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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23 16:10
박정희 좌익 프락치 전력에 대해서...
 글쓴이 : 독립군후손
조회 : 2,437  

박정희가 언제 빨갱이 전력을 가졌냐고 묻는 박빠들이 많아서 부득이 이 주제에 관해서는 그래도 손대어본 적 있는 본인이 글 올리는 편이 낫겠다 싶어 몇 자 쓴다. 
월간조선[지난호]에 의하면, 박정희는 만군시절 이미 여운형의 건국동맹에 가담한 것이 드러난다. 

 
여순반란의 주모자인 최남근은 봉천군관5기생출신, 김종석은 일본육사출신으로 박정희의 일년선배, 박승환은 건맹 군사조직으로 여운형의 무장세력이 독립을 위해 필요하다는 소신으로 만군을 찾아다니며 포섭대상을 물색, 박정희와 최챵윤도 이 때 가담했다. 
 
38선이 그어진 후 최창윤은 북에 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이로 말미암아 공산당에 치를 떨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 인해 한국군 내 남로당 점조직이던 만군시절의 동료인 최남근과 박정희 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향을 촉구하였지만, 최남근은 망설이다 결국 여순반란 때 수상한 행동으로 붙잡혔고 박정희도 전향하지 못한 채, 최남근 체포 한달 여후 체포되었다. 
 
최남근이 고문 취조당할 때 박정희는 배석해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여순반란의 토벌작전 작전회의 발표장교였으니 당시 군의 내부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짐작갈 것이다.  
 
만군시절 박정희를 포섭했던 박승환은 44년1월,45년2월, 8월 세 차례 이상 국내에 들어와 여운형과 군사문제를 상의했으며 북경과 연안을 오가며 혁명단체와 연락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속에서 만주군 내 조선인들 다수가 포섭된 것이다. 
 
월간조선에 의하면, 박정희는 동기와 후배들에게 인기높은 군인이었다.  국방부 특명 제5호로 1948년12월20일 있은 용산 육군본부 법정에서의 박정희 죄명은 "반란기도죄"였다. 

이하는 오마이뉴스 자료.
 
""박정희는 남로당이 탐낼만한 '최고의 성분' 인물"

▲ 김점곤 장군

8연대 시절 경비중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박정희 소위를 휘하에 소대장으로 데리고 있었던 김점곤 평화연구원장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춘천 시절 남로당 군사부 총책 이재복이 춘천까지 찾아와서 박정희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 때 박정희는 나에게 이재복을 '숙부'라고 소개했습니다. 박정희가 체포된 후 그의 자술서를 봤더니 이재복을 통해 입당했다고 돼 있더군요." 

이어진 김점곤 원장의 설명은 더 설득력이 있다. 김 원장은 "남로당에서 박정희에게 군 총책을 맡길 때 이미 그는 당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며 "박정희는 빈농 출신에다 형의 죽음 때문에 원한이 있었고, 특히 사범학교 때 조선공산당사건을 접했으며, 또 군관학교 수석 졸업 등 이른바 '최고의 성분'을 가지고 있어 남로당 측에서 탐낼만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박정희의 친형 박상희는 - 박상희 자료는 박정희가 집권하며 그의 가계의 공산전력이 입증될 만한 자료는 전부 퇴색시킨 듯 하다. - 1946년 경북폭동 때, 구미지역의 공산반란 주동자였다. 구미지역은 특히 심각해서 서울토벌대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박상희는 선산경찰서 탈취후 거기 "선산인민위원회보안서"라고 공산당 해방구 명칭을 붙였다. 박상희는 선산인민위의 내정부장(내무상)이었으며 공산당에서 내무상은 중심인물이나 마찬가지다.
 
박정희를 남로당에 가입시켰다는 이재복은 박상희, 황태성(5.16 후 박정희와 밀담을 위해 김일성이 보낸 특사)과 동기였다.
 
