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벽지불, 아라한은 윤회를 끊은 성자들이라는 데서는 다 같은 분들입니다.
벽지불은 붓다와 같이 연기의 법칙이 알려지지 않은 세상에서 홀로 연기를 꿰뚫어
윤회를 종식시킨 분들이고 독각불, 연각불 등으로도 불립니다. 단지 이 분들은
바라밀의 공덕이 부족하여 그 깨달음을 세상에 펼칠 역량이 모자란 분들입니다.
아라한은 붓다의 설법에 의해 그 연기의 법칙을 알고 수행하여 윤회를 종식시킨
붓다의 제자들입니다. 성문이라고도 합니다.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예전에는 다 말로 가르침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배울 깨우침이 없다는
점에서는 붓다나 벽지불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전생에서부터 쌓인 바라밀의
공덕은 붓다에 비하여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붓다는 수많은 보살행을 통해 바라밀을 닦고, 연기법이 알려지지 않은 세상에서
연기법을 깨닫고, 그 바라밀의 공덕을 바탕으로 법을 펼치는 일체지자입니다.
원래는 일반명사로 깨달은 자라는 뜻이지만, 상좌부에서는 이런 뜻으로 씁니다.
붓다께서는 스스로를 붓다라고 천명하지만, 그 깨달음의 보편성은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언제나 '와서 보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아라한들이
깨달음을 얻으면 연기법을 순관, 역관을 하며 스스로 윤회를 벗어났음을 알고
윤회를 벗어났음을 천명하는 오도송을 남겼습니다.
오늘날에는 상좌부 같은 경우 깨달은 자들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다고 하더군요.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자를 기준에 맞춰 판단하면 진위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뭐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