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최규하가 사임하고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기까지 8개월의 시간이 소요된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다단계 쿠데타를 수행한다.
신군부가 집권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했던 준비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0.26 직후 미국.최규하.신군부 3자간에 성립되었던 잠정적 타협안으로서, 보다 온건한 체제로의 개혁을 저지하고 유신체제를 실질적으로 유지.부활시키는 작업이다. 이단계는 권력의 축이 최규하를 중심으로한 공직적인 권력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실질적인 권력 사이의 긴장과 경합이 이루어지는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최규하 정부를 무력화시키고 국민들 속에 정국안정을 책임질 수 있는 보다 강력한 정부에 대한 요구를 불러일으키는 작업니다. 강력한 정부의 필요성은 혼란한 사회상의 극복을 통해 국민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통제 가능한 수준의 국민적 저항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항을 진압할 수 있다면 기존 지배세력은 물론 국민들에 대한 신군부의 장악력은 더욱 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정치권과 학생운동은 물론 보다 광범한 민중의 저항까지도 진압할 수 있도록 군대를 훈련시키는 작업이다.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대통령이 살해되고, 오랜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분출되는 상황에서 사회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경찰력에만 의지할 수 없었다. 특히 계엄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신군부의 의지에 따라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강제력이 필요했는데, 군대 특히 공수부대만큼 이러한 취지에 부합하는 물리력은 없었다.
신군부는 유신체제를 폐기하고 보다 온건한 개혁체제를 만드는 방향으로 정국이 흘러가지 않도록 세 가지의 조치를 취했는데, 비상계엄의 유지, 합수부의 권한 강화, 헌법 개정작업의 지연이 그것이다. 이중 유신헌법 제 54조와 계엄법 제 4조 규정에 의하면 계엄령은 “전시,시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 처하여 대통령이 필요한 지역을 구획하여 선포”할 수 있으며, 비상계엄령은 “적의 포위 공격으로 인하여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지역에 선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계엄법 시행령 제 4조는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지역이라 함은 적의 포위공격으로 인한 전투지역 또는 그 인접지대로서 민심이 동요하고 치안이 혼란되어 정상적인 행정 또는 사법기관이 그 기능을 상실한 지역을 말한다”고 하여 비상계엄령 선포의 조건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10.26이후 선포된 비상계엄령은 원칙적으로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위법한 계엄령이다. 신군부는 위법한 계엄령 선포를 은폐하기 위한 수닥으로 북한의 남침위험을 왜곡.과장 유포했다. 신군부는 첩보나 일부에서 제기한 북한의 남침설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비상계엄령 유지와 5.17계엄 확대 조치의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 북한의 남침 위협을 언론을 통해 왜곡. 과장했다.
1980년 5월 10일 중앙정보부 2차장 김영선은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짙다는 ‘북괴 남침설’ 첩보를 일본 내각조사실로부터 입수하여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에게 보고했다. 이날 입수된 첩보는 다음과 같다. “북한은 한국 정부가 80.4 중순경 김재규를 처형할 것으로 예상하고, 김재규 처형 시에는 항의 데모사태가 발생을 해서 남침을 위한 결정적 시기가 조성될 것으로 판단하여 남침시기를 4월 중순경으로 예상하였으나, 김재규의 처형이 지연됨에 따라서 이를 연기하여 오던 중에 80.5 들어 학생과 근로자의 소요사태가 격화되자 한국 내 소요사태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80.5.15부터 5.20 사이에 남침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5월10일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에서는 ‘북한남침설’ 정보는 북한의 일반적 남침 가능성을 제기한 것에 불과하고, 이 같은 첩보가 가치 없다고 결론 내렸다. 10.26 이후 중앙정보부는 계엄사에 의해 장악된 상황이었는데, 중앙정보부 조직의 위기상황에서 조직의 안위와 개인적 영달을 위해 전두환이 가장 좋아할 보고서를, 출처를 확인하기 힘든 일본 내각조사실 첩보를 근거로 보고 함으로써 북한의 남침 위협이 단순한 조작이 아니라 국가 최고 정보기간이 입수한 신뢰할만한 정보에 근거한 것이라는 여론조작을 정당화하는 첨병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노기영 인터뷰 2011.12.3.)
