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시겠지만 색공론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것임..
근데 색공론을 아는 애들 대부분은 얼치기로 알다 보니 경전해석도 안해보고 주워들은 풍월로 아무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색=공이라고 함...
왜냐? 반야심경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나오니 아 색=공이야 라고 두 개념이 같다고 생각하고 '불경에 나오니 진리야 그러니 색=공이라는 내 주장이 틀릴 리가 없어' 라고 발악을 하면서 우겨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공을 설명한 부분을 읽고 이해하는 넘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임..
아래는 반야심경의 해석과 공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을 보고, 흔히 색=공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공과 색이 어떻게 다른지 말해보겠음. (아래 해석은 임의의 해석이 아니고 조계종 표준해석이라고 하는 것임)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그러므로 공 안에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으며,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고 집 멸 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空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縟多羅三漠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卽說呪曰 (즉설주왈).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번)
파란 굵은 글씨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부분이 바로 색공론을 말하는 것인데
대개 얼치기 들이 반야심경의 이 부분만 보거나, 아니면 아예 반야심경 자체를 읽어보지도 않고, 색즉시공 공즉시색만 주워듣고는 공=색이라고 하는 것들이 불교신자들 대부분임..뜻글자인 한문을 그 뜻은 해석해보지 않고 그냥 주문이라고 소리(音)만 달달달 외우는 수준임
근데 한문 문장에서 시고(是故)는 ~~이런 까닭에, 그러므로 라는 의미로 이유나 원인,목적,결론을 말하는 것으로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시고(是故) 부분임...
반야심경에도 시고(是故)가 나오는데 붉은 글씨임..
붉은 글씨를 보면 공중무색으로 시작하는 저 붉은 부분의 空中無色 이하의 문장에서의 주어는 空임
즉 공 안에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각주 1 참조), 안 이 비 설 신 의, 색, 소리, 향기, 맛, 감각, 법(눈과 귀 코, 혀, 몸과 같이 인간의 오감 등으로 느끼는 모든 감각적 '경험'),, 눈의 경계, 의식의 경계, 무명, 늙고 죽음, 고 집 멸 도, 지혜, 얻음이 없다는 것임..
그러면 공 에는 色이 없고 + 저런 상대적이고 차별적이고 고통스러운 것과 한계 등이 없다는데
만약 그게 있으면?
저런 것들이 있는 세상이 바로 色임을 알 수 있음...
그러니 공과 색이 같다지만 공과 색이 같은 세계겠음? 아니면 다른 세계겠음?
적어도 공의 세계와 색의 세계는, 인간인 우리가 가치적으로도 다름을 알 수 있지 않음?
그리고 무엇보다 그게 진짜 같은 거면 용어를 색과 공이라는 두개의 용어를 쓸 이유가 어디있겠음? 하나만 쓰지
그래서 노장의 도교와 달리 불교의 색공론적 세계관을 이원론이라고 하는 것임...
색과 공이 같다고 하지만 결국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 세계관이라서 이원론이라고 하는 것임..
그런데 모지리들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니 같은거야 라고만 앵무새처럼 지껄임..
자 그러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봅시다..
이 우주에, 공의 세계라는, 고집멸도가 없고, 눈의 경계가 없고, 의식의 경계가 없고, 늙음과 죽음이 없는 세계가 존재함?
이거 죽어서 영혼들이 가는 저승세계나 예수쟁이들 말하는 천국이 아니고서야 이런 세계가 이 현상계에 존재하겠음?
공은 초월적 진리세계임....이른 바, 노자가 말하는 道의 세계나, 플라톤의 이데아, 역에서 말하는 본체와 통하는 개념인데,
그것들을 왜 초월적인 세계라고 하냐면 이 세상에는 (경험적으로는) 실재(實在)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 너머에 어디 다른 우주에 존재한다면 모를까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에 초월적인 진리세계라고 하는 것임..
그러니 플라톤이.
이데아(혹은 eidos=형상)는 비물질적, 영원, 초세계적인 절대적 참실재(=空)이며
이에 대하여 물질적, 감각적인 존재는 잠정적, 상대적이고, 이 감각에 호소하는 '경험적'인 사물의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 모상(模相)(=色)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내세웠다
라고 한 것임...저 괄호안의 불교 개념(내가 표시한 것임)과 철학사전의 플라톤의 설명이 뭐 별로 차이가 없이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지요?
두 개가 비슷한 이유가 플라톤이나 석가나 둘 다 이원론적 세계관이기 때문에 대동소이한 것임..
(물론 색즉시공에 꽂혀서 색=공이니 불교는 이원론이 아니고 일원론이예욧!!! 라고 주장하는 애들이나 땡중도 있음)
어쨌든 아는 것이라고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저 한구절만 알아서 색=공이라는 기계적 해석만 하면 그냥 모지리 인증하는 것 아니겠음?
하지만 이렇게 설명을 해주어도 반드시 그 어떤 모지리 붕어가 나타나서 '아니야 같은 거야' 라면서 저 해석은 뭐가 어떻고 하면서 죽어도 지 모자란 것은 인정안할 것임...뻔한 소리가 공은 無나 진공, 숫자0 같은 거라 저런게 없는게 당연하다 뭐 이렇게 읊어댈 것임.
각주 1) : '수 상 행 식'은 인간의 '경험적' 인식을 말함. 아래출처 : http://blog.daum.net/bujeok/719
수온(受蘊, Vedanaskanda)은 우리의 정서적인 면으로 좋다, 싫다, 달다, 쓰다, 즐겁다, 괴롭다 등과 같이
어떤 대상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일차적인 느낌을 말합니다.
상온(想蘊, Sanna-skandha)은 어떤 대상을 인식해 바라보았을 때,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싫은 것은 배척하는 것과 같이 마음 속으로 머리 속으로 이리저리 상상하여 정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행온(行蘊, Sankharaskanda)은 시간적으로 변하는 마음의 작용을 행동으로 표현해 내는 것으로 잠재적이고 무의식적인 행동도 포함됩니다.
식온(識蘊, vinnanaskandha)은 마음의 인식 작용으로 색수상으로 이어진 행으로 인해 어떤 대상을 인식하여 정신적, 물질적으로 식별하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