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1. 에스더 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은 페르시아 역사에 존재하지 않음.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아하수에로 왕의 진짜 이름은 크세르크세스 1세이고,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은 발음이 구전되면서 변개되었거나, 히브리 방언으로 그렇게 발음된다거나, 함부로 왕의 이름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실존인명이 아니라 가상의 이름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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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2. 모르드개의 나이 뻥튀기
에스더 서를 보면 사건의 시작은 아하수에로 왕 3년이라고 나옵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의 통치 시기는 BC486년~BC465년이니까 BC 483년에 에스더 서의 사건이 시작됩니다.
모르드개에 대한 설명은 에스더 2장 6절에 나오는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고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정복하고 바빌론 유수를 강행한 시기는 BC 586년입니다. 모르드개가 1살 때 사로잡혔다고 해도 에스더 서가 쓰여진 시기(BC483년)에는 이미 104세 할아버지임.ㅋㅋㅋㅋ
근데 이 100세 노인의 직업이 뭐였느냐? 무려 왕궁 문지기! 황충에 버금가는 무력을 자랑하는 당대 최고의 무사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문제3.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관계
에스더 2장에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이라고 나오고(2장 6절), 2장 15절에 제차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이라고 나옵니다.
이 기록대로라면 에스더는 100세 노인과 사촌관계.
모르드개의 할아버지가 20세에 모르드개의 친부를 낳고, 정력이 왕성해서 60세에 에스더의 친부를 낳고,
모르드개의 친부가 20세에 모르드개를 낳고, 에스더의 친부가 60세에 에스더를 낳았다고 한다면 작중 에스더의 나이가 20대까지 내려오긴 합니다.ㅋㅋㅋㅋ
문제4. 페르시아측의 기록
페르시아의 기록에서는 에스더 서에 쓰여진 사건(왕의 측근 하만과 그의 열 아들, 따르던 자들 칠만 오천명을 쳐죽인 사건, 에스더 9장 15절)이 일절도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고대 시대에 7만 5천명은 어마어마한 숫자인데, 그런 사람들을 왕의 재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방민족인 유대인들이 쳐죽였는데, 기록 한 줄 없습니다.
에스더 10장 2절에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쓰여있지만, 페르시아의 기록에는 기록되지 아니하였음.ㅋㅋㅋㅋ
에스더 10장 3절에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라고 나옴. 제국의 2인자가 되었는데 기록상 모르드개는 나오지 않음.ㅋㅋㅋㅋ
그보다 앞서서 에스더 10장 1절에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고 하였으나 현실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하고 에게해의 재해권을 상실하고, 수사성에 칩거하며 방탕한 생활을 보냄.ㅋㅋㅋ
문제5. 당시 페르시아의 상황
에스겔서 1장 3~5절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이 날이 지나매 왕이 또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하지만 이 재위 3년 차 때에는 이집트와 신바빌로니아의 반란을 막 진압하고, 그리스 원정(2차 페르시아 전쟁)을 준비하던 그 때입니다. 군사반란을 막 진압하고, 재차 군사행동을 준비하는 왕이 전국의 관료들을 다 모아다가 180일이나 잔치를 열었다면 이 왕은 미친왕.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에 비견되는 미친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