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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06 14:43
펌)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를 부흥했나
 글쓴이 : 골돌이뿌
조회 : 1,315  

한국경제는 월남전을 기점으로 급성장 했으며

여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확한 판단과 선택이 결정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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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월남전 파병이 미국의 일방적인 요청에 의해서 이뤄졌고 그 성과는 이에 따른 대가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을 안정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월남 파병 그 이면에는 
또다른 진실이 있다. 한국전쟁 덕분에 일본이 급성장 했듯이 박정희는 월남전을 한국발전의 급성장 기회로 만든 것이다.

한국 전쟁 후 우리나라에는 주한미군 2개사단이 주둔해 있었는데 이들은 한국의 안보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베트남 전쟁에 존슨정권이 깊이 개입을 하면서 주한미군을 빼서 베트남으로 보내는게 아니냐... 이런 
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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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에서는 월맹 공산 세력과의 전쟁이 연일 격화되고 있었다. 동서냉전 시대였던 당시, 
미국은 월남 공산화를 막기위해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다른 우방국들에도 지원을 요청한다.
당시 미국은 월남전 개입에 대해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존슨 행정부에게 
커다란 부담이었다. 당시 국제적인 월남전에 대한 인식은 내전이라는 사실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독립운동 세력
간에 전쟁이라는 인식이 있었기때문에 미국의 직접개입에대해 반대의사를 갖고있었다고 파악할 수 있겠다. 
전쟁을 비판하는 국내외의 여론을 돌려놓기 위해, 미국은 우방국들의 지원을 촉구하고 나선다.
존슨 미 대통령은 전세계 25개 국가에 친서를 보내 월남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보다 많은 깃발을 
월남땅에 펄럭이게 한다는, 이른바 모어 플랙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지원 요청에 응한 나라는 대만과 필리핀 등 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마저 정규군을
파병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우방국들의 참전을 통해 얻고자 했던 목표- 즉 전쟁의 정당성을 과시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않을 수도 있었다.


5. 16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지 여섯달만에, 박의장이 케네디를 만난다. 
여기서 박정희 의장이 한국전쟁의 경험을 언급하면서, 먼저 월남전 파병을 제의한다. 
케네디 정권때는 베트남에 대해 구체적으로 깊게 개입을 하고있지않았기 때문에 파병제의를 수락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박의장의 파병 제안은 거듭됐다. 더구나 미국에 오기 전 이미 군장성들과 이 문제를
의논했다고 말함으로써, 월남 파병이 즉흥적인 제안이 아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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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박정희는 대령급 이상 고위장교 10여명으로 시찰단을 만든 뒤, 두달 동안 월남에 관한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5월 11일 밤. 전용기편으로 극비리에 월남으로 보낸다. 
박의장은 월남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고 한국군의 파병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월남의 정세와 병력 배치, 우방국가의 지원 현황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함께, 한국군 파병의 절차까지도 제시돼있다.

태권도 교관을 먼저 보내야겠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동 외과병원을 보내서 불쌍한 사람들 치료해줘야겠다. 세번째 건설부대...

 

이 무렵, 케네디 암살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존슨 대통령이 새롭게 취임하면서, 월남 사태에 소극적이었던 미국 정부의 정책도 변하기 시작한다.

한국정부는, 김현철 주미 대사를 통해 또다시 파병 의지를 전한다.
미국이 요청한다면 한국은 3,4천명 규모의 군대를 월남에 보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64년 9월, 마침내 한국군의 1차 월남 파병이 이뤄진다. 
박정희의 지속적인 의지와 국제정치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였다.

 

64년 9월, 한국은 월남에 최초로 군대를 파병하게 된다. 의료진과 태권도 교관으로 이뤄진 비전투 부대 140명이었다.

당시에 전쟁은 월남과 미국군에 대단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군은 월맹군과의 전투에서
패배를 거듭했고, 비둘기 부대 선발대가 출발한지 20여일 뒤인 65년 2월 27일에는 미군의 주요 기지가 
베트콩들에게 피습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이후로 미국은 월남전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게 됐고, 한국에도 추가 파병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제까지와 같은 비전투부대가 아닌, 전투부대를 보내달라는 요청.


존슨 미 대통령이 자신의 전용기까지 보내, 박대통령을 초청한 것이다. 
박대통령이 워싱턴에 도착한 뒤, 존슨 미 대통령은 함께 거리 퍼레이드에 나섰고, '박대통령 부부의 날'을 
선포하는 등 대대적인 환영식을 벌였다.  한, 미 관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예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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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첫째날. 존슨대통령이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는 월남에 대한 추가 파병 문제였다.
바로 이것이, 박대통령을 초청한 이유였던 것이다.
하지만 박대통령은 즉각적인 답변을 주지않았다. 대신 한국의 경제 문제를 거론하면서 미국의 원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존슨 미대통령의 거듭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박대통령은 끝내 파병을 약속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방미길에 동행했던 김성은 국방장관과의 사전 교감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은 매년 군원이관이라고 국방비를 1년에 5천만불씩 감소시켜나가겠다는것을 협상을 통해 보류 시키기 위한
입맞춤이였던 것이다.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미국의 국방비 지원 중단 이른바 군원 이관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었다. 그리고 한국이 월남에 전투부대를 파병하는 문제는, 미국에 군원 이관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효과적인 카드가 될 수 있었다. 
전투부대 파병이 절실했던 미국은,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줄다리기를 거쳐 마침내 5월 19일. 한, 미 공동성명이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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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에는, 군원 이관의 재검토를 비롯해 북한 재침시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과 군사 지원,
차관 제공과 대미 수출 확대, 
KIST 설치 지원 등 
한국이 요구해온 조건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그리고 박대통령이 방미길에서 돌아온지 두달만에 국무회의에서, 전투부대 파병안이 결정된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은 파병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번 파병이 
앞으로 전투부대를 보내기위한 전초작업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야당이 미국대사의 설득을 통해서 갑자기 지지로 돌아섰다.

