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서울은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하여도 현대적이며 세련되고 아름다운 도시가 됐다. 서울이 분지는 아니지만, 지형적으로 매우 아늑하며 수량이 풍부한 강을 끼고 있으며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등 도시 주변에 우람한 산들이 둘러있어 거주지 근교의 자연이 주민에게 베푸는 혜택도 풍성하다.
조선의 조정은 그 한가운데 도성을 쌓고 그 성벽에 인의예지신 사대문을 두었다. 흥인지(동)문, 숭례(남)문, 돈의(서)문, 보신각 등이 있으며, 사대문의 안쪽을 문안이라고 했다. 문안은 지금의 종로구와 중구가 된다. 종로와 중구를 보면 자기들이 아직도 650여년간 누적된 서울의 문화, 경제, 행정과 정치 등의 중심지임을 뽐내고 있다. 그 중구에 명동이 있고 이의 한쪽 기슭에 야트막한 산이 있다. 사계절 푸르름을 보여주며 수많은 사람들을 찾게 하는 아름다운 공원인 남산이다. 남산은 서울 시민들의 접근성 좋은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자 관광명소이다.
그 서럽게도 아름다운 남산 한켠의 으슥한 곳에 빼꼼히 보이는 건물이 있다. 그곳엔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으며, 한번 들어가면 평생의 상처로 남는 파괴된 기억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곳이다. 1961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남산에 중앙정보부 분실을 설치했고, 이후 아예 이곳을 본관으로 했다. 그땐 그 곳 중앙정보부를 "남산"이라고들 했다. 아름다운 남산이 아니고 무시무시한 고문의 장소 남산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모택동의 유명한 말이 있다. 그렇다 그 당시 박정희의 권력은 불법체포와 남산의 고문에서 나왔다. 일본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한 엘리트 일본군 청년 장교시절, 일본이 식민지에 했던 공포정치의 행태와 고문 방법을 보고 배웟고, 그것이 정신과 몸에도 배어있어, 그 공포를 이용한 지휘와 통솔방법을 자국민에게 쓴 것이다. 이것은 마카아벨리 군주론(The Prince)의 경멸 받지 않는 리더가 되기위한 기본인 공포정치의 전형이 되었다. 그 당시 체포영장 없는 불법체포가 행정문서의 기록이나 대외적으로는 임의연행이란 말로 합법화 시킨 것은 독재정권으로서 당연하다. 잡혀갈까 무섭고, 눈 밖에 날까 무섭고, 다음은 나 아닐까 하며 무섭고, 음습하게 퍼지는 고문에 대한 소문에 고개 숙여 맘 조려가며 거부할 생각조차 못하던 시대였다. 남산에 끌려간다는 건 죽음의 공포 끝에 간첩으로 낙인찍힌다는 것이었으므로, 남산은 생각만하기에도 끔찍한 곳이었다.
박정희는 유신을 통해 장기집권을 유지하려 했으며 긴급조치라는 요술방망이를 흔들었다. 이를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몰수할 수 있었다. 이 법에 의하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인사들, 간첩으로 조작할 대상자들, 권력 내부의 감시 대상자들을 잡아다 끔찍함을 가했다. 상대를 급진주의자로 몰아 자신들의 존립과 집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짜논 프레임에 넣은 것이다. 서울대 최종길 교수는 수사 중에 사망했으나 투신한 것으로 조작 발표 됐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도 무지막지함을 당했다. 김대중사건을 조작한 곳도 남산이다. 일명 수지김 사건으로 일가족을 파탄시킨 현장이다.
박정희의 1970년대는 전두환의 1980년대로 이어져 수많은 간첩사건도 이곳에서 만들어 졌다. 잘 알려진 유명 정치인은 벌거벗겨져 고문과 사타구니(불두덩) 털을 뽑히는 수모를 당한 끝에 자신의 의지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에는 우리모두가 기억하는 김근태, 박종철, 이근안, 그리고 국회의원 까지 해먹은 정형근이라는 이름도 스쳐간다. 용케 걸어나오더라도 인간으로서의 명예와 자존감을 말살해 버리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평생을 불구의 상처로 남을 매우 잔인한 일을 당하는 것이다. 나라는 광복을 찾았다고 하지만 백성에겐 또 달리 강요된 정치 사상적 식민수탈이 해방 이후 40년 가까이 이어졌다.
일상적인 불법사찰과 도청은 물론이고, 언론과 사법부를 통제하였으며, 심지어는 김기춘에 의하여 이곳에서 유신헌법의 초안이 작성되기도 했다. 정부 위의 정부(Power of Power)였던 중정은 이곳 남산에서 무려 23년여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유린하며 독재정권을 떠받쳤다. 당시의 경찰, 검찰과 법원 역시 상부의 의도에 맞춘 수사와 판결을 낸 것은 그들의 시대적 부끄러움의 몫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그 둘은 아름다운 이곳 남산을 그들의 권력과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뭇사람을 고문하여 간첩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죽이기도 하여 남산을 피로 물들였던 장본인들이다. 공포정치를 펼친 이들과 이들의 추종자들을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반 사회적 인격 장애자(Sociopath)들이다. 박정희는 모두에게 복종, 순종 그리고 추종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의 집권기간 동안 저질렀던 추악하고 비루한 자신들의 허물에 관한 사실보도는 차단시키고 가공되어 오염된 거짓 정보를 끊임없이 순박한 대중들에게 제공하고 주입시켰다. 정권의 프로파간다에 그렇게 세뇌된 광화문의 장삼이사가 아직도 이를 모르거나 무시하며 성조기를 들은 좀비가 되어 자신을 지배했던 그를 반신반인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을 보면 그들의 무지와 순진함에 정말로 측은한 마음이 든다. 마치 히로히토가 온 정신을 지배했던 황국신민이나, 투표를 통한 찬성율 90%로 히틀러를 지지했던 독일 국민이 떠오른다.
누굴 미워하는 것에 지친 내가, 미래만 보고 살려해도, 광화문의 패거리 들은 내가 그들을 용서할 틈조차 주지 않고 있다. 국가를 전복시키자고 백주대낮에 모여 고래고래 소리쳐도 놔두는 지금의 정권이다. 박정희나 전두환 같으면 삼청교육대나 형제복지원의 정원을 십만명 이상 늘려 광화문 떼거지를 모두 수용할 것이겠지만, 지금의 정부는 나름 귀먹어리인양 부처님 가운데 토막인양 최대한 인내를 하고 있다.
그래서 광화문의 망나니 몽니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자기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깊이 느낄 수 있도록 아주 심한 가르침을 줄 수도 있겠지만, 나의 체면(양반 출신이라 육두문자 쓸줄 모름) 때문에, 최대한 점잖케 전한다. 이제 당신들 사는 날도 얼마 안남고 머리도 굳었으니, 충고를 하자면, ‘스스로 알려 하면 늦고, 누군가 도움을 받으면 빨리 깨닫게 된다’ 즉 "自知는 晩之"고, "補知는 早之(자지는 만지고 보지는 조지)"(借用:金炳淵)라는 말과 또하나는 당신은 자잘구레한 걱정의 노예 즉 你哀微是婢(니·애·미·시·비)이니, 이말을 가슴에 새기고 빨리 주변의 정상적인 사람들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아 죽기전에 얼른 정신 차려 사람노릇을 하라는 말이다. 당신의 배우자나 애들한테 당신이 왜구의 좀비임이 알려지는 것이 부끄럽지 않냐고.
참고 : (自:스스로 자, 知:알 지, 晩;늦을 만, 補:도울 보, 早:이를 조, 之:어조사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