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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나 운동과 폭동을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는 범국민적 지지가 있었는가 전국적 이었는가 이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닙니다.LA사태는 LA의 흑인들이 들고 일어 났지만 전국적인 지지가 없었읍니다..이와 다르게 4.19는 범국민적 지지가 있었죠..광주...글쎄요 알아서 판단 하시길...
80년에 서울의봄이란 서울에서 대규모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은 10.26후 발동한 계엄령(군부 통치)을 철폐하고 12.12 쿠데타세력이 아닌 민간에 정권을 넘기라는 것이 주된 화두였습니다.
광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계엄령해제가 주된 구호였고, 공수투입으로 과격한 진압과정에 시민이 저항하며, 그 구호는 신군부의 수장 전두환에 대한 비토로 연결되죠.
--- 5.18이 자진해서 일어나서 그 많은 사상자가 난 것으로 생각합니까?
5.17에 이미 계엄 전국확대 조치하고, 공수부대 움직이고 개원예정이던 국회는 무력화 시키고 당시 유력정치인들인 김종필/김대중/김영삼을 필두로한 상당수 정치인들은 가택연금이나 연행시킨후 벌어진 일.
5.18 이전 광주는 오히려 5월서울보다도 거친 시위가 없었고,
공수투입하여 대학을 봉쇄시킬 필요도 없었음에도 과격한 공권력이 사용되었고,
이에 저항하는 과정이 벌어진 것인데,
5.18이 빌미를 주었다?
전두환이 군권/계엄사/보안사/중정등 장악하고 이미 최규하는 명목뿐인 대통령이었고,
5.18 직후 5.31 일사분란하게 전두환은 국보위 위원장에 취임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 통해 모든 권력을 틀어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