敵과 惡을 보고도 "싸우지 않는 죄"를 범한 한나라당
레이건의 경고: 『만약 우리가 공산주의자들과 싸워서 지고, 그리하여 자유를 빼앗기게 된다면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패배를 방지하기 위한 행동에서 가장 비겁했기 때문에 우리는 졌노라고』
趙甲濟
1980년대 후반, 소련을 필두로 하는 국제 공산주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데 主役은 로널드 레이건 美 대통령이었다. 助役은 요한 바오로 2세, 대처 영국 총리, 바웬사, 그리고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 등이다.
美·蘇 냉전은 스탈린이 도발하고 트루먼 대통령이 이에 응전하면서 시작되었다. 트루먼은 소련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서 6·25 전쟁에 참전해 한국을 구했다. 트루먼과 레이건이 냉전을 승리로 이끈 두 「巨人」이었다. 두 사람은 민주당·공화당으로 입장은 달랐지만 공산주의를 惡의 세력으로 본 점에선 같았다.
로널드 레이건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배우 출신의 카우보이」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레이건을 「근사하게 생긴 바보」라고 본 한국인들이 많았다. 레이건은 위대한 인물에게 필수적인 「위대한 관점」의 소유자였다. 위대한 관점이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능력을 뜻한다.
레이건이 1981년에 집권해 1989년에 물러날 때까지 공산주의 세력을 코너로 몰아 항복을 받아 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든 힘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의 전환이 우연한 인물의 우연한 행위로써 이뤄질 리는 없다. 역사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은 그 순간을 위해 준비된 인물이다. 레이건이 그러했다. 그는 20년간 미국의 국내 戰線(전선)에서 공산주의와 매일 싸워서 이겼던 사람이다.
배우로서 성공했던 레이건은 1946년부터 1952년까지 「영화배우협회」의 핵심 멤버나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이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에 침투하는 것을 저지했다. 주먹다짐을 하고 테러위협을 받아 가면서 그는 좌익들과 매일 싸웠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그는 이런 對共투쟁의 경험을 통해서 공산주의자들의 본질과 생리, 그리고 전술을 알게 되었고, 대통령이 된 뒤 이 경험을 살려 국제공산주의자들을 분쇄할 수 있었다.
레이건은 공산주의자들을,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敵들 중 가장 잘 조직되고 유능한 세력」이라고 평했다. 그는 1960년에 다시 영화배우조합 위원장으로 뽑혔는데 「러시아와의 이념전쟁이야말로 이 세계의 가장 큰 문제」라는 인식을 가졌다. 그는 평화至上(지상)주의자들을 경멸했다. 평화지상주의자들이 『지금은 평화시대이므로 이 평화를 깨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미국을 패배의 길로 내몰고 있는 독약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이미 패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은 우리와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이 경고는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李明博과 한나라당과 강남좌파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金正日과 從金세력은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뒤엎으려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많은 한국인들은 『지금은 남북화해 교류의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공산당 운운 하는 당신들은 전쟁하자는 이야기냐』라고 말한다.
1960년대 레이건은 이렇게 경고했다.
『만약 우리가 공산주의자들과 싸워서 지고, 그리하여 자유를 빼앗기게 된다면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패배를 방지하기 위한 행동에서 가장 비겁했기 때문에 우리는 졌노라고』
공산화가 되면 잃을 게 가장 많은 사람들은 군인, 공무원, 경찰, 한나라당, 기업인, 부자, 대통령이다. 이들중 상당수가 敵과 惡을 상대로 '싸우지 않는 죄'를 범하고 있다.
이런 레이건이었기 때문에 1980년대 소련의 허점을 발견하자 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그 허점을 확대시켜 갔고, 결국 공산권의 총붕괴로 몰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1981년 레이건이 집권했을 때 미국은 카터 대통령의 失政(실정)으로 인해 총퇴각 중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군의 지배하로 넘어가고 反共 팔레비 정권이 무너져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손에 장악되었다. 이란 혁명정부가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삼고 444일 동안 미국을 갖고 놀았다. 이들을 구출하려던 미국의 특공작전은 이륙도 해보지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실패했다. 미국의 코밑인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트 공산주의 정권이 流血(유혈)혁명에 성공했다.
이러한 때 집권한 레이건은 수비에서 공세로 전환해 소련 공산제국을 붕괴시키는 大전략을 추진한다. 목표를 엄청 높이 잡은 것이다. 그 大전략의 핵심은 자유노조 운동이 일어난 폴란드였다.
레이건은 『폴란드를 민주화시키면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처럼 동구 공산권이 터져 버리고, 그 파편으로 소련까지 무너진다』는 계산을 했다. 레이건이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영국의 대처 총리와 공조해 가면서 소련을 경제적·군사적·외교적으로 몰아붙인 결과, 소련 지도부가 내놓은 代案이 고르바초프였다.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정치적·외교적으로 지원했지만 군사적으로는 더 밀어붙였다. 즉, 고르바초프의 체제해체적 개혁을 응원함으로써, 소련이 내부적으로 무너지도록 일종의 xx을 유도했던 것이다. 레이건이야말로 「惡의 제국」과 정면대결함으로써 이를 해체하기 위해 훈련받고 준비된 대통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