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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23 14:24
간첩은 남한내에 500만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 독립군후손
조회 : 1,652  



대구는 일제강점기, 해방정국 미군정기의 모스크바’로 불릴만큼 사회주의, 공산주의운동이 왕성하던 곳이었다. 광복 이후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USAMGIK) 기의 남한내 민중들의 삶은 굶주리는 처지였다. 미군정의 쌀 배급 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콜레라가 창궐한 대구의 굶주림은 특히 더 심했었다. 대구, 경북 일대에 2천여 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자 치료를 위한 조치들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전염을 막는다며 대구를 봉쇄해버린 탓이었다. 차량은 물론 사람조차 시경계를 넘을 수 없게 되면서 그 결과 농작물과 생필품 공급이 끊어지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쌀이 부족했다. 당시 돈이 있다해도 쌀을 구할 수 없어 콜레라를 치료하는 의사들조차도 콩나물과 쌀로 죽을 끓여 먹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또한 국립경찰[3]로 채용된 과거 친일파 출신 경찰들이 일제시대 방식 그대로 농민들의 쌀을 강탈하다 시피 공출해갔다.[4][5] 친일출신 경찰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매우 커져갔고, 경찰은 이에 대해 보복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었다. 이러한 가운데 대구경북 일대의 민심은 매우 흉흉했다.[4]
한편, 1946년 5월,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미군정에서 '공산당 활동 불법화'를 공표함과 동시에 공산당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령을 내렸는데 박헌영계열 조선공산당세력들에서는 "미군정에 대항하겠다."면서 '신전술'이라는 방식을 채택하여 더욱 급진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 이어 공산당과 전평은 노동자들을 선동하여 1946년 9월에 철도노동자, 운송업노동자들이 주도해 대대적인 파업을 벌였는데, 이것이 9월 총파업이다. 9월 총파업은 부산지역을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번져나갔었다. 이렇게 되어 공산당과 전평은 9월 총파업을 주도해 나아가 본격적으로 미군정에 정면충돌을 벌였다.[6] 9월 총파업으로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져나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미군정은 국립경찰과 반공청년단체를 투입하여 파업에 진압하였으나, 여기서 의외의 사태를 맞게 되는데 대구지역 노동자들의 파업 시위에 경찰이 발포하자 즉흥적인 폭력 사태로 발전되어 버렸다.[7]

조선공산당에서 주도하여 9월 총파업을 전개했을때, 대구에서는 전평 지도부에서 9월 2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 10월 1일까지 파업과 시위가 계속되었다.[8] 10월 1일 대구지역에서 노동단체들이 모여 메이데이 행사를 개최했다. 해주로 피신했다가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박헌영은 경성부로 내려와 경성의 메이데이 행사에 참석, 축사를 낭독했고 타지역의 메이데이 행사에서도 그의 축전이 낭독되었다. 그러나 메이데이 행사는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 미군정에 대한 항거와 폭력사태로 변질되어 갔다.
그런데 10월 1일 저녁, 대구시청 앞에서 기아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위 도중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황말용, 김종태 라는 노동자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발원지인 대구시청 자리는 오늘날 경상감영공원이다. [8] 사태가 심각해지자 박헌영은 무력 시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고, 불필요하게 미군정을 자극해서는 안된다며 중단을 촉구했지만 사태는 걷잡을수 없이 확산되었고, 경찰관과 행사 참가자 간의 물리적인 폭력사태로 진행되었다.박헌영은 즉시 경성부를 떠나 피신하였다.
다음 날 아침,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2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이 시내에 집결하기 시작했고 굶주린 일반 시민들과 학생들도 시위에 합세했다. 만여명의 군중에 포위된 대구경찰서장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선언하고 유치장 열쇠를 건네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을 석방하게 했다. 조선공산당 지도부의 통제를 받는 노동자들은 질서 있게 경찰권을 인수하려 했다. 그런데 이때, 거리 한쪽에서 흥분한 군중들이 경찰에 투석을 시작했고, 궁지에 몰린 경찰관들도 자위권을 발동해 순식간에 17명의 시위대를 사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9]

