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3 사업의 최초 ROC는 '스텔스 전투기'였습니다.
F-22는 대외판매허가가 나오지도 않지만 생산라인까지 철거한 마당에 한국 공군이 의미하는 '스텔스 전투기'라는 건 누가봐도 F-35A를 의미하는 거였습니다. 육군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최근 있었죠. 대형공격헬기 도입사업인 AH-X 사업을 하면서 당당히 '아파치급'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즉, 육군은 대놓고 아파치급을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고 결국 아파치로 결정했습니다. 물건 사기 전부터 "난 아파치를 꼭 살거야"라는 속내를 드러냈으니 일부 유파 지지자들 주장에 따르면 한국 육군은 호갱 중의 호갱이고 대미 종속이겠고 아무도 입찰에 안 들어왔겠네요. 실제로 그랬나요? 우리가 아파치 갖고 싶은 티를 팍팍 내도 물건 팔고 싶은 회사들은 알아서 꾸역꾸역 들어왔고, 이웃 섬나라가 구형 모델(아파치 D)을 바가지 쓰고 산 것에 비해 우린 신형 모델(아파치E 가디언)을 싸게 아주 잘 샀습니다. ROC에 뭔 소릴 하건, 한국군의 선호도가 어떠하든지 간에 가격은 협상하기 나름이라는 좋은 사례입니다.
한국 공군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갖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ROC에 스텔스 전투기라는 조건을 넣었던 거구요. 근데 이렇게 하고 보니 후보기종이 달랑 F-35A 하나 뿐이라 가격 협상이 안되니까 후보군을 늘리기 위해서 중간에 ROC를 하향조정한 겁니다. 이건 순전히 가격협상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지 한국 공군이 스텔스기 무용론으로 급선회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즉, 공군은 아무거나 사주기만 해달라고 말은 하지만 진짜 갖고 싶어하는 건 처음이나 지금이나 F-35A 스텔스 전투기입니다.
- 한국 공군의 전투기 시장은 미국이 수십 년 간 독점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 한국 공군은 호크 훈련기 때문에 유럽제 기체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 한국 시장에서 유파보다 부족할 것 없는 라팔이 F-35도 아닌 F-15에게도 졌습니다.
- 한국 공군은 애시당초 FX-3를 통해 스텔스 전투기를 갖고 싶어했습니다.
위의 4가지 사실은 항공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라도 아는 상식이고, EADS도 모를 리 없습니다.
남이 수십 년 간 선점해서 공들여 놓은 시장에 후발주자로 들어와서 시장을 뺏으려고 하면 핸디캡을 가지고 경쟁을 하는 게 당연하고, 그럼 물건값을 다 받겠다고 해서는 이야기가 되질 않습니다. 물건의 품질이나 성능이 좋아야 함은 기본이고 가격도 싸야 구매선이 바뀌죠. 같은 값이면 그동안 문제없이 잘 쓰던 회사 물건을 계속 쓰는 게 상식입니다. 그래서 EADS가 진짜 한국에 유파를 팔고 전투기 공동개발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공생-협력관계로 발전시킬 생각이 있었으면 할 지 안할 지도 모르는 KF-X가 아니라 FX-3에 올인해서 가격을 2조 낮췄어야죠.
한국군이 미제 장비를 선호하긴 하지만 유럽제에게 기회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최근에 해군이 대잠헬기를 도입하면서 미제 MH-60R이 확정적이라는 보도까지 나온 뒤에 유럽제 AW-159로 결정했듯, 다~ 지들 하기 나름입니다. 근데 미국 독점시장에서 유럽제가 가격으로 배짱부리면 답 없죠. 유파 가격이 높게 나온 걸 보면 EADS의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얘네들이 과연 계약서에 도장찍고 나서는 지들이 퍼주겠다고 한 거 정말 퍼주고 KF-X 독자형상개발을 지지할까요? 지금까지 하는 짓 봐서는 글쎄요.
P.S. 1 - Yockey는 야끼가 아니라 야키가 맞는 발음입니다. Hockey가 하끼가 아니라 하키이듯.
P.S. 2 -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독일 국방부가 유파 최신 버전은 가격이 더 올랐음을 확인했고 그에 따라 최신 버전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 내년에 결정할 것 같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