한국의 좌익들은 대개 가족력이 얽혀 있다.  박정희 가계도 비슷하다. 박정희의 큰형 박상희는 그 집안에서 대통령감이라 일컬어지던 인물이었고, 박정희도 그의 형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여성지는 박정희의 친형[정신이상으로 일찍 죽었다는 네째 - 관련글: 박한생(박정희친형) 실종을 추론함.  ] 가 지금도 북에 살아 있다는 특종기사를 1990년 폭로성으로 밝힌 적 있다. 이것의 진위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관련기사: 세계여성특종"박정희 친형 북한에 살고있다" 1  ]
 
2009. 8.30. 파아란 한은경.
 
 
조갑제 기자에 의한 박정희 친형 박상희의 폭동왜곡 부분
[관련글보기: 남로당은 살아있다.   
- 신문기사 파일 첨부자료]
 
[참조 1] 선산폭동의 시작 -1946.10.29. - 한종건 총사령관
[참조 2] 선산폭동의 진행과 진압 - 1946.10.29. - 한종건 총사령관
[참조 3] 조선인민보 대변인 집에서 나온 조선공산당 폭동선동계획서 - 1946.9.25. 조선일보
[참조 4] 경북폭동 관련 발표문 - 1946.10.29. 한종건 진압군 총사령관 발표문 소개. 
[참조 5] 군위지역 폭동 상황 설명 -- 1946.10.29. 조선일보 한종건 총사령관 발표 중.
[참조 6] 조선공산당 김일성 위원장 추대 및 민주주의민족전선 발표 - 1946.2.21 조선일보
 
[참조 1] 기(이미) 상황을 간단히 말쌈드리면, 선산, 구미 지방폭민들은 10월3일 오전10시경, 선산경찰서를 접수하고 선산경찰서의 간판을 파괴하고 기(이미) 대신 [선산인민위원회 보안서]라는 간판을 내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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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2] 간판을 내걸고, 경찰서 유치장에는 서장 이하 서원 20여명과 지방우익정당요인들을 구속하고 서내에는 총무.수사 등의 부서와 인사까지 결정하고, 소위 [인민재판]을 개시하여 국민의 인권을 자유로(마음대로) 유린하고 있을 때, 10월5일 오전1시 경, 경성(서울)로부터 도래(도착)한 응원부대와 약 30분간 교전 후, 경찰청사를 탈환하며, 유치장에 구속되어 사형에 직면하고 있던 수십명의 생명을 구조하고, 동시에 지방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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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3] [아래는 대구대폭동이 나기 6 일 전이던 9월25일 UP 기자에게 취득된 남로당의 민중폭동 선동 계획문건
큰 제목: 조선공산당의 선동투쟁계획 -UP기자 '리지'씨 제공.
서울주재 미국UP통신사 특파원 리치씨는 조선인민보 편집인 고재두씨 가택수사로 발견된 조선공산당의 '9월의 선전선동 급 투쟁계획서'라고 제목을 붙인 9월의 호한(큰날개짓)한  문ㅅ... 동문서의 1/3은 계획 중의 남조선O란계획의 담당자인 프롤레타리아층에 대한 일과를 상세히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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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4] 경북민요(어지러울 요)의 전모 - 사건내용과 그 후처리방침-대구치안 총사령관 한종건씨 담화발표 - 대구를 중심으로 한 영남 일대의 민요사건에 관하여서는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참조 5] 군위지방에서는....10월4일 오후3시에 충북 응원부대 약 300명이 도착하여 30분간 교전후 청사와 서원 급 지방유지들을 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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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6] [민주주의 진용의 위관(위대한 전망)]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발표 -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는 2월10일 "조선민주주의진용의 위관"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가튼 요지의 발표를 하였다.

-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 조류의 하나로 민주주의 운동이 혁발하기 시작되었고 모든 민주주의적 정당과 대중단체가 싹트게 되었다. ...  ㅡ. 지난 1월9일에 북조선에서는 김일성씨를 위원장으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여 13명의 위원을 천거한 바 구성으로 보아 가장 민주주의적 조직이다. ...