분노한 군중들은 폭도로 변했다. 군중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동향을 살피던 정사복 경찰관들을 구타하거나 경찰 무기고를 털어 총기로 무장했다. 처음에 평화시위로 시작하다가 폭력사태로 돌변하자 일부 젊은 공산당원들은 시위의 선봉에 섰으나 고참 당원들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뒷전에서 이리뛰고 저리 뛰어다니기만 했다.
군중들은 부잣집과 과거 친일파들의 가옥을 털어 생필품이나 식량등을 약탈했지만, 각자 갖고 달아지 않고 길바닥에 쌓아놓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일반 상점이나 은행 같은 곳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미군정은 이튿날인 10월 2일에 대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을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했다. 그러나 미군 개입으로 시위가 대구 인근인 경산군성주군영천군 등으로 확대되면서 경상북도 일대에서 민중들과 미군정간의 충돌은 멈추지 않고, 계속 발생하게 되었다. 이후 경북 지역 민중시위 진압 과정에서 또다시 경북 지역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1946년 말까지 계속되었다.
시위 가담자 일부는 이웃 달성(達城)으로 달려가 그곳 경찰서를 습격하고 군청을 불사르는 등의 시위를 일으켰으며, 이 사건으로 경찰관 여러 명이 살해되었고, 달성군 군수 등 여러 명이 불에 타 죽었다.
대구 10.1 사건은 조선공산당의 지도와 영향 아래 발생하였지만, 지역별로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미리 통일적으로 준비되거나 철저히 계획된 사건은 아니었다.[11] 이미 박헌영[12]이강국이주하 등 간부들에 대한 검거령이 내려져 일부는 월북하고 일부는 체포되었으므로, 조선공산당의 영향력은 전국 단위의 조직적인 봉기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구미 사건은 대구사건에 영향을 받고 발생하였고, 달성군, 성주군, 칠곡군, 영천군, 의성군, 선산군, 군위군, 경주군에서도 봉기가 일어났지만, 일반적으로 사태의 단위는  이상으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시위대는 미군정의 경제 정책에 대한 반발과 경찰과 같은 핵심 행정기구에 친일파를 그대로 등용한 과거사 미청산에 대한 반대, 행정과 치안에 인민이 참여하는 인민위원회 설치 요구 등의 주장을 내걸었다.

피해

대구 10.1사건은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로 확장되면서 경찰력만으로는 진압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각 지역에서 미군과 남조선국방경비대를 비롯하여 한민당세력, 민족청년단서북청년회백의사 등 반공주의 우파 인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로 인해 족청백의사서북청년회 등 각종 반공주의 우파단체 관련자들이 시위에 가담한 좌파를 체포한다는 명분으로 테러 또는 재산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속출하여 좌파와 우파간의 이념갈등을 불러왔다.
이 사건의 정확한 규모는 기록 미비로 알려지지 못하였고, 2차 피해를 우려한 참가자들의 신고도 적어 피해 상황은 명확히 추산할 수 없다. 대구를 포함한 경상북도 지역에서만 사망자가 공무원 63명, 일반인 73명으로 총 136명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역시 경북 지역에서만 관청 건물 4동과 일반 건물 6동이 불에 타 전소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체포된 사람은 수천 명에 이르렀다.박정희의 형 박상희는 선산군 구미 지역에서 경찰과 시위대를 중재하던 중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사망하였다
"북, 61년 5.16주도세력에 거금 전달"
박정희 兄 상희와 대구공산폭동 - 인민재판 유일 지역
 대구는 일제강점기, 해방정국 미군정기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릴만큼 사회주의, 공산주의운동이 왕성하던 곳이었다
 조선공산당에서 주도하여 9월 총파업을 전개했을때, 대구에서는 전평 지도부에서 9월 2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 10월 1일까지 파업과 시위가 계속되었다.[8] 10월 1일 대구지역에서 노동단체들이 모여 메이데이 행사를 개최했다.
 노동자들이 시내에 집결하기 시작했고 굶주린 일반 시민들과 학생들도 시위에 합세했다. 만여명의 군중에 포위된 대구경찰서장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선언하고 유치장 열쇠를 건네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을 석방하게 했다. 조선공산당 지도부의 통제를 받는 노동자들은 질서 있게 경찰권을 인수하려 했다
분노한 군중들은 폭도로 변했다. 군중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동향을 살피던 정사복 경찰관들을 구타하거나 경찰 무기고를 털어 총기로 무장했다
군중들은 부잣집과 가옥을 털어 생필품이나 식량등을 약탈
미군정은 이튿날인 10월 2일에 대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을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했다. 그러나 미군 개입으로 시위가 대구 인근인 경산군성주군영천군

당시 대구경북은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많았던 지역입니다.조선의모스크바 동양의모스크바라고 불릴정도로 공산당 주도세력이 한반도 공산화는 대구서 부터라는 구호로 한국을 붉게 물들려고 했었습니다.

대구경북의 200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지역 주민들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대구뿐아니라 인근 구미부터 공산세력의 범위는 도민축제라고 할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당시 대구가 공산당의 특별시라면 평양은 군청소제지로 봐야 하는게 역사학계 공통된 인식입니다.무기고를 털었고, 먼저 무장 했으며, 경찰관을 죽이고(총기,화영,폭력) 각종 물품을 약탈 했습니다.미군정과 대치하면서 양키 고우홈을 외첬습니다.

