 원문을 보면 “燕東有朝鮮遼東” 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혹시 조선과 요동을 분리시켜 “연국의 동쪽에 조선과 요동이 있다”고 해석하고 요동이 고조선에 속하지 않았던 것으로 오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조선과 요동의 지리적관계는 요동이 요동이 서쪽에 위치하여 연국과 접해 있었다고 하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 그러므로 요동이 고조선에 속하지 않았다면 마땅히 연국에서 가까운 요동을 먼저 언급하고 다음에 조선을 jd급하여 “燕東有遼東. 朝鮮(영동유요동. 조선)”이라고 기록했어야 할 것이다. 설사 이기록에 대한 필자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요동이 고조선 영역이었음은 이미 앞에서 확인 되었고, 또 다음에 요동의 위치를 밝히는 과정에서 그 대부분이 고조선의 영토였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위치를 밝히기 위하여는 요동의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요동은 遼水(요수)의 동쪽 또는 동북쪽 지역을 말한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에 呂不韋(여불위)가 편찬한 “呂氏春秋(여씨춘추)”“有始覽(유시람)”에는 당시의 6대 강으로 河水(하수). 赤水(적수), 遼水(요수), 黑水(흑수), 江水(강수), 淮水(회수) 등이 열거되어 있는데 동한시대의 고유는 요수에 대해서 주석하기를

 

요수는 砥石山 (지석산) 에서 나와 塞(새)의 북쪽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곧게 요동의 서남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 하였다. 서한시대에 류안이 편찬한 “淮南子(회남자)”“ ?形訓(?형훈)”에도 당시의 6대강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여씨춘추”에 실린 것과 동일하다. 회남자에 나오는 요수에 대해서도 고유는 주석하기를 “요수는 碣石山 (갈석산) 에서 나와 塞(새)의 북쪽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곧게 요동의 서남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여 “여씨춘추”의 요수에서와 동일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 단지 요수의 시원지를 “여씨춘추”의 주석에서는 지석산 이라고 하였고, “회남자”의 주석에서는 갈석산 이라고 한 차이를 보여 주고있다. 어떻든 위의 고유 주석은 요수가 요동의 서남부 경계를 이루는 강이었음을 전하여 주고있다.

 

그러므로 고조선과 위만조선이 있었던 시기인 戰國時代(전국시대)와 西漢(서한)시대의 遼東(요동)을 확인하기 위하여는 당시의 요수가 지금의 어느 강이었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하이시윤 24-05-11 18:27
   
춘추시대로부터 서한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요수의 위치를 확인할수 있는 보다 더 분명한 기록이 “說苑(설원)”에 보인다. “ 설원” “辨物(변물)”편에는 춘추시대에 齊國(제국)의 桓公(환공)이 貫中(관중)과 함께 孤竹國(고죽국)을 침공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그 기록을 보면 그들은 고죽국에 이르기 전에 卑耳(비이)라는 계곡을 10리쯤 못가서 강을 건넜는데 그 강의 명칭이 요수인 것으로 되어있다. 이기록은 “管子(관자)” “小問(소문)”편에 있는 것을 옮겨 적은 것인데 “관자”의 기록에는 강을 건넌 것으로만 되어 있고 강명은 적혀있지 않았다.

 

그런데 “설원”에는 요수라는 강명이 삽입되어 있다. 따라서 설원의 저자인 류향이 강명을 확인하여 보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죽국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중국 하북성 동북부 노령현 지역이었을 것이라는데 이론이 없으며 노령현은 난하의 하류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西周(서주)시대로부터 戰國時代(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齊國(제국)은 지금의 산동성에 있었고 당시에 제국의 환공과 관중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북부에 있었던 山戎(산융)을 토벌한후 동쪽을 향하여 고죽국 침공에 나섰으므로 그 지리적 관계로 보아 침공시 건넌 요수는 지금의 난하였음을 알수잇다. “관자”는 전국시대의 저술이지만 제국의 환공은 춘추시대 초기인 기원전 7세기의 인물이며 “설원”은 서한의 류향에 의하여 저술되었으므로 춘추시대 또는 전국시대로부터 서한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는 지금의 난하가 요수로 불리어 졌음을 알수있다.
     
하이시윤 24-05-11 18:37
   
이것으로 구르뫼님의 질문에 대한 답이 끝났다고 봅니다. 요금당송기간사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춘추시대부터 기록을 엄밀히 검토하여 이치되고 지명을 바꾼 지역에 대해 고증을 해야합니다
윤교수는 40년전 그런 논문을 발표하며 식민사학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구르뫼님께 부탁드립니다. 독자적인 위치비정을 하십시요
위구르님 역게에 욕설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구르 24-05-12 12:44
   
논리 없이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들이 제재를 받지 않고 활개치는 사회는 망합니다

여기도 가생이의 운영자들이 지들 부모를 찾아 출타한 탓에 아무 관리를 하지 않아서 저런 자들이 판을 치죠

말을 가다듬을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좋은 말이 나오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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