우측아래 기사: "완전통일로 자과하지 않는다."  - 민족전선 결성 후의 선전부 발표 - "민주주의민족전선 선정부장 김오석씨는 20일 정오 기자단과 회견하고 다음과 가튼 제목의 담화를 발표... 금반 활성된 "민전;民戰"은 인민당공산당 등의 국내의 대표적 민주주의정당과 임시정부에서 탈퇴한 김O..."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정일용 기자 =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발발 직후 북한이 쿠데타 주도세력에게 보낸 거액의 미화 현찰이 남산 텔레비전 방송국(현 KBS TV) 개국 비용으로 쓰였다고 7일 관계자들이 증언했다.

지난 50년대 미군 정보부대 출신인 한상호(韓相浩.75.서울 서초구 원지동)씨를 비롯해 당시 남산TV방송국 개국에 참여했던 여러 증인들은 북한이 보낸 달러를 TV방송국 개국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당시 황태성 무역성 부상을 내려 보내 공화당 창당 자금을 지원했다는 설(說)은 있었으나 거금을 소지하고 남파된 북한 공작원을 직접 당국에 신고했다는 당사자가 증언하기는 처음이다. 
한상호 씨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지난 6월 발간된 실명소설 '역사의 수레바퀴'(한승연 작.한누리미디어 간)에서 "5.16 쿠데타 직후 거동 수상자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내가 종로 경찰서 형사특수계로 신고했다"면서 "경찰 조사 결과 그는 10만 달러를 소지한 채 북한에서 온 공작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중앙정보부로 돈과 함께 신병이 넘겨졌다"고 증언했다.

한 씨는 "그 달러는 이북 김일성의 지시로 일본 조총련계가 마련해 들여 보낸 정치공작금으로, 간첩의 말에 의하면 김일성이 남북협상을 하자는 뜻으로 내려 보낸 것이었다"고 말했다.

관계 전문가 추산으로 당시 10만달러는 현재 화폐구매력으로 1천200억원 대에 이른다. 5.16 주도세력들은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굴러 들어온 횡재'를 놓고 논의한 결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제의에 따라 시급한 현안 중 하나였던 TV방송국 개국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한 씨는 설명했다. 

이에 대해 1961년 당시 남산TV방송국 편성과장 겸 제작과장이었던 최창봉(崔彰鳳.79) 전 문화방송 사장은 "북한 무역성 부상이었던 황태성이 '그린백(greenback.달러의 속칭)으로 20만달러를 가져왔는데 그것을 압수해 TV방송 개시에 썼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그런 얘기는 여기저기 쓰여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당시는 달러가 부족해 그랬을 수 있다고 본다. 그만 얘기하자"며 더 이상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KBS TV 개국직후 TV제작과장을 역임한 고 김형근(金亨根.필명 金石野.2000년 10월 별세)씨도 생전 모 방송과 인터뷰에서 "KBS TV(남산TV) 개국을 준비할 때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TV 개국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얼마 후 자금이 지원됐는데 그 자금은 북에서 남파된 황태성이 가지고 왔던 공작금이었다고 들었다"는 내용의 증언을 남겨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와 김 씨가 언급한 '황태성' 북한 무역성 부상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형 박상희와 친분 관계를 이용, 61년 9월 1일 서울에 잠입해 박 의장과 김종필 중정부장과 만남을 시도하다 10월 20일 체포돼 63년 12월 사형됐다고 발표됐으나 이 사건의 진상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한 씨 등 관계자들의 증언은 돈을 가져 온 북측 공작원과 돈의 액수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않으나 북한이 보낸 돈으로 KBS TV 방송이 시작됐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北, 5.16 쿠데타 지지성명 준비했다

미군철수 긍정 주장한 남로당 박정희!

박정희대통령은 12일 만약 남북한간에 상호 불가침협정이 정식으로 체결된다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북한 동포들에 대한 식량원조를

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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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북한이 남북 상호불가침협정 체결에 동의한다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지 않겠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 순수한 인도적 입장에서 북한 동포들을 위해 식량 원조를 할 용의도 있다.” 

