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존대말은 생략하겠습니다
-
최근 한국 정치의 화두는 아마 진보 논쟁일 것이다. 중도였고, 그나마 진보에 조금 가까웠던 민주당이 최근 전대를 거치면서 진보로 급선회를 했다. 당대표가 된 손학규가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춘천 칩거 후 나오면서 진보의 노선을 발표했고, 최고위원에 들어간 인물 중 네 사람이 민주희망쇄신연대 소속이다. 거기다가 천정배 의원은 정치 입문시기부터 줄곧 민주노선이었고, 대중적인 인기는 그 누구 못지 않은 정동영마저 최근 진보의 가치를 들고 나왔다. 이런 꼴이니 민주당에서 중보를 외치는 이는 박주선 외에는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진보 논쟁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진보 논쟁에 불이 붙은 이유는 중도에서 희망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애시당초 민주당의 거대한 기둥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진보적 가치의 인물이다. 이승만 정권부터 정치를 시작한 그는, 장면 정부에서 진보를 배웠고, 박정희때 처절하게 투쟁했으면 기어코 진보와 민주를 쟁취한 인물이다. 역대 대통령중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가장 자연스러운 인물이 김대중인 것처럼, 김대중은 민주 역사에서 무시 못할 인물이다.
박주선이 초기 전대 출마를 할 때 김대중은 중도적 인물이었다, 라고 말하며 중도 노선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중도의 위치에 있다고 말하였다. 당연히 민주당이 지향해야 할 길은 이 중도파를 껴안을 중도적 길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사실에 반대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당초 중도란 없기 때문이다. 중도라는 것은 진보와 보수의 중간지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스펙트럼 안에서 어느 부분까지가 중도인지가 애매한 것이다. 사실 진보와 보수도 스펙트럼 상에서나 구분이 되는 것인지 실 정치세계에서는 종이 한장차이 인 경우도 많다.
중도라는 것은 진보와 보수가 적절히 융합하면서 생겨나는 부산물이라고 본다. 그렇게 나온 정책이 중도적인 정책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중도라고 표방하면 결국은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게 된다. 어정쩡한 위치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저것 다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이도저도 다 포함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양당제로 가기 위해서는 중도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중도라는 것은 개념상에서나 존재할 뿐, 실제로 존재하기 어렵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만나서 타협하고 딜을 이루었을 때 비로서 중도가 탄생하게 된다.
필자가 견문이 어두워 그런지 모르겠으나 중도적 위치를 지닌 정당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보수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공화당이 있고, 진보당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이 있다. 일본에서는 보수당이라 할 수 있는 자민당이 있고, 역시 진보당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이 있다.
양당제로 거듭나야 한국의 정치가 발전한다. 중도 중도를 외친다면 끝내 양당제로 거듭나지 못하고 정치도 그 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다. 발전하지 못한다. 중도의 틀안에서 벗어나야 한국의 정치가 발전하게 된다.
중도라는 것은 사실 타협의 결과물이다. 진보에 가서 덤터기 쓰기 싫고, 보수에서도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나는 중도라고 표방하는 것이다. 또한 중도는 도망가기 쉽다. 진보도 보수도 아니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싫다.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 중도라고 보기 어렵다. 보수를 싫어한다고 해서 모두 진보라 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중도라고 하기 어렵다. 보수를 싫어하는 보수가 있을 수 있고, 진보를 싫어하는 진보가 있을 수 있다.
중도는 진보와 보수가 섞여 어울러졌을 때에야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다. 한국 정치에서 중도정당이라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