그중심에는 박정희와 박상희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2대 공산주의집안이 있습니다.김일성집안과 박정희집안..박상희가 바로 한국 공산당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박정희는 군책책임자..즉..공산당의 군권의 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김일성이 쿠테타 직후에 축하성명을 준비하고 간첩접선과 간첩자금을 받았습니다.

그사람이 고향지인 황태성 입니다.박상희의 죽마고우...박정희의 멘토

그때가 가장 한국의 민주주의와 주권이 위협받았습니다.한국은 자유 민주주의를 국시로 여기고 있습니다.아직도 남로당 공산세력들은 한국에 수백만이 있습니다.한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 나서는 안되겠습니다.

 


출처:백과사전


호남지역 공산주의 운동(박정희 주도)

윤보선 대선후보와 박정희 후보의 경선중에 1963년 10월 13일자 동아일보의 폭로입니다.  박정희소령는 남로당 빨갱이 중요 간부로서 육본정보부에서 암약하다 김창용에게 체포되고  1949년 2월 13일 육사졸업식에 참석하였다가 즉시 체포  군사재판에서 검사는 사형을 구형하였고  재판관은 무기징역을 언도 합니다. 일본육사 동창생 백선엽중령을 만나고 싶다 애걸하며  전기고문 몇번하자 빨갱이 동료들을 불어대는 조건으로  재판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게 됩니다.  당시 그가 발언한  군내부의 빨갱이 150여명은 전원 사형되어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고 합니다. 형인 박상희는 대구폭동을 선산지역 남로당 위원장을 하면서 인민재판하면서 양민학살까지 자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국군이진입하자 논두렁에서 국군의 손에 총살되었습니다.  혈서를 쓰면서까지 조국을 배신하던 매국노들이 뭐가 부족해서 해방후에 형제가 나란히 빨갱이질 까지 했는지 그것은 누구도 이해 못할 부분이지요 그들이 항상 최선의 선택이었을 때 조국은 언제나 최악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국을 배신하고 왜왕에게 혈서로 [일사봉공 견마지]로  한번죽어서라도  일왕의 개와 말로 살고 싶다던 23살의 조선청년 박정희 아니 다까기마사오는  구테타를 일으켜 집권하고 18년간 독재하게 됩니다.  독재가 길어지고  이젠 죽을때까지 집권하고 싶은 욕망에  유신개헌까지 시도하다.  김재규의 손에 궁정동 술판에서 시바스리갈에 취해 서거[이것도 서거인가?]총살되게 됩니다.

술판에 여자를 불러 취한 그의 눈동자에 비친 조국의 모습은 어떤모습이었을까요 ? 혹자는 게타리를 올리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하는데 -- 허리띠가 너무 낡을 만큼  검소했다는 증거라는 군요   만약 종신집권 유신개헌이 성공했다면 세습박씨왕조을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급 북괴처럼 박지만이나 박그네여왕을 모시고 있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50대이상은 박정희를 반신반인으로 믿고 있습니다. 북괴의 김일성이가 신이 된것처럼 동시대를 살았던  조선의 백성들은 그들의 우상화에 세뇌되었지요 경제성장은 8-9% 성장했으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 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성장속도로서 일본과 싱가포르보다 뒤처지며 필리핀 베트남 보다는 빠른 속도 입니다.  중국은 `13-14%의 경제성장을 하는 것으 보면  박정희는 개발도상국의 절호의 기회를 독재하느라 놓친 장본인 이라는 악평도 있습니다.  박정희 사망후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이르러 우리의 경제성장은 10%에 진입하게 됩니다.  독재의 종식이 우리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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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간첩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북에서 직접 내려온 남파간첩 1천명~ 5만명? (추정)


2>박정희 형제가 대구와 여순지역에서 일으켰던 공산주의 운동때 동원된 공산주의자들..


모두 합하면 500만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출산률을 계산하면 2.5명만 잡아도 500만이 넘씁니다.


박정희 형제의 공산주의에 세뇌사람들까지 직간접으로 포함하면 500만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자를 색출 합시다.



ㅡ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애국보수시민ㅡ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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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후손 14-03-23 14:26
   
국정원은 정권의 댓글만 달고 있으니..

군사이버사, 국정원, 십알단등 공무원과 국가기관은 간첩은 안잡고

선거개입과 부정선거만 하고 있으니..

간첩이 전국에 들끊고 있습니다.

간첩잡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킵시다.
사랑이 14-03-23 14:28
   
그래서 반공 박정희가 없앳지
그땐 양대 이데올릭에 머가옳은 모르고 휩쓸렷던 시대인대 지금은 변햇지 그지역민들
근대 아직도 안변한 곳이잇고 안변하는 사람들이 잇다는것이다
그것이 변태대어 정치적 구도로  이상한 이념으로 변질대엇다
     
독립군후손 14-03-23 14:31
   
대구경북에서 200만명

여순지역에서도 박정희가 공산주의를 일으켰지요.

