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지만원이란 사람부터 알아보죠.
- "북한특수군이 광주학살” 지만원 항소심 유죄(2013.5.15)
- cbs에서 독립운동을 욕하면서 "한국민족 참 더럽다. 할수만 있다면 멧돌에 갈아버리고 다시 좀~"
"김구는 테러리스트다" 망언
- 일본에 대해 위안부 시위를 하는 할머니들을 보고 "일당 3만원받은 가짜"
- 한승조의 "일제 식민지배는 축복"발언을 옹호하며 "일본의 선진화된 과학기술과 지식과 절제로 훈련된 정신은 잠자던 조선인들에게 커다란 자극이 됐음"
- 문근영의 8억 5천 기부활동을 "문근영은 빨치산의 후손, 좌익들의 기부천사만들기 작전이다"
등등 반민족, 반민주적 발언을 쏟아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대표적으로 5.18을 북한과 김대중이 짜고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하는데요,
그 근거중 하나로 "38개의 무기고가 4시간만에 털린건 분명 북한군개입없이 불가능했다"
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사실일까요?
1. 북한군 개입없이 무기고를 터는게 불가능할까?
군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무기고를 병기창으로 착각하시는것 같네요.
얼마전까지만해도 예비군무기고는 동사무소나 동네 파출소에 있었습니다.
경비도 허술해서 예전에는 어린 학생들이 무기고에서 총기를 탈취해서 놀았다는 기사도
심심치않게 나왔습니다.
예비군 무기고라는게 엄청나게 크고 대단한 건물이 아니라 그냥 동네 창고입니다.
자물쇠만 따면 열리는 거죠.
그리고 "꼭꼭 숨겨져있는 무기고 위치"라고 지만원이 주장하는데,
이것도 당연히 거짓말인게 예비군이라면 무기고위치정도는 알고있고
동네주민이라면 당연히 파출소위치를 알고있기때문에 무기고 터는것 정도야 식은죽 먹기보다 쉬운일이죠.
더군다나 당시 경찰들이 시민군이 무기고 터는것을 제지하지않고 암묵적으로 방치했기 때문에
별다른 희생없이 쉽게 무기를 획득했다고 당시 경찰들이 증언하고있습니다.
"오히려 무기고 위치를 모르는게 간첩아니냐?"는 증언도 있죠.
따라서 북한특수부대까지 갈것도 없이 예비군이나 동네주민이면
누구나 무기고위치정도는 알수 있었다는 겁니다.
2. 4시간만에 38개나 되는 무기고가 습격당했다.
지만원의 주장은 21일 오후 1시부터 4시간동안 38개의 무기고가 동시 다발적으로 습격당했단 건데요,
이 주장 자체가 거짓말 입니다.
자료출처를 보면 보안사 및 광주지검, 경찰서들의 자료이니 신뢰도가 높을겁니다.
오히려 보안사는 당시 전두환이 지휘했으니 시민군에겐 불리한 자료지요. 하지만 믿어봅시다.
당시 경찰이나 검찰, 보안사 기록을 봐도 21일 13시부터 17시까지 무기고 습격은
38건이 아니고, 22일이나 그 이후에도 무기고 습격은 지속되었으며
따라서 지만원은 광주항쟁 중 발생한 무기고습격이 총 38건(38건이 맞는지도 불확실하지만)이고
21일 13시부터 4시간동안 집중적으로 무기고 습격이 발생했다는
서로다른 두가지 사실을 마치 하나인것처럼 조작해서
21일 13시부터 4시간동안 38개 무기고가 동시에 습격당했다는 날조사실을 꾸며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지만원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투입된 북한군인이 광주에 도착한 날짜가
23일인데 이땐 이미 한창 무기고가 털리고 난 뒤인데 어떻게 북한군이 개입했다는지 의문이네요.
3. 숨겨진 38개나 되는 무기고를 습격한 조직적움직임은 북한군개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무기고습격은 그렇게 어려운것이 아니며,
무기고습격이 4시간동안 이루어진게 아니며, 38개인지도 불명확하고,
무기고가 꼭꼭숨겨진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무기고가 38개라며 다수의 무기고가 동시에 털린것처럼 날조하는데
당시 화순, 남평등 전라도의 지역 파출소등에 있는 무기고 수는
269개정도라고 합니다. 마치 대부분의 무기고가 동시에 습격당한것처럼 말하고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무기고 습격은 무기고중 일부에 해당됩니다.
또한 북한특수부대같은 집단만이 가능하고
시민군같은 오합지졸이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우선 시민군은 오합지졸이라는 막연한 전제부터가 잘못이죠.
21일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하자
총을 든 시민군이 활보하던 광주가 약탈이나 폭력사고도 없었고
병원이나 공무원, 경찰들도 상당수가 정상 출근했으며
어느때보다 안정적이고 질서정연했다는 사실만 봐도 상당히 조직이 잘 되있다고 추측됩니다.
게다가 시민군의 주축이 되는 대학생, 예비군들은 군사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을텐데
허술한 동네 무기고터는게 불가능했을까요?
그리고 무기고습격을 경찰들이 묵인하거나 동조한것이 사실이기때문에
꼭 북한군이 아니고서는 그럴수없다라고 믿는건 말 그대로 믿음일 뿐입니다.
설사 4시간만에 38개를 턴게 사실이라도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당시 김일성은 오판말라가 주요 구호였다는 보수인사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공시위의 성격이있었기때문에 북한 특수부대가 시민군을 지휘하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겁니다.
당시 시민군내에서 간첩 등 불순분자를 가려내어 처벌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니까요.
* 출처는 여러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