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논란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사회 지배층의 뻔뻔한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친일 등 역사왜곡 논란을 빚은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14개 고교가 채택을 철회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할 고등학교는 0%대에 머물 것이 확실해 보인다. 교육부가 채택을 번복한 학교들을 상대로 번복사유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특별조사를 시행해 압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사실상 여론의 판단은 끝난 것으로 보인다.
국민 세금인 정부 예산과 국방부의 호국 장학금으로 설립돼 주로 군인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기도 파주의 한민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경북지역의 청송여고 등에서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했다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한다. 한민고의 경우 역사교과서 선정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들 학교 역시 다른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학부모들과 학생, 그리고 국민여론의 판단을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역사교과서 파동은 박근혜 정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들의 의사와 사회의 상식에 반하는 정책을 박근혜 정권이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보여준다.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보다 ‘자랑스런 불통’ 운운하는 박근혜 정권의 일방통행식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상당수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사안이기도 하다. ‘종북몰이’와 같이 우리사회를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몰아넣는 ‘우익’의제들에 대해 국민들의 ‘피로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번 파동은 또한 관료들의 맹목적인 보신주의적 태도의 문제 역시 잘 보여주었다. 사건 초기, 수많은 역사 왜곡, 사실관계 오류 등의 문제가 빗발쳤을 때 이를 명분으로 정부 차원에서 정리할 수 있는 문제였다. 보수세력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역사전쟁에 정부가 교과서검정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전쟁의 당사자가 되면서 사안이 커졌던 것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태산명동서일필’과 같은 이번 교과서 채택파문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번 파동은 무엇보다 한국사회와 역사의 근원적 과제를 다시 환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해방이후에도 대대손손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사회 지배층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을 비롯, 우리사회의 지배층들은 가족사에 있어 친일논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그 같은 가족사의 친일반민족행위로 인해, 어떤 명분과 이유가 있다 해도 오해받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에 국민들에게 자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함에도 그들은 오히려 뻔뻔하게 목소리를 높혔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 지배층의 대변지라는 평가를 받는 ‘조중동’의 보도에서 국민들은 이 같은 모습을 눈으로 확인 수 있다. 이들 언론사들은 줄곧 교학사의 역사교과서를 옹호하는 논조를 보여 왔다. 최근 전국에서 역사교과서 채택무산이 잇따르자 일제히 약속이나 한듯이 철회 요구를 비난하는 사설과 기사를 게재했다.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말라고 했다. ‘조중동’은 신문 자체가 친일의 원죄가 있거나 혹은 창업주나 전 사주가 친일행위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까지 등재되어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1930년대 중일전쟁 이후 노골적인 친일 행태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당시 신년호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실어 찬양했고, 일왕에 대한 폭탄 투척 사건을 벌이려던 이봉창 열사를 비난하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동아일보 역시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에 대한 일장기 말소로 정간된 이후 복간되면서 “일본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사명을 다하겠다”고 밝히며, 친일의 길로 나갔다. 이로 인해 두 회사들 사주였던 방응모와 김성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중앙일보 역시 전 회장인 홍진기도 일제시대 당시 판사로 근무한 전력 등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국민들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번 교과서 파동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가족사에서 친일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박근혜 대통령과 ‘조중동’의 명백한 패배이자 역사의 정통성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명백한 승리다. 이번 교과서 파동은 한국사회 지배층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긴 채 국민들에게 뻔뻔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주입하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