 


“여러 가지 정보와 상황을 종합평가해 지금 우리와 북한의 전력을 비교해보면 거의 동일

수준에 있다고 본다. 물론 부분적으로 그들이 우세한 것도 있고 또 우리가 뒤지지 않으려고

계속 발버둥 치겠지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앞질러 나가는 단계에 왔다.”

 


좌익혐의로 무기징역

▲ 1963년 제5대 대선 당시 윤보선 후보측은 선거 이틀전에 박정희 후보

 

의 좌익전력을 폭로, '사상논쟁'을 가열시켰다. 사진은 당시 이를 대서특

 

필한 <동아일보> 호외(1963.10.13).


 


<박정희가 여순반란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는 당시 동아일보 기사!>

 

고정간첩 박정희

1945년 8월 15일 해방 
1946년 미군정 산하의 국방경비대에 입대


1946년 선산인민위원회 내정부장인 ▶박정희의 셋째 형 박상희, 
대구10.1사건 때, 미군정하에 식량란에 시달리던 2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구미경찰서를 습격한 후 모든 기능을 '인민위원회'로 이양하라고 요구 및 무기탈취, 
선산 면사무소 습격, 135가마 양곡 탈취, 
선산 군청 습격, 
선산 요인집들 파괴, 
지원경찰에 쫒겨 도주 중, ▶경찰 총격에 사살당함, (10월 6일 오전)

 

1946년 사살당한 셋째 형 박상희에 뒤이어 남로당원이 됨
(남로당 총책 이재복에 의해)

1948년 남로당 주도로 발생한 여순반란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 군내 적색분자 색출작업 전개

체포된 남로당 총책 이재복의 비서 겸, 군사연락책 
김영식으로부터 박정희 소령이 남로당 이라고 지목되어

육군본부 정보장교로 근무하던 ▶'고정간첩' 박정희 체포 (11월11일)


박정희의 당시 남로당 직위는 '군사 총책' (재판기록과, 미군정 정보보고서)

1949년 2월 8일 군법회의 
"국방경비법 제16조(반란기도죄), 제18조, 
33조(군 병력 제공죄)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 언도"

 

박정희 스스로도 자백했다고 함

육군본부 정보국장이었던 백선엽, 
군내 남로당원 조직도(목록)를 제공해준 박정희를 
사형으로부터 구원 (백선엽 회고록)

 

1949년 4월18일, 
일본군 대좌(대령) 출신인 육군본부 총참모장 이응준 소장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18호] 발령 
"1심 판결을 받은 사람 가운데 재심을 거쳐 형량을 재조정하라는 내용. 박정희 포함"

이후, 15년으로 감형, 그리고 형 집행정지

 

1950년 불명예 파면된 후 백선엽의 배려로 육군본부에서 
무급문관으로근무 해오던 박정희 
1950년 6.25 발발로 6월30일 군인으로 다시 복귀 
.. 
.. 
1961년 5.16 쿠데타가 성공하자 
1946년 대구10.1사건 당시 경상북도 인민위원회 선전부장이였고, 
북한에서 무역성 부상(차관)을 역임하였으며, 형-박상희의 친구인 ▶황태성을 북한이 
비밀회담을 통해 박정희와의 연대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밀사로 파견 (61년 9월)

 

박정희는 황태성을 체포해 간첩죄로 비공개 재판 진행 중 
황태성을 미 정보기관에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 계속 거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북에는 김일성이 있고 남한에는 박정희가 있다. 
이북에는 공산당이 있고 남한에는 공화당이 있다.


