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브리핑북은 박정희 최고회의의장, 유양수 최고회의내 외교분과위원장[CIA-P-146666]등에 대한 인물정보를 담고 있으며 박의장에 대한
자료는 CIA 인물자료에 있는 사진등을 포함해 모두 3장으로 돼 있습니다
박의장에 대한
자료에 따르면 박의장의 CIA 인물정보 등록번호는 142532[CIA-P-142532] 였으며 한국 육군의 장군으로 돼 있었습니다
미
행정부는 1917년생인 박의장이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육사에 진학한뒤 가나가와의 일본육사로 전학해 1944년 졸업한뒤 1년남짓 일본
육군에서 복무했으며 해방뒤 한국으로 돌아와 1946년 12월 육사 2기로 졸업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박의장은 남노당 당원으로서 1946년 대구폭동당시 경찰에 의해 처형당한 그의 형[박상희, 김종필의 장인]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로 기울었으며
1948년 여순반란사건직후 공산주의자임이 발각돼 군법행위에 회부됐으나 명석한 청년장교라는 점이 그의 구명에 도움이 됐다고 기록했습니다
박의장은
한국군내 약 3백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제공함으로써 사형을 면할 수 있었고 현재 주미대사인 정일권과 주프랑스대사인 백선엽의 도움으로 10년형으로
감형된뒤 한국전 발발로 사면
박의장은
한국전당시 뛰어난 업적을 세웠고 그뒤 성실하고 정직하고 쳥렴한 이미지로 존경을 받았으며 1960년 315부정선거와 부정선거에 군이 개입된 데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1960년 쿠데타계획을 세웠으나 419 학생운동으로 이승만 정부가 물러나면서 쿠데타 계획이 연기됐다는 것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설명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뒤
장면정부가 수립됐지만 박정희와 추종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해 1961년 쿠데타계획을 세우고 사전에 일부 정보가 누설됐음에도 불구하고 쿠테타를
성공시켰다고 기록했습니다
2페이지에서 미 행정부는 박의장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누나와 결혼해 아들 1명, 딸
2명등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군인월급으로 살다 보니 매우 곤궁한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이 브리핑자료대로라면 박의장은 김종필 부장의 매부이지만 실제로 김종필은 박정희 의장의 형인
박상희씨의 딸 영옥씨와 결혼한 박의장의 조카사위입니다
또 박의장은 적당한 정도의 음주와 흡연을 즐기지만 최근 몇달간은 음주량이 늘었으며 중국어와
일본어에 능하고 요즘 매일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http://andocu.tistory.com/4318
1963년
10월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 사상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박정희
좌익경력은
현재
색깔론과 같이 윤보선 측에서 박정희 공격도구로 사용되었다.
미국에서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황태성을 밀사로 내려 보내 박정희와 접촉하게 하다.
미국은
황태성을 미국에 넘겨 조사하기를 요구하였는데, 박정희가 계속 구실을
세워
회피한 것이다.
더
피할 수 없게 된 박정희는 황태성을 처형한다.
당시,
조선일보는
박정희의 좌익경력에 대한 증거자료를 미국에서 확보한다.
조선일보
미국 특파원 이었던 문명자는
박정희의
5.16 쿠데타에 반대했다가 미국에 와 있는 강봉군 장군을
만나게 된다.
강봉군
장군으로부터 박정희 실체를 파헤친 미국 정보기관 요원이 박정희에 의해
추방당해
최근 미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접한다.
문명자는
이 사람과 연락이 닿기에 이른다.
문명자가
들은 정보는 충격적이었다.
"황태성과 박상희는
박정희가 남로당에 입당할 때의 신원보증인이다.
5·16
이후 황태성이 박정희와 접촉하기 위해 내려왔을 때 박정희는 김종필에게
그를
만나보도록 했다.
나는
이 정보를 입수해서 상부에 보고했는데 상부에서는 황태성·김종필이 회동
하는
반도호텔을 감시하라고 했다.
그때
김종필은 중앙정보부를 조직하느라 반도호텔 한 층을 온통 차지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반도호텔 8층 몇 호실에서 몇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모두 조사해 상부에 보고했다.
황태성이
내려온 목적은 박정희와의 연대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같은 정보를 입수한 미국 측은 황태성을 미 정보기관에 인도하라고 박정희에게
계속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황을 인도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끌었고,
오히려 그
사건을 추적하는 나를 한국에서 추방했다."
박정희 시대와 그 연장인 5∼6공 시대에 박정희의 좌익전력에 대해 침묵
하면서
그 밑에서 영화를 누렸던 자들, 그리고 현재까지도 박정희의 망령을
미화하고
있는 자들은 색깔론을 시비할 자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