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저는 순간적으로 느낀 게,
'혹시 저 인간이 내 위에서 자고 있는 친구한테 앙심이 있어서 때릴까 말까 고민하는 것인가...?'
이런 불길한 예감이였습니다. 학교 전체가 공공연하게 후배들을 집합시키는 분위기였고, 기숙사는 잦은 집합과 구타의 온상이였으니까요.
그래서 전 제 위에서 자고 있는 제 친구를 구하고자 선배의 기분을 풀어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둠과 정적속에서 선배를 올려다보며 나지막히 말했습니다.
"선배, 뭐 쳐다보세요?"
이렇게 말하자마자 선배는 "헉"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아랫 쪽에 있는 저를 쳐다보더니, 정신이 번쩍 든 사람처럼 다시 제 윗쪽을 쳐다보고 좌우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참.. 이 인간이 뭔 생쇼를 하나 싶었죠.
그러던 선배가 저한테 매우 다급한 소리로 버럭 소리질렀습니다.
"다운아 빨리 불켜. 빨리 불켜 새x야!"
전 선배가 기분이 안 좋은 게 확실하다는 직감과 우물쭈물하다가는 친구보다 제가 먼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서 벽쪽으로 달려가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 침대로 와서 앉았는데, 방이 환해지자 선배는 단숨에 2층에서 뛰어내리더니 제 맞은편 침대에 앉아 소리쳤습니다.
" 야! 다 일어나! 빨리! "
또 집합인가 싶은 불안감이 머리를 스쳤고, 잠을 자고 있던 친구 4명도 벌떡 일어났습니다.
새벽의 집합도 충분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인지라, 다들 후다닥 일어나서 제 침대로 내려와 쭈루룩 앉았습니다.
선배는 맞은편에 홀로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묵묵히 저희를 쳐다 보고...
저희는 불안감에 오들오들떨며 각을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1~2분간의 침묵이 흐른 뒤, 서서히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할 때 선배가 입을 뗐습니다.
"A야 혹시 휴대폰 썼냐?" (A는 제 위에서 자던 친구)
한참을 뜸들이던 선배는 정말 쌩뚱맞은 질문을 했습니다. 휴대폰을 썼냐니...
저희는 모두 어리둥절해서 이건 또 뭔 상황인가... 이젠 별의 별 트집을 다 잡는 건가 싶었고, 제 친구 A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저 계속 자고 있었어요 선배."
친구의 대답이 있자마자 선배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야, 혹시 말야... 혹시 뭐, 이상한거 있잖아, 뭐 그런거 본 놈 있냐..?"
이렇게 저희 모두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저는 오싹한 기분과 함께, 몇 달전 들었던 울음소리가 생각이 났었고,
아, 이건 뭔가 문제가 있구나 라고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제 친구들도 예전에 제가 겪었던 걸 기억한 듯이 웅성거리며 제 얼굴을 쳐다보더군요.
하지만 저와 선배 이외에는 다들 자고 있었고, 아무도 그 어떤 것 조차 보지 못 했습니다.
다들 묵묵부답이자, 선배는 한숨을 푹 쉬더니 뭔가 갈구하는 눈빛으로
"A야 휴대폰 열어 봐, 그리고 얼굴에 액정 불 비춰. 빨리"
이런 이상한 주문을 했습니다.
A는 의아해 하며 그대로 따라 했고, 휴대폰을 폴더를 열어 액정에 불이 들어오자 그 불빛을 얼굴에 갖다 댔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뻔히 쳐다보던 선배는 얼굴이 점점 굳어지며 말 없이 있다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나지막히,
"x발... 아니네..."
라고 내뱉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선배가 뭔가 보긴 봤다는 걸 느낀 저희들까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무섭기도하고, 선배가 뭔가 보긴 했는데 뭔지도 모르겠고, 자초지종도 궁금하고, 그래서 제 옆에 있던 친구가 선배한테 물었죠.
"선배, 근데 뭘 보신 거예요? "
그러자 선배가 잠시 후 하는 말이..
"내가 잠이 들락말락 하다가, 영 뭔가 불편한 기분이라서 계속 뒤척이고 있었어
그러다가 A쪽 침대 방향으로 옆으로 돌아 누웠는데, 감은 눈 위로 뭔까 뿌연 느낌이 있는 거야.
그 눈감고 있을 때 렌턴으로 비추는 빛이 어른거리는 것보다 더 약하게, 딱 휴대폰 액정 불빛 정도?
그래서 눈을 떴지. 그런데 A가 누운 자리에 (A의 배 위치쯤)에 얼굴이 있었어."
"무슨 얼굴이요??"
선배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들 겁에 질려 반문했습니다.
"거 왜 있잖아... 얼굴은 작고 동글동글한데.. 눈은 동그란 애기. 대 여섯 살쯤 돼보이는.
그런 얼굴이 휴대폰 액정 빛을 살찍 비추는 것처럼 희끄무레하게 빛이 나면서 A 누운 위에 있었단 말야. x발..
진짜 있었어. 진짜로..."
선배가 설명하는 장면이 딱 이런 장면이였습니다.
전 아래에서 선배를 빤히 쳐다 보고, 선배는 제 위 A의 배 위치 쯤에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쳐다보고...
그런데 그 아이는 선배를 빤히 쳐다보며 얼굴을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면서 방긋 웃고 있었다고 합니다.
선배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처음 보고 겁에 질렸지만,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 가서 겁이 나지만 눈을 꼭 감고 한참 후에 다시 떠 본 것이였죠.
하지만 그렇게 반복해도 아이는 사라지지 않았고, 선배는 그저 겁에 질려 꼼짝도 못한 채 (마치 제가 울음 소리를 듣고 꼼짝 못 한 채 앉아 있었던 것처럼) 그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을 뿐이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제가 선배를 부르자, 아이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겁에 질린 선배는 저에게 당장 불을 키라고 소리친 것이였죠
이러한 자초지종을 들은 저희들은 선배와 똑같이 겁에 질렸습니다.
선배의 이야기가 너무 현실감 있게 무섭기도 했고. 항상 저희들 앞에서 가오만 잡던 선배가 무서워서 바싹 쫄아 붙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이 선배가 진짜 뭔가를 보긴 봤다는 확신을 심어주었고,
또, 제가 몇 달 전 들었던 울음 소리까지 다시 부메랑처럼 날아와 공포의 시너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선배의 설명이 끝나고. 다들 잠은 자야겠는데, 무서워서 불은 못 끄겠고, 각자 침대로 돌아가긴 무섭고...
그래서 선배를 포함한 저희 모두는 침대에서 각자 이불을 끄집어내 바닥에 깔고 6명이 다닥다닥 붙어서 불도 켠 채로 잠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3~4일간은 무서워서 모두 같이 뭉쳐서 잠을 잤지만 (매우 창피하게도)
일주일이 지나자 다들 그 때의 실감나는 공포를 잊더군요.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봅니다.
여튼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의 기숙사 생활은 끝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