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을 핵볕정책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다. 과연 햇볕정책은 핵볕정책인가.
햇볕정책이 핵볕정책이기 위해서는 다음의 문장이 참이어야 한다.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북한의 핵실험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햇볕정책이 없었더라도 북한이 핵실험을 할 수 있었다면, 북한의 핵실험을 햇볕정책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북한은 진정 핵실험을 할 수 없었을까. 혹은 하지 않았을까.
오늘날에 와서야, 특히 상업적 상용화가 가능한 부분에 있어서, 북한과 우리나라의 기술력 차이가 두드러지긴 하지만 사실 기초과학에 있어서는 적어도 90년대까지는 반드시 우리가 북한보다 앞선다고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남한이 그러하듯 북측도 기술적으로는 핵개발이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정치적 문제이든 경제적 문제이든- 그것을 실행하기 어려울 따름이었다.
사실 북한의 핵개발은 비단 김대중 정부 이후의 문제는 아니다. 김영삼 정부때 이미 북핵 경수로 지원사업 문제등의 논의가 있어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의 핵실험이 햇볕정책을 통한 대북지원 시행 이후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대북지원을 통한 달러가 북한에 유입됐고 북한의 핵실험이 시행되었다.
이것은 시간적 선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충분히 당연하다. 그렇지만 의심을 넘어 확신하기에는 핵을 향한 북한의 욕망은 너무 간절했다. 대북지원이 없었다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을만큼.
「남한은 매년 40억~50억 달러어치의 신무기를 사들이지만 북한은 달러가 없어 단 한대의 전투기를 살 수 없다. 10년이 지나면 남한에는 5백억 달러어치의 신무기가, 20년 후에는 1천억 달러어치의 신무기가 쌓인다. 그 동안 북한의 무기는 고철로 변해버린다. ...(중략)...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 한개는 10년 뒤에는 적어도 5백억 달러, 그리고 20년 뒤에는 1천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이렇게 엄청난 무기를 단돈 40억 달러의 경수로와 맞바꾼다면 김정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이다. 내가 김정일이라도 무슨 수를 쓰든 핵은 개발할 것이다. 1천억 달러면 무려 100조원 이상이다. 위는 좌빨 어용학자의 주장이 아니라 지만원의 주장이다. (한겨례, 1995. 2. 5)
즉, 햇볕정책이 있건 없건 북은 무조건 핵개발에 사활을 걸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햇볕정책으로 북에 유입된 달러는 핵실험을 1~2년 정도 앞당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시간의 차이일 뿐 핵개발은 햇볕정책과 상관없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을 핵볕정책이라 부르는 것이 온당한가?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위한 수단으로써 지만원이 제시한 방안은 외려 햇볕정책과 상당히 일치한다(비록 훗날 누구보다 햇볕정책에 대해 비난을 퍼붓기는 했지만 적어도 경수로 지원문제가 논의되던 시절에는).
「남한과 미국의 입장이 갈라져야한다. 북한의 핵과 가장 잘 바꿔질수 있는 것은 "군축"과 "개방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지 않은 경제원조"다. 이는 남북한 모두에게 이익이된다. 그러나 남한 정부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채 미국의 깃발만 높이 추켜들고 미국정부의 기수 노릇을 해온 것이다. 한국은 지금 철저하게 미국의 봉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과 바꿀 수 있는 것은 "구체적인 군축"과 "개방 없는 경제협력"이다. 이것을 김일성에게 제의해야 한다. 이는 미국이해 줄 수 있는 일도 도 아니며 중국이 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오직 남한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다.」
「북한의 핵을 중단시킬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한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방이라는 꼬리표가 없는 경제원조"와 "군축" 이다. 군축없이는 남한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여력을 가지지 못하며 북한역시 막상 핵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당근이 별로 없다. 그 당근들에는 모두 "개방"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지만원의 저러한 주장의 밑바탕에는 남북한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해야한다는 당위가 자리잡고 있다. 일단 서로를 믿고 조건없이 경제적 지원을 함으로써 한ㆍ미군의 북침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가라 앉혀야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끔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논리다. 쉽게 말하면 대치중인 상대에게 칼을 버리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칼을 버리면 얼마를 주겠다고 회유할 게 아니라, 칼을 버려도 아무런 해가 없을테니 칼을 버리고 말로 하자고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그리고 그것을 이은 노무현의 햇볕정책은 저러한 생각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 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그들이 종북이라서, 김정일에게 이롭게 하기 위한 동기로 한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 사실 구체적 정책을 따져보면 둘다 보수주의자였고 자유시장경제주의자였다. 김대중의 용공혐의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조차도 입증에 실패한 문제였다-성공했다면 당연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을 것이다-. 그들은 남북간 긴장이 완화되기를 원했으며 그것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대한민국에 이롭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물론, 이기적 동기, 그러니까 정책이 성공하여 실제로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이 눈에 띄게 완화가 된다면 이는 역사에 크게 남을 업적이 될 것이라는 개인적 욕심도 있었을 것이지만.
요약하자면, 햇볕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핵개발이 가능했다는 것은 그 인과관계의 추론이 어렵다(햇볕정책이 없었더라도 북한이 핵개발을 했을 동기가 충분하기 때문에). 선후관계를 곧바로 인과관계로 치환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다. 그러므로 햇볕정책을 「핵볕정책」이라 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