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끈 짧은 내가 야간 경비원 할 때의 일이다. 야간에 심심할 때 뭐 읽을 만한 것이 없을까 해서 동네 헌책방에 들러서 책 두 권을 샀다. 한권은 불교서적인데 제목을 잊어 버렸고, 다른 한 권은 괴테의 "파우스트"였다.
불교책을 읽을 때는 맹인 홀어머니를 두고 출가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맹인 어머니 때문에 고민하다가 "부처님이 나를 결코 속이지는 않으리라" 판단하고 출가한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나라면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맹인 어머니와 종교적 열정사이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 분명하다. 또 출가하면서 석가모니(부처님)를 핑계 대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석가모니의 인생관을 존중하지만 그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자기 이름을 걸고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었다. 그 때 "무상한 나날의 위대한 의미여!" 라는 구절에 눈이 꽂혔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석가모니는 "제행무상"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출가한 사람이다. 그러나 괴테는 그 무상하고 덧없는 나날 속에 위대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석가모니가 덧없는 나날이라는 현상에만 주목했다면 괴테는 덧없는 나날 뒤에 숨어 있는 위대한 의미까지 파악한 훨씬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없는 나날 속에서 만들어 가는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비록 세월이 흐를수록 마모되어 간다고 하더라도, 당대인의 삶에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후대인에게도 가치있고 귀중한 경험을 전수해 준다는 의미가 있다. 오늘의 우리들 역시 선대의 문화유산에 크게 빚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무상하고 덧없는 나날 속에는 위대한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석가모니 보다는 괴테의 인생관에 크게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