공화당 창당 자금은 황태성이 댔고 그로부터 공화당 창당에 대한 
밀봉교육을 받았다" 라는 내용의 시내에 뿌려진 호회 발견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 
1963년 윤보선을 제치고 박정희 대통령으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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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논쟁'의 시작

1963년 10월 13일. 
육군대장 출신의 박정희 후보가 좌익혐의로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는 내용의 ▶동아일보 호외 200만장 발행과 배포


윤보선 후보측 2개의 증거자료 제시. 
1. ▶1949년 2월 17일자 경향신문과 
▶1949년 2월 18일자 서울신문의 "박 후보가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은 사실을 소개한 기사" 
2. 자체적으로 입수한 ▶'군사재판 관련 문건'


군법회의 판결문,
"피고인은 단기 4279년(1946년) 7월경부터 4281년(1948년) 11월경에 이르는 동안 
대한민국 서울 기타 등지에서 각각 남로당에 가입하고 
군 내에 비밀세포를 조직하여 무력으로 합법적인 대한민국 정부를 반대하는 반란을 기도"


군법회의 1심 
"국방경비법 제16조(반란기도죄), 제18조, 33조(군 병력 제공죄)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 언도" 전체 69중 66명 유죄 판결, (소수 사형 집행)


1949년4월18일, 
일본군 대좌(대령) 출신인 육군본부 총참모장 이응준 소장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18호] 발령 
"1심 판결을 받은 사람 가운데 재심을 거쳐 형량을 재조정하라는 내용. 박정희 포함"


1950년 
육군본부 정보국장인 백선엽의 배려로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무급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6.25 발발로, 6월 30일 현역에 복귀


서인석 공화당 대변인 반박성명 
"박정희 총재는 김창룡 장군에 의해 관제 공산당원으로 몰린 사실이 있으나 
그것은 여순반란사건과 관련시켰던 것은 아니었다"


"자유민주주의자임이 밝혀져 군의 요직을 역임했고,
반공전선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고 해명


군내 남로당 모집총책이였던 박정희는 대통령이 된 이후 선거 승리를 위해 
본인의 남로당 경력은 철저히 숨기고 다른 정치인 및 
민간인들에게 발갱이 누명을 씌워 잡아가는 일이 잦았음.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사상논쟁 시작은, 
당사자이자 사상논쟁의 불을 지핀 박정희 그였다.

 

이와같이 박정희는 자신의 빨갱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역공작을 펼쳐서 김대중을 비롯한 수많은 야당 정치인들에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사상이 의심스럽다는등의 유언비어를 펴뜨리게 된다.

 

그를 추종하는 보수로 위장한 친일매국노 세력들은 현재까지도

박정희의 추악한 권모술수를 유지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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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정부 극비문서!



             박정희는 공산주의자?

 
[박정희의 공산당 활동은 미국에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최근에 비밀해제가 된 문서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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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메릴랜드주 소재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된 이 자료는 
이제까지 나온 문서중 5.16 주체세력들의 좌익 전력을 
가장 광범위하고 집요하게 추적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신 : 힐즈먼
  발신 : 마샬 그린
  주제 : 한국
 

본 건은 대한민국 군사정부 내 공산주의자의 
영향력에 관한 그렉 헨더슨의 연구 초안입니다.


  Ⅲ. 박정희 이력의 좌익적인 측면
   b. 공산주의 음모


▶" 살아남은 사람은 박정희 뿐...!"◀
 

남한에서는 1947년 말에서 1948년 초까지 
남로당 최고 사령부가 활동했다. 
 

남로당 공산주의자들 중 이주하, 김삼룡과 긴밀한 관계에 
있으면서 동일한 서열의 최고위간부로 ▶이중업(李重業)이 있었다.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1933년에 공산주의 활동으로 제적되었다.


그 후 이중업은 박헌영, 이주하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활동했고 
해당 기간(47년말-48년초) 동안에는 남로당의 조직부장
(Chief of the Organization Departement) 직을 맡고 있었다.


▶그가 지휘한 작전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한국 국방경비대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1945년에서 1948년 9월 사이 이 조직에 침투한 것이었다.
 

이때 이중업은 박정희를 비롯해 많은 장교들과 접촉한 듯하다. 
이중업이 접촉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비중있고, 
▶가장 성공적으로 접촉한 장교는 박정희였다. .


박정희는 1946년 12월에서 1947년 2월까지 제1연대의 
중대장으로서 사관생도들 중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모집하는 데 열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1연대는 당시 태릉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제1연대 건물에 새로 생긴 장교 양성소(사관학교)가 있었다. 
당시 연대 장교들은 새로 생긴 장교 양성소의 교관 역을 겸했다.


