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한국에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표현들의 규정을
이성적으로 규정하자면
대상(단수만이 아닌 복수, 단일 개념이 아닌 복수개념에도 마찬가지)에게
자신의 전반적 이해에 대한 기존의 이해체계에서
다음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이해체계로 넘어가는
매개를 처음으로 수용하는 지점에서 그것을 깨달음이라 표현합니다
이 이해체계란 것은 총체성으로 불러도 적절할 겁니다
이 개념을 감성적인 규정으로 한번 더 규정하자면,
어떤 대상에 대해서 기존의 이해체계에선
'혼돈'으로 여겨져오는 부분들이 있어 불충분을 느껴왔지만
그 대상에게 새로운 이해체계의 입구에서 '빛'으로 여겨지는 매개를
유력하게 느낄 때 깨달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란
어둠속에서 빛을 느낄 때나 여명을 느낄 때 "깨달음"이라는 규정도 있습니다
이 이성적 규정과 감성적 규정이 상보적으로 공존할 때 깨달음이라 규정해도 적절합니다만,
이런 규정에 불과한 깨달음이란 표현이
본 게시판에서는 무슨 절대성을 상징하는 듯한
뉘앙스를 무분별하게 남발합니다
그저 자기 인식의 일보를 내딛는것에 불과한게 그놈의 깨달음인데,
그런 것을 깨달음이라고 친다면 그걸 수번.. 혹은 수십번 이상
거듭해서 누적해온 분들도 이 게시판에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의 그 인식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조야함에 심취한 사람들이
그놈의 깨달음을 상당히 미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가의 불쾌한 짓거리가 이런 것들이죠
깨달음이란 것도 상대적인게 필연적일 수 밖에 없어서
심하게는 아이와 어른 수준의 차이까지 나는 것을 극명하게
이 게시판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우째들 그 점을
엄밀하게 살피는 불가의 표현들은 6년째 본적이 없는지?
깨달음이란 걸 좀 더 구체화하자면..
어떤 대상에 대해 인식체계의 변화는
그 대상의 총체성을 헤아리는 지점에서 기반을 갖습니다
한편 어떤 대상에 대해 특정한 부분을 엄밀하게 헤아리는 것은 중요합니다만
그 대상의 총체성과 부분적 엄밀성이 총체성과 필연성을 이루는 개연성을 놓치는데서
그 개념의 이해라는 게으름은 단순히 총체적 미화에 불과한 망상으로 치닷게 됩니다
그때 필연적인 모순을 발생시키는데 이를 회피하려다보니
미화의 힘에 의존하는..
즉 종교적인 권위에 의존적인 처세를 잉태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니 현실에서 실증적/실효적으로 아무것도 남는게 없는
맹신의 길에 접어들기 쉬워지는 것이죠
이는 소위 멍청한 사람들.. 그리고 이를 이용하려는 사기꾼들에게 더 크게 작용하게 됩니다
깨달음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을만큼 무엇인가를 헤아리려면
부분적 엄밀성과 총체적 균형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지점을 순수하게 확보할 때
자연스러운 공감과 동의가 형성되는 지점이 발생하고 거기서 지적만족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비평하자면 그저 일보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단순히 개인적 진보지 타인에게 공리가 될만한 무슨 절대성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공리의 자리를 찬탈하고 싶은
분위기를 드러내는게 깨달음이란 개념을 설파하는 분들의
조야함이거나 부주의함이죠
쉽게 비유적으로 얘기하자면
"사장 사장 해주니까 같은 사장으로 뵈요? 싸이즈가 다르잖아~"란 영화대사가 있습니다
"깨달음 깨달음 해주니까 같은 깨달음으로 뵈요? 싸이즈가 다르잖아"라고 비유할 수 있겠네요
아마 이런 지적이 자기 신앙에 불편을 느끼는 분들을 거북할 것이고
자기 신앙을 이신적으로 헤아리고 쓴 맛도 수용할 의향이 있는 분들만이
제가 단순히 헛소리를 하는건 아니라는 고려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뭐 이런 얘기도 좋은 소리를 들을만한 얘긴 아닐테니
이 비판은 이 정도로 매듭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