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독자들에게 난해한 이유를 생각해볼 때,
아무런 악한 목적 즉 성경을 통해 그 기자가 세상적 유익, 이를테면 책을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거나 아님 혹세무민하여 타인을 조종하는 식 등의 전혀 사실무근의 픽션이라고 생각지 않고 성령의 은혜와 감동을 통하고 이끌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옮겨졌다란 사실이 진실이라는 측면만을 따져볼 때도 역시 이정도의 오류와 난해함은 지극히 정상적인 범위라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언어학에 조예가 있어서 하는 말도 아니지만, 적어도 인간언어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인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나요. 또 인간 생각 같은 추상적이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미지를 완전하게 언어로 전환시키는데 있어 인간 언어의 불완전성이란 측면에서 볼 때도 그럴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불온전한 인간 언어로 표현에 있어 제한적일거구. 또 그 변환된 표현을 받아들이는 측면에서도 지극히 상대적일 테니 결국 최초 하나님의 본 뜻을 얼마든지 왜곡되게 바라 볼 여지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모음이 없고 더더욱 제한되고 열악한 히브리어, 또 헬라어 같은 고대어로 최초 쓰여졌기에 전반적으론 어느정도 까진 충분히 하나님의 본 뜻을 전달할수 있게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전달과 이해하는데 상당한 오해와 오류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밖에 이 최초의 헬라나 히브리어 성경에서 라틴어 서반어 독일어 영어등 전역의 각나라 언어로 다시금 중복번역되는 과정에서의 여러 문제와 오류도 상당히 있었겠지요. 또 문화적 관습과 그로인한 늬앙스차이도 존재할 테구요.
이 밖에도 또다른 원인들을 찾으려면 찾을수 있을겁니다.
즉 오직 무오함만을 강조하여 성경의 신성불가침을 주장하는 건 오히려 스스로 모순의 아집을 인정하는 꼴 밖엔 안된다란 생각입니다.
언어의 한계서 오는 오류를 인정하는거 조차 부인하고 막무가네식 옹호는 오히려 성경을 의심하는 부류의 먹이감만 주는 일인거 같네요.
이정도의 오류와 난해함이라는 말은 공감합니다
문제는 오류와 난해함이라는 것으로 완전 달리 해석하며 활동을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주간단한 예를 들어보면 밑에글에서 언급했듯이
십일조에 대한 부분입니다
아다르고 어다른데 그것을 활용하는것조차 교리가 달라지는데
어찌 이것이 큰차이가 아닐까 하네요
언어희 차이를 인정하고 오류를 인정하면 그또한 신이라는 의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는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인정할수도 인정하지 않을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떤 문구나 교리를 볼때
두리뭉실하게 해석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요.
인간의 언어는 무궁무진하고 우리말만 봐도 그 표현력은 어마어마 합니다.
하물며 전지전능의 신이 자신의 백성을 가이드 하기 위해 "인간의 언어"로 내린 책이라면
적어도 그걸 따르려는 인간들이 실족은 하지 않도록 "인간의 언어" 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그것으로 썼어야 할 것입니다.
그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난 후 싫어서 믿지 않는 일은 있을 지언정
적어도 그 책 때문에 이단이 되고, 그 책 때문에 타락을 하고,
그 책 때문에 전쟁을 하고, 살인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하는 일은 적어도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어디다 어떻게 내라.
신약의 시대엔 폐해 졌다.
몇월 며칠 부터는 내지 마라.
적어도 이런건 명확히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언어의 한계에 탙하는 건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만약 언어의 한계가 그정도로 크다면
현시대의 헌법도 세법도 소용 없는 것이 될 겁니다.
(아, 헌법도 세법도 그들에겐 소용 없긴 하군요.)
원시시대에는 신을 모시는 제사장이 권력를 잡았고
중세에는 성경을 해석하는 자가 권력을 잡았고
이성이 발달하게 되면서 현대에는 법을 다루는 사람이 권력을 잡고 있다고 책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 따르면 중세와 현대의 공통점은 애매하고 모호하고 각자 해석이 다를수있는 언어의 독점
그들만의 대화 이어야 기득권이 유지 될수있다 그것 때문이라 설명하네요. 제 생각엔 그럴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