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베니스' 어디가고… 황량한 청라지구
지난 24일 오전 11시 25분.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한 시간가량을 달리니
인천광역시 서구 검암동의 검암역에 도착했다. 검암역에서 청라경제자유구역(이하 청라지구)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지만, 30여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버스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서 30여분을 더 달리자 청라지구가 나왔다. 도착시각은 오후 1시 25분. 서울역에서 떠난 지 정확히 2시간이 걸렸다.
청라지구에 들어서니 공사판에서 굴러 떨어진 스티로폼과 갈가리 찢어진 부동산 현수막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인천 서구 경서동에서 청라지구로 진입하는 원전교를 건너자 공사 중인 ‘청라휴먼시아’, ‘힐데스하임’ 아파트가 보였고, 200여m를 더 가니 이미 입주가 끝난 ‘호반베르디움1차’가 보였다. 그러나 그 맞은편의 ‘웰카운티’(1220가구)·‘반도유보라’(1017가구) 부지는 착공조차 하지 않았고 이 부지에 들어설 예정인 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국제업무타운’, ‘국제허브’ 등 2년 전만 해도 ‘한국판 베니스’로 개발될 것이란 기대감이 넘쳤던 청라지구가 입주민과 건설사간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도 인천광역시 서구 연희동과 원창동 일대 1777만1000㎡(537만6000평) 규모로 조성되는 청라지구에서 아파트를 분양했던 건설사들은 청라지구에 ‘국제업무타운’, ‘로봇랜드’ 등이 들어선다고 광고했지만, 착공이 1년 이상 늦어지면서 아직 황량한 공터로 남아있다. 청라지구에 입주한 15개 단지 2200여명은 “명백한 분양 사기”라며 인천지방법원에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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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라지구 내 아파트 단지 내 상가. 편의점이나 세탁소 등이 거의 없고 대부분 부동산 중개업소가 입점해있거나 입점도 안한 곳이 많다.
◆말 뿐인 ‘국제업무도시’
지난 2005년 분양 당시 청라지구는 127만㎡(38만5000평) 부지에 88층의 랜드마크 타워와 국제적인 복합업무단지가 들어선다는 이유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ABN암로,
HSBC 등 외국계 금융기관 등이 이 랜드마크 빌딩에 입주하고, 테마형 레저·스포츠단지로 아쿠아파크·아시아컬쳐파크 조성 및 유통단지 시설도 들어선다는 것이 광고의 골자였다. 분양가도 주변 시세보다 3.3㎡(1평)당 150만~400만원 정도 비쌌다.
그러나 분양 당시 시행·건설사들이 내걸었던 광고들이 지켜진 것은 거의 없다. 현재 공사 중인 ‘한라비발디’(992가구) 사업 현장을 지나면 바로 펼쳐지는 곳이 국제업무타운·금융허브 부지다.
이곳을 방문한 날은 평일이었음에도 공사장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황량한 들판으로는 드문드문 아스팔트 도로가 끊어지다 이어지기를 반복했고, 수변공원으로 계획된 곳은 장맛비에 흙더미가 무너지고 모기떼가 들끓고 있었다. 인근의 한라비발디 공사장 직원은 “국제업무타운은 공사를 시작도 안 했고 1년째 저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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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라지구 내 공사현장. 이 현장 바로 앞에는 청라초등학교와 청라중학교가 있지만 바리케이트도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입주민들은 청라지구 아파트 단지 분양은 사기라며 원성을 높이고 있다. 인천 청라지구의 15개 단지 2200여 가구의 아파트 계약자들은
포스코건설 등 시행건설사 10곳을 상대로 계약해제 관련 소송에 나섰다. 청라지구의 입주민 연합회 관계자는 “랜드마크 빌딩이 들어서고 수변공원과 대형쇼핑몰 등이 들어서는 줄 알았는데 착공이 1년 이상 늦어져 아파트 값만 내려갔다”며 “기반 시설이 없는 것도 불편해 죽겠는데 아파트 값이 내려가는 것을 보면 더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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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라지구 내 국제업무타운 부지. 이미 1년째 착공이 미뤄지고 있으며 현재까지 개발 계획도 수립되지 않았다.
◆기반시설, 교통시설도 미비 청라지구에는 현재 5000여명이 입주를 했지만, 대중교통 시설은 거의 없는 편이다. 현재 청라지구까지 통하는 광역 버스는 단 1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1시간에 1대꼴로 지나다닌다. 지하철은 공항철도인 김포공항·검암역이나 인천 1호선 역까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만 이용이 가능하다.
공항철도 청라역은 현재 2012년 말 개통목표로 다음 달부터 설계 및 건설 발주가 이뤄질 예정이지만, 올해 말까지 1만여 가구 이상이 입주가 완료되기 때문에 불편한 교통상황이 당장 나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창 공사 중인 아파트 ‘린스트라우스’ 앞 정거장에서 가좌동으로 가는 42번 버스를 기다리던 구모씨(38·여)는 “보도블록도 없는데 비까지 와서 기다리기가 너무 짜증이 난다”며 “인천 시내를 나가려고 해도 1시간이 걸리고, 서울 한번 나가려면 2시간이 넘게 걸려 갇혀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구 내 안전시설도 취약하다. 이날 청라지구엔 비가 내려 보도블록이 없는 곳은 온통 진흙탕이었다. 심지어 이미 입주한 ‘중흥S-클래스’ 앞 인도에는 한 쪽만 끊어진 전깃줄이 널브러져 있었다. 도로 아스팔트는 움푹 파인 곳이 많았고 ‘호반베르디움1차’ 앞 사거리는 신호등마저 비닐로 감싸진 채 작동하지 않았다.
이 도로 앞을 무단횡단으로 건넌 청라중학교 학생 임모군은 “여긴 원래 횡단보도만 있고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다”며 “차가 오는지 본 다음 뛰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통·안전시설은 미비한 채로 방치되고 있지만, 관할지자체나 LH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인천시청 측은 “청라지구의 도로·신호등·횡단보도·전기 등등의 도시기반시설은 시청의 사업소격인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시청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ifez 측은 “도시기반시설이 아직 준공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2012년 6월쯤 돼야 인천경제자유구역 및 인천시청에서 관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LH측은 이에 대해 “청라지구는 국고지원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사업비 마련을 위해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 및 입주를 앞당겼고, 이때문에 도로·상하수도·전기 등 도시기반시설 준공이 상대적으로 늦어진 꼴이 됐다”며 “이런 경우 부분적으로 시청에서 도시기반시설에 대해 공용개시(특정물을 공용(供用)한다는 행정적 표시)를 해줘야 하는데 인천시청이 인력과 편제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공용개시를 내년 말로 미뤘다”고 말했다. LH측은 “시행사인 우리도 공사비는 책정돼 있지만, 관리비는 책정돼 있지 않다”며 “행정적인 측면에서 미비한 부분은 차후 인천시청과 협의해 개선해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