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급이 림팩이나 탠덤 쓰러스트에서 거둔 전과까지 '다 거짓말'로 매도하는 댓글이 보여서 한마디 합니다.
실전은 실전이고 훈련은 훈련입니다.
장보고급이 거둔 전과는 거짓말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고 엄연한 실력 맞습니다.
다만 이건 훈련상황에서 이뤄진 전과라 실전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차이점일 뿐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림팩이나 탠덤 쓰러스트에서는 사각형의 훈련 구역을 정해주고 그 안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연습'이 되니까요. 수상함들에게는 몇 시에 어느 방향에서 잠수함이 온다는 것까지 미리 알려주고 탐지하고 막는 연습을 하는 것이고, 잠수함은 수상함들이 모여있는 해역에 들어가서 사냥을 하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BUT 실전에서는 이렇게 디젤 잠수함이 함대에 근접하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훈련상황처럼 적 함대에게 근접하기만 하면 잠수함이 은밀성을 살려 다 쓸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망망대해에서 적 함대가 어디로 올 줄 알고 기다립니까? 게다가 디젤 잠수함은 수상함보다 속도도 느리니 멀리서 보고 쫒아갈 수도 없습니다. 결국 디젤 잠수함이 먼 바다에서 전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2차 대전 독일 해군처럼 수백 척의 잠수함을 운용하면서 그 중 수십 척의 잠수함을 항상 바다에 그물망처럼 깔아놓는 방법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잠수함을 그렇게 대량으로 운용하는 국가가 하나도 없죠.
늑대떼 전술을 배제하고 나면 디젤 잠수함이 전과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딱 몇 가지로 압축됩니다.
적의 함대 근거지를 터는 것
적의 함대가 지날 것으로 예상되는 폭이 좁은 지형에서 매복하는 것
적의 함대의 상륙/보급 예상지점에 매복하는 것
대충 이런 상황이 아니면 디젤 잠수함이 림팩 훈련에서처럼 적 함대와 바다 한 가운데에서 '우연히' 조우하여 전과를 올릴 가능성은 매우 낮고, 위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적도 충분히 잠수함의 매복 가능성에 대해 대비를 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상황에서조차 전과를 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잠수함 매복 의심지역에서는 막말로 수상함이 소너 포기하고 30노트 이상의 고속으로 내달려버리면 디젤 잠수함으로서는 상대할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 전과도 대부분 속도가 느려터진 수송선이나 유조선들을 잡는 전과였지 영국군의 구축함이나 전함을 잡는 경우는 전체 전과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요즘 군용 수송선이나 보급함들은 예전처럼 발이 느리지도 않습니다. 속도를 올려서 냅다 도망가는 수상 함대를 잡겠다고 디젤 잠수함이 속도를 내면(그래봤자 수상함의 절반 수준) 함대 주변에서 디핑 소나를 담그고 매복 중인 대잠 헬기들에게 잠수함만 아작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림팩이나 탠덤스러스트에서 장보고급이 올린 전과는 거짓말이 아니라 팩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실전상황과는 다른, 잠수함과 수상함의 공방전을 연습하기 위한 훈련상황에서 이루어진 전과라는 한계 또한 있는 겁니다. 이걸 혼동하면 곤란합니다.
마찬가지로 유파가 개싸움에서 스텔스기를 잡았다는 얘기도 훈련상황 하에서나 하는 얘깁니다. 공역 지정해주고 스텔스기와 비스텔스기끼리 도그파이팅을 하는 건 실전에서는 벌어지기 힘든, 훈련상황의 공방전일 뿐입니다.
스텔스기가 개싸움 능력이 떨어지는 건 미국의 전투기 설계 기술이 유럽보다 부족해서 그런게 아니라 항공역학적으로 불리하더라도 스텔스 성능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뿐입니다. 따라서 비스텔스기가 개싸움을 더 잘한다고 해서 그게 곧 비스텔스기가 스텔스기보다 더 성능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도그파이팅을 잘하는 전투기를 잘 만들 수도 있지만, 그걸 포기하고 대신 스텔스 능력을 선택한 것이니까요. 스텔스기는 스텔스기의 방식대로 싸우는 겁니다. 스텔스성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행성능 일부를 포기했는데 어떤 바보가 스텔스기를 몰고 비스텔스기가 간절히 바라는 도그파이팅 상황으로 순순히 들어가줄까요?
2차 대전 때 가볍고 날개가 넓은 일본해군기들은 선회능력이 우수해서 근접전에 강했습니다. 미군기들이 이런 제로기들과 도그파이팅에 순순히 응해줬나요? 미군기들은 일본기들이 유리한 격투전이 아니라 강력한 엔진과 탄탄한 기체강도를 이용해 고고도에서 내리꽂히는 일격이탈전법으로 대응했습니다. 제로센의 조종사들은 느닷없이 고공에서 내리꽂히면서 기관총을 퍼붓고 저공으로 재빨리 사라지는 미군기들의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죠. 전쟁은 스펙 싸움이 아닙니다. 자신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상대의 단점은 최대한 이용하는 겁니다. 멍청하게 상대방이 유리한 방법으로 싸워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비스텔스기의 기동성을 십분 살릴 수 있는 도그 파이팅 연습 때와는 달리 실전을 가상해보면,
1. 센서 능력에서 앞선 스텔스기들은 비스텔스기들을 먼저 보고 교전에 유리한 위치로 이동을 합니다.
(양쪽이 같은 미사일을 쏘더라도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쏘는 쪽이 더 사거리가 늘어납니다)
2. 비스텔스기들은 존재를 모르는 스텔스기로부터 레이더 탐지에 가장 취약한 각도에서 중거리 미사일 기습을 먼저 당하게 됩니다.
3. 비스텔스기들은 일부가 격추되고, 살아남은 기체들은 미사일을 회피하느라 편대도 흩어지고 운동에너지도 떨어진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4. 이 상태의 비스텔스기들을 향해 다시 중거리 미사일 공격이 가해지고, 명중률은 더 높아집니다.
5. 숫적으로 압도하는 스텔스기가 잔여 비스텔스기들과 도그 파이팅에 들어갑니다.
6. 살아남은 적기가 많아 근접전이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되면 스텔스기들은 미련없이 돌아가면 됩니다.
우수한 센서로 적을 먼저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불리한 전투는 회피할 선택권이 있다는 뜻이고 근처 공역이나 기지에서 스크램블 대기 중인 아군기들을 불러모아 수적 우세를 누릴 수 있는 선택권도 스텔스기에게 있음을 말합니다. 6번의 경우, 미사일만 퍼붓고 유유히 돌아가는 스텔스기를 비스텔스기가 추격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방 어디엔가 미리 연락을 받고 다른 스텔스기가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죠. 비스텔스기 입장에선 스텔스기가 도망가는 건지, 유인하는 건지 판단내릴 수 없습니다.
결국, 비스텔스기가 스텔스기와 도그파이팅 훈련을 한 결과라는 건, 디젤 잠수함이 림팩에서 어뢰발사훈련을 하는 것과 비슷한 겁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만 하면 대박인데 실전에선 거의 일어날 확률이 없는 상황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