박정희가 없애긴 뭘 없에요..

미국의 정보기관과 정부도 박정희는 극좌악 빨갱이로 인증하는데...

독재 빨갱이는 북괴 김일성과 남괴의 박정희 입니다.

그리고 그지역 주민들? 어디를 말하세요? 대구경북? 여순?
사랑이 14-03-23 14:29
   
500만이아니라 남한 인구전체를 그들화 시키려하고잇다
그땐 통일대겟지 북의 사사으로
     
독립군후손 14-03-23 14:34
   
여순지역에서 박정희가 남로당 군책으로 사형선고 받았습니다만?

만주지역에서 조선인 독립군 때렵잡기 1등이었던 친일장교선배 백썬엽이가 구명해서..

겨우 무기징역...

미국정부도 인정했던 빨갱이 사건을 부정하는 겁니까?

미국을 종북으로 보시는지?

사상이 의심스럽네요.
사랑이 14-03-23 14:36
   
박정희는 그시대에 그정도의 정치를 한거면 잘한것 안입니까
더바라면 욕심을 넘어서  미움 이지요
     
띠뾔띠뾔 14-03-23 14:44
   
노무현 김대중도 그시대에 그정도의 정치를 한거면 잘한것 안입니까
더바라면 욕심을 넘어서 미움 이지요
     
까망물감 14-03-23 14:44
   
경제는 잘했는데 나머지것들이 영..... 이라고 생각합니다ㅜㅜㅎ글구....해방때 우리나라 인구가 몇인데 간첩이 남한지역에500만이라구하시는지..... 공산주의사상 가지고 있다고 싹다 간첩으로 몰기엔 문제가있지않은지요.....
          
독립군후손 14-03-23 15:24
   
해방후 2천만넘었죠..일제강점기때 2천만..

위의 백과사전에 나오죠 당시 대구경북 200만명이....등등

확정은 대구경북만 200만이고...그들의 후손까지 세뇌되었을것을 가정하고 최대 500망을 잡은 겁니다.

이밖에 남파된간첩...여수 순천지역에서 박정희가 선동해서 남로당 활동 모두 포함해서요
     
독립군후손 14-03-23 14:50
   
1>충성혈서 3번지원 독립군 학살

2>남로당 빨갱이 대구공산폭동 여순종북 좌익 빨치산운동

3>쿠테타 역적질

4>문화재반화 포기, 식민지배 반성포기 독립축하금 3억달러 한일굴욕수교, 일본 극우기업에게 엄청난양의 비자금, 한국 재일기업에게 비자금

5>개정희독도밀약, 독도주변 중간수역

6>영남대 고담대구대 엠비씨 정수장악회 등등 수조원 부정축재

7> 채흥사를 만들어서 역적수게 성노리게 항시대기 200명 ? 딸보다 어린애들 강간 sm플레이?

8> 친일파를 우대하고 등용한 친일민국을 광복후에도 18년동안 공공히 만든것?

9>헌법을 파괴하고 유신헌법을 만들어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것?

10> 지역주의를 만들어서 선거철마다 이용한 지역주의 창시?

11> 국회에 탱크를 몰고가서 국회해산하고 국개의원 살인청부, 감금?

12> 국민과 민주인사를 고문 살인 협박한거?

13> 국가부도  2번이나 몰고온 무능함?

14>반일감정 자극말라면서 독도대장을 고문한것?

15>체육관에서 고향유지초대하고 100%투표 100%당선 북괴식 체육관선거?

16> 한국뉴라이트의 토대를 만든 공로?

무엇이 잘한건지? 설명 부탁해요...

가생이에서 박정희 날조, 찬양우상화만 하시는 사랑님??
내일을위해 14-03-23 14:42
   
국정원은 바빠요. 간첩두 만들어야하구 선거두 준비해야하구 할거 많아요. 흠... 몇분 자칭 보수분들 계시던데 직접 나서보심 어떠신지? 국가를 글케 사랑하시고 간첩들에 대한 글케 확신이 있으신데 얼렁 잡아야지 않겠어요? 댓글은 국정원이나 사이버사령부에 맡기시구요. 저는 간첩이 글케 많다는거를 믿지 못해서..... 그리고 그럴 믿음 우리나라 수사기관, 정보기관이 너무 불쌍하쟈나요? 얼마나 무능함 그많은 간첩들을 나두겠어요? 무소불위의 국가보안법두 있건만. 가스통할배들께서 나서주실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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