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작년 캐나다 CBC방송에서 인터뷰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가한 캐나다인을 인터뷰 한 내용입니다.
캐나다 참전 용사의 증언으로 유추해 보면 러시아군 전차와 교전시 재블린의 탑어택 모드를 사용하도록 교육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블린을 가지고 후방에서 기습할 경우를 제외하면 정면에서는 탑어택 모드를 사용했고 그러면 사거리가 대폭 줄어들어 실제 교전 기회는 많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본 다른 인터뷰에서도 NLAW는 전차와 교전시에는 거의 쓸모가 없고 재블린 역시 제한적으로만 사용 가능 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언론에서는 재블린이 무슨 게임체인저인냥 말하고 수 많은 전과를 올렸다고 과장했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내가 글을 쓰면 여기 대다수는 러뽕이니 조선족이니 라고 하면서 나를 매도 하겠지만, 시간이 없어 두서 없이 글을 쓰게 되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글을 씁니다.
우크라이나는 절대 절대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패망은 정해진 수순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측 영상과 러시아측 영상 비교해 보면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결론에 도달 할 거라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 편에 심취해서, 우물안 개구리같이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보면 이해할 수 없는게 이 전쟁입니다. 아니 지금 세계의 흐름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흐무트 시가전이 대표적이지만 지금 러시아군은 건물 하나하나를 포병으로 박살 내며 전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 대공 미사일 부족으로 러시아 전투기들은 500kg, 1500kg의 활강 유도탄을 수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크라이나군 전상자가 수십만에 달하는 겁니다.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GDP의 80에서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지역을 병합했습니다. 이 건 러시아 영토이고 물론 우크라이나가 능력도 되지 않겠지만 이를 침범하면 러시아는 자기들의 독트린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곳은 이제 우크라이나가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영토입니다. 그리고 비록 제가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예상하자면 이대로 전쟁이 끝난다 해도 하리코프나 오데사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해서 러시아 연방에 참여하려 할 겁니다. 저 지역 역시 러시아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며, 경제적 이익이나 미래의 삶을 위해서라도 그들에게는 그게 최선의 선택일 겁니다.
미래의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빈국의 내륙국가가 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흑토 지대 대다수를 차지함으로써 국제 곡물 시장에서 미국과 맞먹는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어느 순간 세상에서 잊혀지게 되겠죠. 미군이 떠나자마자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 아프칸처럼요......
이것을 이해 못하고 편협하게 보면 푸틴이 정신병자라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을 갈아 넣고 있고 사우디와 UAE가 미쳐서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인정하고 국가 재건에 도움을 주겠다고 선언했으며 MBS가 미쳐서 이란과 화해를 시도하고 있고 BRICS국가들이 미쳐서 새로운 무역 결제 시스템과 통화를 만든다고 논의하고 달러 표시 채권을 매도하고 있는 거겠죠. 저들이 정신이상자들이라서 절대 선인 미국을 거스르고 미국 경제에, 미국의 패권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고 있는 거겠죠.
Canadian
fighting in Ukraine describes the 'hell' he witnessed
기자:
정확히 우크라이나
동부 어느지역에서 복무했나요?
군인:
돈바스에서
복무하고 왔습니다.
기자:
그곳 상황이
어떤가요?
군인,
콜사인 shadow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옥입니다.
기자
왜
그렇죠?
군인
왜냐하면
매일 매일 부상자들이 발생하고 우리의 친구들이 매일
매일 죽어갔기 때문입니다.
미국
해병으로 복무했던 제 친구가 수행했던 대부분의 일은,
정찰 미션을
나갔다 죽은 친구들, 그러니까
죽은 시체들을 수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그게 우리들 삶이었습니다.
기자
그곳에서
당신의 역할은 어떤 것 이었습니까?
군인
저는
보병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켄싱턴 스나이퍼 월리(코드명)와
짝을 이뤘습니다.
저는
그의 팀메이트였고 우린 항상 같이 작전했으며 나는
그를 보조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항상 어디든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탄약을
들고 다니는게 내가 했던 주 역할이었습니다.
기자
그곳에서
직접 교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군인
네,
그럼요.
기자
그
상황에 대해 말해주시겠어요? 포격에
의한 것 말고 직접 교전 말입니다.
군인
순화해서
말씀드릴까요?
기자
말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됩니다.
군인
네.
저와 월리의 첫
미션은 이르핀에서였는데 우리는 아파트로 들어가서
스나이핑 위치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파트에 올라가 위치하고 주위를 관찰했는데 아마
10분
정도 지났을거라 생각하는데 엄청난 폭음과 함께
아파트가 흔들거렸고 모든 창문이 깨졌습니다.
그때 나는 바닥에
쓰러졌고 '젠장
뭔 일이야'라고
말하며 세이프룸으로 기어갔던게 생각납니다.
