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익
1938년생. 80년대 한국의 경제 성공을 이끈 전두환의 경제 참모.
경기고 2학년때 검정고시를 보고 1년 일찍 서울대 외교학과 입학. 졸업후 한국은행에 재직 중 하와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1974년 경제기획원의 요직을 두루 차지.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은 김재익을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
당시 대학생이었던 아들이 전두환 정권에 협력한다고 극렬 항의. 이에 김재익은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결국 독재체제를 어렵게 하고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 정치의 민주화는 자연히 따라온다"고 타이름.
전두환은 김재익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이라는 말과 함께 모든 경제 정책에 전권을 위임.
대기업을 위한 차별 금융제도, 세제혜택 철폐를 주장.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공정거래제도 채택까지 주장. 그리곤 중소기업 진흥 재단 집중 지원했으며, 벤처 기업 육성 강조.
1980년에 이미 20년 뒤에나 가능할 지하철과 버스를 연계하는 대중 교통 시스템과, 전자 통신 기술로 발생할 정보 산업 혁명을 주장함.
전화기의 자급제를 실시를 주도. 기계식 전화기에서 전자식 전화기로 전환토록 한 것도 김재익의 노력, 세계 최고 수준의 전화 네트웍을 전국에 구축케 한 것도 김재익. 이후 컬러TV 송수신을 자유화한 것도 김재익이 주도한 일.
이중 곡가제와 같은 농촌 보조 정책 강력 비판. 이를 철폐해 농촌의 자생력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
기업과 정부의 극렬 반대에 맞서 부가가치세를 채택-유지함. 부가가치세는 오늘날 정부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세목 중 하나.
금융 실명제를 추진. 그러나 당시 대기업과 정치인 등 '비자금'을 다뤄야 하는 이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샀고, 결국 전두환에 의해 최종 좌절.
80년대 초반 자동차 산업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국은 내수 시장이 작아 자동차 산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했음에도, 그는 역으로 자동차 산업에 집중 투자할 것을 주장했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소 테러사건으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