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국이 소비를 계속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소비를 계속해야만 하는 근본은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축통화란 국제 무역 등의 거래에서 기준이 되는 통화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944년 이전에는 영국의 파운드화와 미국의 달러가 함께 기축통화의 역할을 했고
1914년 이전에는 영국의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했습니다.
각국의 화폐단위가 모두 달라도 미국 달러는 어디에서든 다 통용이 되듯이,
기준이 되어주는 화폐를 두고 기축통화라고 하며
현시대에는 그 역할을 미국의 달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축통화가 영국의 파운드화에서 미국의 달러로 바뀌어지는 년도를 보시고 짐작하셨겠지만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다는 것은 명실상부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것은 1944년 브레튼 우즈 협정을 기점으로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둔 이 시점에
미국 뉴 햄프셔 주의 브레튼 우즈에 모인 각국 대표들은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것을 주요 의제로 합의를 했습니다.
이 당시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과도한 전비를 지출함으로써
더 이상 세계경제를 이끌어 나갈 힘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었고,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것이었습니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크게 두 가지의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금보유량입니다. 본래 화폐의 역할은 금과 은이 했지요.
금과 은이라는 눈에 보이는 실물자산이 가치를 띄게 되고
그 가치와 어떤 물건을 교환하면서 경제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경제가 복잡해지면서 금이나 은으로 화폐의 역할을 하기가 여러모로 어려워졌습니다.
종이화폐라는 것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만원짜리 지폐, 오만원짜리 지폐로 물건을 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서 종이 조각에 불과한 화폐가
그런 큰 가치를 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금과 화폐는 항상 연동되게 되어있었습니다.
금 얼마는 화폐 얼마라고 정해놓고 은행에 가지고 오면 바꿔주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금을 가지고 다니기가 무거우므로
화폐라는 금을 대신하는 종이를 국가에서 만들고 경제에 유통시킨 것입니다.
1944년 브레튼 우즈 협정에서는 금 1온스당 달러는 35달러로 고정을 시켰고,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시켰지요.
그러니 달러는 금과 직접 연결된 모든 통화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 당시 미국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금을 엄청나게 사들였습니다.
그래서 1944년 당시 미국의 금 보유량은 단연 세계 최고였지요.
진짜 화폐인 금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인 미국은,
그러므로 기축통화의 보유국이 될 자격이 있었지요.
두 번째로 기축통화가 되려면 그 화폐가 널리 퍼져나가야 합니다.
이를 두고 유동성 공급을 잘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요.
쉽게 말하면 세계에서 두루두루 쓰이려면 그 화폐가 전세계에 퍼져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축통화고 미국이 대단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있어야 쓰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통화의 유동성 공급이 잘 되려면
우선 그 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서 전 세계 국가와 두루 교역을 많이 해야 될 것이고요.
흑자보다는 적자를 많이 내야 할 것입니다.
엥? 갑자기 왠 적자 타령이냐고요? 적자라면 빚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하고 놀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예를 들어 한국처럼 무역 흑자국이라고 하면 돈을 쓰는 것보다 벌어들이는 것이 많으니까
그 화폐가 다른 나라로 가는 것보다는 다시 돌아오는 것이 많겠지요.
그러면 그 화폐의 유동성 공급이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처럼 만년 적자 국가면 어떻게 됩니까.
달러를 다시 걷어들이는 양보다 나가는 양이 더 많으니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에 달러가 많아지고 유통이 많이 되겠지요.
그래서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달러의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만년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하하.
정말 좋은 나라죠?^^;;
어쨌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미국은 적자를 계속보고 있고
그것은 달러의 유동성을 키워서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게 했지요.
사실 국가가 처음에 발전할 때는 제조업 중심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1970년대의 한국이나 지금의 중국을 생각해보시면 쉽겠지요.
다른 나라의 기술을 받아와서 싸게 물건을 만들어서 외국에 수출을 하지요.
하지만 점점 발전을 하다보면 제조업으로써 경쟁력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 나라의 통화가치가 상승하게 되어서 가격경쟁력이 적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조업 강국은 금융 강국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미국도 그러했고요.
위의 그래프를 보시면 알겠지만 미국은 1940년 이래로 계속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빚만 엄청 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왜 안 망하냐고요?
바로 기축통화국이거든요.
기축 통화국이 되면 엄청난 어드밴티지가 있습니다.