우리는
그때 탱크 포격을 받았는데 그 러시아 탱크는 우리가
위치한 곳에서 약 3미터
위로 발사했습니다. 저와
월리는 방에서 만났고 우리를 향해서 소화기가 발사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빌딩을 빠져나왔는데 그 이후
엄청난 총격전이 있었습니다.
그게
저의 첫 총격전이었습니다. 우리로
부터 5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러시아군이 있었는데 총알들이
온 사방으로 날라 다녔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 러시아군들은 우리를 포위하려
했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들 중 한 명의 부상자가 있었는데 그는
러시아 스나이퍼에 의해 어깨를 관통 당했고 한 손에는
권총을 쥐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상처를 막고 있었는데
피가 온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우크라이나인
친구 한 명이 이 상황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으니
후퇴하자고 했고, 완전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다
그 우크라이나인 친구가 총에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우리를 살려준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러시아군을 향해 RPG를
발사했는데 그게 우리가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내가 기억하는 건 나는 달리고 있었고 내 오른쪽에
큰 폭음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박격포였던거 같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승합차에 도착했고 재빨리 타고 그곳에서
벗어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을 닫을 수 없었고
나의 등은 차 외부에 노출된채 주거지역을 거의 100킬로
속도로 달렸습니다. 그
와중에 보조석에 앉은 친구는 뒤를 향해 사격을
가했습니다. 예
우리가 거기에서 벗어난 것은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그게 저의 첫
전투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기만 했습니다.
기자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로 언제 가게 되었습니까?
군인
아마
열흘 전 일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처음 이르핀에서 싸웠고 그곳에서 러시아군을
막은 뒤 우리 부대는 돈바스로 배치되었습니다.
돈바스에서의
경험은 이르핀과는 완전 달랐습니다.
이르핀에서는
주로 도심지 전투였는데 돈바스는 세계 2차대전
분위기의 비, 진흙,
들판들,
참호들.....
맞은편엔
러시아 전차 연대가 집결해 있었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우리에겐
재블린 미사일이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월리는
두 시간에 걸쳐 재블린 미사일 사용법을 배웠고 저와
월리는 재블린 운용병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재블린 운용 미션에 투입되었는데 러시아
탱크는 항상 사거리 밖에 위치해 있어서 실제 교전 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전장에 나가면 그 탱크들은 우리를 향해 사격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아침에 저와 월리는 당일 미션을 나갔는데,
그 임무는 작은
숲에 들어가 탱크가 오는지 관찰하고 만약 접근하면
재블린을 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시에 저와 월리는 거의 1.5킬로미터
떨어진 작전 지역으로 진흙 속을 걸어가 도착했습니다.
그
곳은 작은 참호같은 곳이었는데 두 명의 우크라이나
군인이 있었습니다. 월리는
저를 보고 참호 안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참호안에 있는
것은 지루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의 말에 따라 참호
안으로 들어 갔고 월리는 다른 우크라이나 군인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참호 근처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월리는
망원경으로 러시아 탱크가 접근하는지 감시하러 조금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나는
참호 안에서 헬멧을 벗고 '날씨
좋네'라고
생각하며 참호에서 나가 담배를 피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말이나 걸어 보려 했었습니다.
참호
밖으로 한 발을 내 딛는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것 때문에 나는
참호 바닥으로 넘어졌고, 영화에서
본 듯한, 내
귀에 띵 하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참호에서 일어나 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향해 러시아 탱크가 사격을 가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격은 정말
정확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매우 정확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
탱크는 우크라이나 군인 둘 사이에 정확히 발사했습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헬멧을 쓰고 그 군인들을 봤습니다.
한 명은 죽은 듯
바닥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나랑 몇
피트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그는
여전히 숨은 쉬고 있었지만 다리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순간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쳐지며 몸도 그
방향으로 돌아갔고 그는 숨을 거뒀습니다.
눈
앞에서 두 명의 우크라이나 친구가 죽었고,
월리가 저보고
참호 안에 있으라고 말해준 덕분에 제가 살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저와 월리는 함께, 조금
웃기긴 한데 왜냐하면 월리는 재블린을 가지고 그 탱크
뒤를 쫓아갈 수 있을까라고 말했을때 나는 여기에서
당장 벗어나야돼,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 당장
도망가야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월리는 저격총을 가지러 가야겠어라고 말하며 참호
사이를 기어서 가고 있을때 러시아 탱크는 다시 이전
위치에 포를 발사했고 월리는 파편같은 것들을 뒤집어
썼지만 부상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월리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사망 했는지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저격총을 손에 쥐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달리기 시작 했을때 우리를 향해 다시 한 번 포가
발사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얼마
후 기지로 돌아갔고, 그게
돈바스 에서 내 마지막 정찰 임무였습니다.
12분
4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