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닷컴에서 갑제 옹의 관련 글들은 한 번 읽어볼 만 합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잘 기술해 놓았습니다.
북한관련설은 탈북자 1명이 북한에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카더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근데 반대로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처럼 사전에 계획된 대량학살을 군이 벌였다는 것도 잘못이란 것이 갑제 옹 이야기입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일은 철저히 우연적이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비극이란 이야기죠. 그와 별개로 원체 불법적인 쿠데타를 벌이고 계엄령을 내리고 전국 각지 대학에 군을 진주시킨 계엄군 측이 원인 제공을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 점에선 민주화운동이란 말도 일리가 있는데, 이게 또 광주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뉘앙스를 풍겨서 좀 부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민주화사태라고 하면 좀 나으려나?
갑제 옹 왈,
[광주發 과장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사망자가 2000명이나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수 차례의 정부 조사로 부정되었다. 또 하나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 나오는 학살장면이다. 5월21일 정오 무렵 전남도청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비무장 시민들을 향하여 공수부대원들이 명령 일하에 일제 사격을 하여 수백 명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장면은 악랄한 空想이고 조작이다. 그런 학살도, 그런 사격명령도 없었다. 시민들이 차량을 탈취하여 공수부대원들을 덮쳤고, 현장에서 군인 한 명이 깔려 숨지자 군인들이 버스를 향하여 발포한 것이 본격적인 총격전의 시작이었다. 이런 미신에 북한군 개입이란 또 다른 미신을 추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正義는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갑제 옹의 '공수부대의 광주사태' 중
[11여단소속 통신병 慶箕萬씨의 증언―.
『우리 등뒤에 있던 APC에 누가 화염병을 던졌는지 불에 타기 시작했다. 우리 대열은 불을 끄려고 뒤로 물러났다. 이때를 틈타 시민측에서 장갑차와 버스를 앞세우고 돌진해 왔다. 우리는 도청 쪽으로 달아났다. 실탄이 없었기에 달아나는 수밖에 없었다. 달아나면서 보니까 시민측의 장갑차 한대가 우리 공수부대 대열에 돌진, 두명이 깔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 11여단의 권용문 상병은 머리가 장갑 차 바퀴에 눌려 짓이겨진 채 즉사했고 다른 사병은 가볍게 다쳐 곧 일어나 달아났다』 공수부대 대열의 뒷쪽에 있었던 전투경찰 南東成상경은 이렇게 기억했다. 『장갑차와 함께 버스가 돌진해 왔는 데 한 장교가 권총을 빼들더니 운전사를 향해 사격을 했다. 운전사가 맞았는지 버스는 분수대 근방에서 멈추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이 버스를 향해서 사격을 했다. 한 장교는 M16을 들고 나오더니 엎드려 쏴 자세로 사격을 하는 것이었다』 ]
물론 이 전에 전남대에 계엄군이 진주할 때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 학생들을 계엄군이 과도하게 진압한 것이 시 발점입니다.
이건 수사보고서에 나오는 내용.
[(7) 死亡者 數
193+47명 이외의 사망자 수 확정은 불가능
현재까지 정부의 관련 資料에 의하여 확인된 광주시위 관련 死亡者는 군인 23명·경찰 4명·민간인 166명 등 모두 193명이고 광주 시위 관련 행방불명자로 인정되어 補償金이 지급된 사람은 47명이다.
이 死亡者數는 당시 死體로 확인된 숫자이나, 死體중에는 身元이나 사망 경위가 일체 불상인 경우가 많다. 한편 목격자의 진술 등에 의하여 死亡者가 있음은 확인되면서도 당시 死體가 발견·확인되었는지 여부나 신원불상인 死體와의 동일성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이 현재로서는 곤란하여 당시의 실제 死亡者 數를 지금 다시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 생각엔 광주민주화운동이란 말보다는 오히려 광주사태라는 말이 더 적당한 것 같습니다.
계엄군이 전남대 등에 진주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시위 학생들이 의외로 강력히 저항하자 흥분하여 과도하게 진압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근처 일반 시민들까지 개패듯이 패니까, 광주 전역에 '경상도 문디들이 광주 사람 다 때려죽이러 왔다 우리도 안 죽을라면 경상도 문디들 때려죽이자 워~~" 뭐 이런 유언비어까지 퍼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악화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의 광주 사람들이 무슨 민주주의에 대해 대단한 개념이 있었다거나 딱히 타 지역 사람들에 비해 신군부 발호에 대해 저항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닌 듯 하거든요. 대학들에 계엄군이 진주하는 것은 광주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니구요. 폭동이냐 봉기냐 민주화운동이냐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복잡하고 불행한 사태라고 봅니다. 다만 광주 사람들이 계엄군에 맞서 의도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섰다는 식의 민주화운동이란 용어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찌어찌하다보디 불행한 방향으로 사태가 흘러가 이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당한 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