당연히 이 장교 양성 과정은 생도 시절의 젊은 
장교들에게 사상을 주입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기회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사관학교에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참모를 많이 포함시키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고, 
박정희는 이런 노력에 앞장 선 듯 하다.


1947년 3월과 4월에 졸업한 제3기생들이 교육을 
받은 건 박정희가 이 연대에 있을 때였다.


제3기는 주로 전직 사병 출신으로 구성되었으며, 
한국의 한 고위 장성은 공산주의 성향을 지닌 어떤 장교가 
자신의 사병들을 장교 연수 과정에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한국군의 G-3(작전국)는 300명의 생도들 가운데 절반이 
노골적인 불충분자들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1948년 10월 19일에서 27일에 여수-순천 반란을 일으킨 건 
이들이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1948년 4월에 제주도 제9연대에서 
처음 발생한 소규모의 전복기도를 비롯해, 
1948년 11월 2일에 발생한 대구 제6연대 사건, 
1948년 10월 20일에 발생한 제4연대 사건, 
1948년 11월에 발생한 대전 제2연대 사건에도 개입했다.


이 사건들의 결과, 많은 장교들이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처형당했으며, 많은 장교들이 여수 순천 반란에서 목숨을 잃었고


▶박정희가 정체를 드러내고 1950년(1948년의 잘못인 듯) 11월에 
체포된 것은 이들 사건들, 특히 여수 순천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작성한 한국 정부 전복 도표를 본 
어느 한국군 장교는 거기에 박정희의 이름이 
주요 군 장교로 나타나 있더라고 회상했다.
 

여수 순천 사건과 그 뒤를 이은 수사 결과 ▶박정희 조직은 
김창룡 중위(나중에 중장으로 진급)에 의해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독사”란 별명을 가지고 있던 김창룡은 맹렬한 
반공주의자로 일본군 시절에 헌병 사병을 지냈고,


그 자신 역시 육군 사관학교 제3기생이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생도들에게 접근하는 수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박정희는 1948년 11월에 체포되어 광범위한 조사를 받고 
김창룡 수사대의 주무기인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1949년 2월에 열린 군법회의에서 박정희는 
죄의 심각성에 근거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박정희는 자신이 참회했으며 사면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증거로 자신이 맡고 있던 조직망을 폭로하겠다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박정희는 그 뒤 김창룡 수사대의 수사에 합류했으며, 
공모자들의 집으로 수사대를 직접 이끌고 가기도 했다.


그가 직접 폭로한 사람의 숫자와 신원은 현재 알려져 있지 않지만, 
1000명이 넘을 것으로 보이며, 그 중에는 그의 부하 장교들도 있었다.


▶자신의 체포가 바로 조직 지도자(박정희)의 배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다른 사람을 폭로했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을 폭로했다.

  
이중업도 여기에 포함되어 1949년 4월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중업은 그해 7월에 딸이 간수를 유혹하여 
대한민국 헌병복을 입혀 북한으로 인도함으로써 탈출에 성공했다.


박정희에 대한 보상으로 채병덕 참모총장과 정일권 부참모총장, 
특히 G-2(정보국)의 백선엽 장군은 박정희 구명을 탄원했고, 
그 결과 박정희는 징역 10년으로 감형을 받고 군복을 벗었다.


박정희는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됐으며, 
그 후 백선엽 장군은 박정희를 G-2 분야의 문관으로 고용했다.


이런 위치에서 박정희는 1949년 봄에 졸업하는 육군 사관학교
8기생들 가운데 똑똑한 젊은 장교들을 G-2 분야에 추천할 수 있었다.


따라서 ▶김종필을 비롯해 젊은 시절에 좌익 성향을 지녔던 
일부 장교들이 박정희의 후원으로 G-2에 들어갈 수 있었거나,


적어도 그곳에 근무하는 동안 분명히 박정희의 영향을 
받았다는 추측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김종필은 1949년 5월 이후 계속 G-2에 있었다)
 

백선엽 장군은 박정희의 성실한 근무에 만족했고 
한국 전쟁이 시작되자 즉각 그의 한국군 재입대를 추천했다. 
박정희는 진급에 진급을 거듭, 1954년 1월에는 장성이 되었다.


