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과 소승?
더 자세히 들어가면 소승 대승 금강승(일불승)으로 나뉘어 지지만
큰 그림으로는 이러한 구분은 크게 의미가 없다
1. 소승의 길은 걷어내고 깨부시고 버리고 내려놓고 비우며 위빠사나를 통해
부정(不)속의 부정을 거쳐 공성체험이라는 견성을 득하기 때문이다
2. 대승의 길은 자신을 질타하며 깨부시고 비우며 관조하지만
동시에 인연있는 존재들과 어깨동무 껴안고 가는
부정과 긍정의 통섭을 통해 공성과 실존(실상)의 양면을 아우르는 견성을 득하기 때문이다
0. 금강승(Diamond Road-일불승)의 길은 커다란 바다나 우주공간 같이 모든것을 수용하여 대긍정의 회통을 통해
진여(眞如)를 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3가지태도는 각각의 근기나 성품이나 처해진 조건에 의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동시에 번갈아 작용하는 지혜를 굴리는 수레바퀴와 같다
(단 한걸음에 바로 간다는 구라는 떨지 않는것이좋다)
남방불교 북방불교 구분역시
큰그림으로는 의미가 없다
1. 고대의 대스승이 남긴 말을 따를것인가
2. 고대의 대스승이 전하고자한 진의(眞意)를 따를것인가
이것은
손가락을 볼것인가 달을 볼것인가 같은 갈라치기 우문인 탓에
당연히 길을 가는 이라면 둘다를 봐야 도움이 될터이다
이정표 안내표지와 지도를 들고 가는 방식이든
나침반을 들고 지형을 이해하며 가는 방식이든
머가 옳고 그름이란 없다
두가지 방식이 양수겹장을 이룰때 속도가 빨라진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크게 함축하여 정리한
정혜쌍수
지행합일
선교합일
돈오점수라는
방편도가 먼 남의 나라 땅이 아닌 발딛고선 이땅에서, 이미 삼국시대부터,
일견 난해한 화두로 종종 등장해 온 바 있다
방편(도)이란
타고 가야할 나룻배 또는 수레 같은 것이며
강을 건넛거나 도로가 끝나면 버리고 가는것이 합당하다
둘아닌 하나
복잡 다단한게 아닌 전체인 하나
진여로 귀결되는 탓이다
진여란 결론이나 목적지가 아니며
살아움직이는 우주이자, 살아숨쉬는 인간의 삶이며 존재의 "생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밥먹고 똥싸고 사유하거나 일하거나 놀거나 잠자는 생존
매일매일 하는 이짓거리들이 바로 위대한 "생존" 이기 때문이다
이따구 사유들를 하며
똥을 뿌직 싸다가 문득 떠오르는 글이 있어 적어봅니다
"화광동진 - 빛을 부드럽게 하여 세상의 티끌과 함께한다"
"봄소식은 없다해도 똥구녁에 매화꽃은 피었을까"라는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