박정희는 여당과, 야당에게도 모르게 차지철을 통해 
파병 반대를 하도록 지시한다.
미국과의 실무협상을 보다 유리하게 이끌기위한, 일종의 연극이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파병 반대 사태에 미국은 당황했다.

 

주한 미 대사관을 통해, 한국군 파월 기간 동안 군원 이관을 완전히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전해 온다. 월남전 군수물자를 공급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여졌다. 
이런 진통을 거쳐 마침내 파병안이 통과된 것은 65년 8월 13일. 전투부대 파병 그 이면에는 한국정부의 끈질긴 외교 협상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무려 8개 부대, 연인원 30만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을 월남에 보내게 된다. 한국군 숫자가 5만명에 이르렀던 66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군대는 4천5백명, 뉴질랜드는 백50명, 타일랜드는 겨우 17명에 불과했다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였다.

박정희 정부는 존슨정부에게 요구한다.
전투수당 자막 8 이에 따르면, 대령은 하루에 6달러 50센트, 일병의 경우에는 1달러. 
이것을 연소득으로 계산하면, 360불 당시 1인당 GNP의 세배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전투부대를 월남에 보낸지 한달만에, 미국은 추가 파병을 요청해왔다.
박정희 정부는 브라운대사에게 파병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이를 문서화했다.


미국은 한국군 현대화 지원과 추가 파병에 따르는 경비 부담, 
파월 장병의 처우 개선을 보장. 
파월기간 동안 군원 이관 중단을 거듭 다짐.
주월 한국군에 필요한 장비, 용역, 보급품 일체를 한국에서 구매. 
월남에 가서 우리군대가 소요되는 모든물품 메이드인 코리아.
모든 시설. 막사, 비행장 
한국군의 현대화 (각서에 따라 미국은 한국에 최신예 비행기,탱크, 구축함 등의 장비를 제공했다.)
한국에는 건군 사상 처음으로 기갑여단이 창설됐고, 공군에는 신형전투기가 배치됐다.

한국에서는 파월 장병에게 지급할 군복과 전투식량같은 군수품들을 생산하게 된다. 
김치 통조림 등이 들어간 한국식 전투식량, K 레이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군수물자 수출을 비롯한 각종 잇권사업에 참여함으로써, 
한국은 수출과 무역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64년 640만불에 불과했던 수출은, 2년만에 2천4백만불로 증가했다.

 

 

또 한국 경제 발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경부고속도로는, 월남전이 한창이던 1970년에 개통됐다. 
고속도로 건설에 소요된 막대한 경비 가운데는, 미국에서 들여온 차관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상업차관같은 경우에는 철저하게 국내자본을 키우는데 투입이 됐고 
공공차원은 국가 인프라에 투입이 됐다.(상하수도 사업, 철도사업... )

한국기업들이 얻은 이익도 컸다.
60년대 후반 월남에 진출했던 한 하역회사의 매출은 연간 725만불로, 당시 국내 총 용역산업 수입의 13%를 차지할 정도였다. 
아무런 기술도 갖고있지않고 스스로의 시장개척능력이 없는 현대건설이 이때 군사토목기술을 전수받아 오늘날의 현대건설로 커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월남전에 참여하면서, 한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본격적인 파월이 시작된 65년, 한국의 GNP는 약 3천만불 그러나 72년에는 그 세배가 넘는 1억불에 이른다.


박정희 정권이 파병을 통해 얻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세계가 전쟁에 비판적인 가운데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박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수 
있었고, 이로 인한 미국의 전폭적인 원조를 통해 경제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 남짓, '잘살아보세'라는 구호가 무엇보다도 설득력을 가졌던 당시의 한국에서
이것은 그대로 박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로 이어지게 되었다.


자료 월남파병, 박정희의 승부수였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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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돌이뿌 13-01-06 14:43
   
좌익 똥파리 2마리가 하도 설쳐대서 글 펌 했뜸 ^^
     
술에술탄듯 13-01-06 14:44
   
ㅋㅋㅋ잘하셨음 ㅋ
SURF 13-01-06 14:53
   
현실은 경제 성장률에서 역대 정권 중 최악 수준..^^
늘푸름 13-01-06 14:5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것도 모르는 좌좀들이 박정희집권전 우리나라는 최빈국수준이었는데
지금과 같은 수준인줄 알고 있음.
마이너프레… 13-01-06 14:59
   
쓰레기 국회의 발목을 묶은 시월 유신도 신의 한수였음.. 지금도 쓰레기인 국회 70년대는 어땠을거 같음..
나름 13-01-06 15:17
   
당시 희생의 혜택을 보고 있는 입장이지만... 전쟁으로 돈을 버는 행위를 자랑스러워하는 건 너무 비인간적임...
confer 13-01-06 15:24
   
이거 재밌을 거 같은데..
혹시 방송 제목하고 어느 프로에서 했는지 알 수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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