그러나 과거 엄청난 공산당 음모를 꾸미었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부하에게 
고문과 죽음을 안겨준 그의 성격 역시 드러났다.


음모에 깊이 관여한 사람들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박정희 한 사람 뿐이었지만, 
박정희는 그 음모를 주도한 실질적인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박정희 형 박상희는 대구 경북 남로당 총책으로 빨치산을 활동하다가 경찰에 쫒기다 결국 경찰 총에 맞아 죽는다

http://cafe.daum.net/traitor-parkjunghee



미국도 박정희를 친일일본군 장교 공산주의자라고 하네요..


우리의 동맹 미국을 믿읍시다.


믿지않으면 반미주의 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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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위해 14-03-23 16:18
   
이렇게 명확한 사실들이 존재하는데 인정을 못하니 답답하네요. 몇몇분들 말이 안통해요. 그런분들은 그냥 관심만주기로 했어요.
     
독립군후손 14-03-23 16:21
   
종교입니다 종교...박정희 광신도..

그게 일본의 추장..일본왕이 국민이 아닌 신민으로 일본국민을 세뇌시키는 것과 똑같아요.

박정희와 그의 추종자들은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의 식민지라고 주장하고 믿고있습니다.


그들에게 정치적 학문적 역사적 논리적 상식적으로 접근하면 안되요..

그들은 종교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향토사이비 종교단체의 광신도들로..
띠뾔띠뾔 14-03-23 16:21
   
북괴를 추종하는 사랑2 , 삼성동21  등등 전부 사형 시켜야됌

---애국보수 코스프레----
독립군후손 14-03-23 16:23
   
박정희의 명언...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사랑이 14-03-23 16:25
   
그래서 박통을 업적 이없어지는것도 안이도 그래서 님이 얻으려는것도 알지만
어려울거에여
님이 그것을 대자보로 부쳐서 신문에내고 방송에 내고 씨알이가 안먹히는게 먼줄아슈
그걸 알때 깨울칠거요 근대 절대 못깨우치지
하여튼 그것때문에 정치가 어떠니 하는우수운 소리하지 마쇼
현재는 종북적 성격의 민주당이 나라를 망치고 잇으니 국민은 그것을 알고잇지요
     
독립군후손 14-03-23 16:27
   
주문외우는중...

어디교회다니세요? 아저씨?

예수가 친일매국노 남로당 빨갱이 쿠테타 역적 독재자 쉴드치라고 시키던가요?
          
독립군후손 14-03-23 16:31
   
오늘 교회는 재미 있던가요?

먹사가 친일매국노 빨갱이 공산주의하라고 가르치나요?

뭐 예수도 독재했다고 하던데...

박정희시대 고문은 예술이라면서요 ㅋㅋ

이것이 한국 개신교의 수준...

먹사를 모시는 건지...예수를 모시는건지...참..
     
독립군후손 14-03-23 16:27
   
박정희의 명언...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띠뾔띠뾔 14-03-23 16:27
   
종북은 사형 시켜야됌 ;; 박정희도 빨갱이고 그거 추종하는 사람 종북이니 사형 시켜야됌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찌요...
          
독립군후손 14-03-23 16:28
   
박정희의 명언...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는 교화가 불가능하다!"

무슨말인지 사랑님은 못알아들으실겁니다.
               
띠뾔띠뾔 14-03-23 16:29
   
사랑님 같은 분들이 없어야 우리나라가 종북으로 부터 깨끗해집니다.
     
내일을위해 14-03-23 16:33
   
아! 독립군님 죄송합니다. 이 아저씨가 공부하랬더니 또 여기와서 그러네.
          
독립군후손 14-03-23 16:38
   
나둬요...연민의 정이 느껴 지잖어요..나이도 많으신분인데..

그냥 그려려니 해요.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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