돈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빚을 지거나 돈이 필요하면 돈을 찍어내면 되고,
적자가 너무 많아지면 법으로 지정된 재정적자 한도를 늘이면 되지요.
얼마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 부도 어쩌구 저쩌구도
법으로 지정된 재정적자 한도를 늘이는 거였습니다.
은행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마음대로 늘이면 되는데
왜 난리 법석을 떨었나 하면 공화당이 민주당에 협조를 잘 안 해줬거든요.
결국 집안싸움이었는데...
그래프를 보면 또 하나 특이한 것이 1970년대까지 크게 급증하지 않던 미국의 재정적자가
1970년대 초반 이후로 갑자기 급증하게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3)
이야기는 베트남전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955년에 시작된 베트남전쟁에,
1961년 당시 케네디 미 대통령은 참전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로부터 지루한 싸움이 이어지면서 미국은 5만 여명의 사망자와 25만 명의 부상자,
2천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전비를 지출하고서
결국 1973년 닉슨 대통령의 결정에 의해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엄청난 전비를 지출하게 되었고,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재정적자 누계는 1500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죠.
그에 따라 엄청난 달러를 찍어내야만 했습니다.
돈 찍어 내는 기계가 있으니 어떻게든 찍어내서 써야했죠.
그런데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돈을 찍어내다 보니,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나한테만 있던 금송아지를
국가에서 막 찍어내서 모두 다들 금송아지를 갖고 있으면
금송아지의 가치가 떨어지듯이
달러도 전비지출로 인해 지나치게 찍어내다 보니
가치가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이 생기면서 신뢰에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항상 전쟁이 문제지요.
제1차, 2차 세계대전 때 그랬고 베트남전에 그랬고,
2000년대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하면서도 경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쨌든 달러의 신뢰에 문제가 생기자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가치 금과
달러를 바꾸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30억달러를 금으로 바꾸려 했지만 미국은 사정이 여의치 않앗습니다.
1944년 브레튼 우즈 협정에 의해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달러는 은행에서 일정한 가격에 금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달러가 금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은행에서 보장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으로 달러에 문제가 생기면서
달러의 유동성이 지나치게 커지고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은행으로 와 달러와 금을 바꾸려고 하자
1971년 당시 닉슨 대통령은 달러와 금을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습니다.
이것을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정지 선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브레튼 우즈 협정도 깨어지게 되었지요.
금가격의 추이입니다.
1971년전까지 꾸준하게 유지되던 금 가격은
닉슨의 금태환 정지선언이후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해 제2차 오일쇼크가 일어난 79년에는
실물자산에 대한 선호상승으로 다시 한 번 가파르게 상승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잘 보여줍니다.
사실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금으로 바꿀 수 없는 달러는 이미 실제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화폐가 아니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두 번 있었습니다.
제1차 오일쇼크는 1973년에, 제2차 오일쇼크는 1978년에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오일쇼크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차 오일쇼크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의 제4차 중동전쟁에 이어 일어난 것으로
아랍의 산유국들이 일방적으로 담합하여 가격을 올리고 생산량을 줄이며
미국 등 일부 국가에는 공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석유가격이 폭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2차 오일쇼크는 회교혁명을 일으킨 이란의 석유수출 중단에 이어서 나온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시대의 필수품인 석유를 석유생산국들이 담합하여 가격에 혼란을 주어
세계경제를 교란시킨 일이 바로 오일쇼크라고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오일쇼크 역시 미국에게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계경제의 물가상승과 경기불황이 겹친 스태그플레이션을 만들어낸 것은
근본적으로 미국의 달러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 베트남전 등 많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미국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돈 찍어내는 기계를 이용해 달러를 엄청나게 찍어내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석유가격을 주도한 것은 미국의 석유메이저 회사들이었거든요.
1970년대 이전까지는 산유국의 자원소유를
석유메이저회사에서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미국 때문에 달러 가치는 하락하는데 석유메이저회사들이
석유가격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니까 아랍국가들 입장에서는 손해였던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미국 달러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물가가 올랐습니다.
옛날에 오백원 하던 구구콘은 천원, 천오백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석유메이저 회사들의 농간으로 석유가격은 여전히 저가로 유지됩니다.
그러면 누가 손해인가요.
석유로 먹고사는 아랍 국가들이 손해지요.
또한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미 달러가치는 더욱 하락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랍 국가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결국 일이 터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전쟁이라는 형태로 터진 것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