신군부, 그리고 중앙정보부가 퍼트린 남침위협설이 근거 없음은 육군본부 정보참모부가 1980년 5월 10일 작성한 [북괴 전면 남침설 분석]제하의 문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육군본부 정보참모부는 이 문건에서 주로 일본 측 정보원을 통해 입수한 남침설 관련 첩보가 북한의 군사동향을 파학해본 결과 근거가 없으며, 어떠한 전쟁징후도 없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해당 문서는 일본 내각조사실과 방위청이 정보원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중앙정보부가 해외 대사관에 파견하는 공작관과 언론사 해외 특파원간의 특수 관계를 고려할 때 이러한 남침설의 진정한 출처가 일본 내각조사실이나 방위청이 아니라 중앙정보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육군본부는 대북 특이동향에 대해 충분히 검토를 한 뒤. 그러한 첩보들이 근거 없다고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판단이 육군본부 수뇌부에 여러차례 보고 됐기 때문에 5월 12일 계엄사 일반참모부회의에서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겸 계엄사 부사령관은 “북괴가 남침 준비를 위해 병력전개를 완료하였다는 일본의 첩보는 벌써 6회나 거짓말을 하고도 처면이 선다는 것인가? 혹시 그들의 고등 술책일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계엄사령부 일반참모회의록 1980.5.12.)
국방부 과거사위조사에 따르면 1980년 5월 12일 임시국무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부장 서리와 중앙정보부 담당국장이 [북괴 남침설 분석결과]를 보고 했으며, 군과 경찰에는 “최근 국내 소요사태 발생에 편승하여 북괴의 대남도발 침투가 예상된다”며 비상경계체제 발령이 시달되었다.(국방부 과거사위 2007)
주영복 국방부장관은 1980. 5. 16. 13:00경 조문환 국방부차관을 통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해달라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요청을 전달받았다. 5. 10. 7박 8일 일정으로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순방을 위해 출국했던 최규하 대통령은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5. 16. 22:30경 일정을 하루 앞당겨 귀국했다. 이날 23:00경 청와대에서 신현확 국무총리, 이희성 계엄사령관, 전두환 중정부장 서리 겸 보안사령관,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 김종환 내무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심야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김종환 내무부장관은 경찰력만으로 시위진압을 할 수 없다는 요지의 보고를 했고, 주영복 국방부장관은 대북첩보와 관련된 첩보가 입수돼 군 차원에서 대비책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국방부 과거사위 2007)
이처럼 육군본부에서는 북한의 남침 준비완료라는 첩보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이 중심이 된 신군부 세력은 ‘북괴 남침설’, 그리고 이와 연계된 국내의 소요사태를 근거로 ‘국가위기’ 상황을 조성하며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확대시키는 명분으로 삼았다. 국방부 과거사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 동향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육군본부 정보참보부에서 신빙성 없는 것으로 판단한 대북 첩보를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 획득을 위해 활용한 것이다. 1980년 당시 안보위기,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남침위협설이 전혀 사실이 아니였었고, 오히려 전두환 정권이 권력찬탈을 위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 하기 위한 조작된 명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세력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신군부의 권력장악과 군대 투입을 통한 시위 무력진압을 정당한 국가행위로 오히려 왜곡하고 있다.
또한 당시 계엄법에 따르면 비상계엄령은 “적의 포위 공격으로 인하여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지역에 선포”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계엄법 시행령 제 4조는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지역이라 함 적의 포우 공격으로 인한 전투지역 또는 사법기관이 그 기능을 상실한 지역”에 대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다고 선포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북한의 남침 위협이 근거 없다는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의 정보분석보고서가 5월 10일 신군부에게 제출된 상황에서 5월 17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하여 기왕에 위업하게 선포된 비상계엄령을 제주도까지 포함하여 전국으로 확대한 것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자 국기문란 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