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최후의 변론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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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는 ‘내가 (거사를) 안 하면 틀림없이
부마항쟁이 5대도시로 확대돼서
4·19보다 더 큰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고 판단했다.
이승만은 물러날 줄 알았지만 박정희는 절대 물러날 성격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김재규는 ‘
캄보디아에서 300만을 죽였는데 우리가 100만~200만 명 못 죽이겠느냐’고 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면 나를 총살시킬 사람이 누가 있느냐’라고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재규는 더 큰 희생을 막기위해서 했다고 주장했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