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항목 말미 - 신학자 바르트는 안셀무스가 단순히 논리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으면서 그 믿음의 근거를 나중에 한번 찾아본 것에 불과하다고 해석하였다. 비록 안셀무스나 데카르트의 의도는 순전히 논리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바르트의 해석이 전혀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안셀무스나 데카르트의 논증이 불신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다.
2번 항목 말미 - 그러나 이 증명도 자세히 따져보면 많은 약점을 안고 있다. 우선 그 최초의 원인과 하나님을 동일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최초의 원인은 구태여 성경이 말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일 필요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시동자로서 충분한 것이다. 더군다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단순히 하나의 원인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의 뜻에 따라 만든 창조의 신으로 나타나는데, 최초의 원인과 창조주는 논리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그리고 모든 것의 원인이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다. 대개 생물의 경우에는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수가 줄어지고 마침내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모든 후손이 생겨난다 할 수 있지만, 모든 다른 존재들도 동일한 방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3번 항목 말미 - 그러나 자연 세계에는 조화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온갖 부조리와 부조화도 있다. 약육강식의 끔찍한 투쟁이 있고, 홍수 지진 가뭄 등도 있으며, 짐승 가운데도 비정상적인 현상들이 일어난다. 더군다나 인간 세계에서는 조화보다는 더 많은 갈등과 부조리가 지배한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바로 이런 부조리 때문에 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왜 정직한 사람은 고난을 받으며 악한 사기꾼들은 호화스럽게 살 수 있는가? 왜 일본같이 악했던 나라는 경제적 대국이 되고, 우리나라처럼 착했던 나라는 일본보다 못사는가? 더군다나 이디오피아의 어린이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렇게 비참하게 굶어죽어야 하는가? 바로 이런 부조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지혜와 사랑의 신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하고 많은 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되었다. 러셀 같은 사람도 인간 사회에는 아무 합리성도 없고, 역사에는 아무 방향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세상은 비참하고 참혹하다고 탄식한 적이 있다. 그래서 단순히 자연과 인간 사회의 조화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도 상당한 한계가 있다.
4번 항목 말미 - 불란서 철학자 볼테르도 도덕적 질서를 위해서 전지전능한 신은 있어야 하며, 만약 그런 신이 없다면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요청에 의한 신을 진정한 신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인이 퍼온 본문글의 내용들을 복붙한 겁니다. 이런 내용이 있는줄도 모르고 복붙해놓고, 제목으로 거창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써놨습니다.
ㅉㅉㅉ
아직까지 자기가 퍼온 글도 안읽고 있었습니까?
바로 그 위 문장까지 복붙해줄테니 제발 한번이라도 읽어보십시오.
당신이 퍼온 글입니다. 제발 한번이라도 읽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고 글 쓰세요.
물론 칸트는 이것을 하나님의 존재 증명의 한 형태로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윤리학에서 도덕적 질서와 자연 질서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운데 제시된 것에 불과하고, 그 자체로 그리 설득력이 있는 증명도 아니다.
불란서 철학자 볼테르도 도덕적 질서를 위해서 전지전능한 신은 있어야 하며, 만약 그런 신이 없다면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요청에 의한 신을 진정한 신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