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소문 파다해 증거인멸 시간 벌어준 셈
롯데케미칼의 해외 원료 수입 과정에서 일본 롯데물산을 중개업체로 끼워 넣어 200억원대 통행세를 통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그뿐만 아니라 롯데가 중국 홈쇼핑업체 러키파이 등 해외기업 10여곳을 인수하면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롯데자산개발의 중국 청두 쇼핑타운 설립에 계열사들이 부당한 자금지원을 했다는 의혹도 규명하지 못했다. 중국 쪽 사업은 신 회장이 공을 들여 지휘한 사업이다. 또한 제2롯데월드 건설 인허가에 대한 수사는 시작도 못 했다.
총수일가 외 계열사 사장 등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도 미약했다. 그룹 차원의 경영비리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56),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65)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신 회장 압박에도 실패했다. 계열사 사장 중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것은 롯데케미칼의 270억원대 소송 사기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기준 전 롯데물산 사장(70)뿐이다.
한편, 검찰 수사방식은 롯데가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할 수 있도록 되레 시간을 벌어준 측면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지역 한 변호사는 "본격적인 수사 착수 전부터 검찰이 롯데에 대한 수사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는 업계에 돌고 있었다"며 "대기업 법무팀은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검찰 수사 동향을 예의주시해 왔기에 200여명 넘는 인력이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롯데 수사를 두고 유사한 범죄혐의가 있는 대기업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 업무상 배임 관련 판단이 어렵다. 기업범죄에서 '경영판단'이라고 하면 판단을 내리거나 처벌할 수 없는 구조가 된다"면서 "법원의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검찰도 보여주기식 수사가 아닌 기업인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증거를 최대한 보강해 기소해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