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숨이 가쁜 달이었습니다.
자, 결산을 해야 하죠?
우선 월초 파이브 아이즈 이슈가 터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왕이가 방문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을까요? 이런 저런 전문가가 주워 섬긴 말을 인용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여태 중국의 대한외교를 지켜보며 한 가지 추론한 건, 어차피 똑같은 레토릭을 반복했을 거란 겁니다.
그 레토릭이 뭐냐? 크게 두 가지가 있겠죠.
한국이 외교에 있어 항상 중국에게 한 수 접어주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크게 둘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경제겠죠? 그런데 이 카드는 버린 카드입니다.
왜냐고요? 경제는 아시다시피 이미 THAAD제재를 위해 써버린 지 오래입니다. 거기다 시진핑은 "중국제조 2025"라는 목표를 걸고 모든 첨단기술에 대한 진출의욕을 불태우며, 시장을 닫아 걸었습니다.
중국은 대놓고 너희 밥그릇을 빼앗아 갈 건데, 밥솥이랑 아궁이도 우리 집으로 옮겨라, 요구하고 있죠.
반도체, 배터리등 핵심 생산라인을 중국에 구축하라고 압박해왔습니다.중국 시장을 위해 중국이 요구하는 최소한도의 생산라인 이전을 하고 있지만 단순한 생산라인 이전만으론 예전과 같이 기술을 훔쳐가기 힘듭니다. 여전히 핵심부품과 소재는 한국에서 제조해 수출하고 있고, 이 때문에 한-중 무역관계는 여전히 호황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매우 일방적 관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중국이 한국에게 줄 게 별로 없습니다. 또 제재 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이미 소비재는 모두 때려 막았습니다. 문화상품, 화장품, 유통등은 막혔고, 중국과의 경합 산업도 막았습니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제조하지 못하는 품목만 수입 중입니다. 이걸 막으면 중국 생산경제도 멈추죠. 따라서 중국이 한국에 제시할 꿀물 같은 건 경제분야에서 없다시피 하고, 한국 역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왕이가 한국에게 말 잘 들으라고, 시장을 개방할 수도 없고, 개방한다 해도 한 번 당한 한국기업이 좋다고 들어갈 이유도 없는 겁니다. 천지개벽할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그럼 두번째는?
뭐, 그렇습니다.
여태까지 중국이 한국에게 거드름을 피울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입니다.
전 북한이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기 직전에 핵무장을 시켜준 건 중국의 힘이 컸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인도가 파키스탄을 영향권 안에 넣기 직전, 그 핵무장을 시켜 준 것이 중국이었다는 사실과 결부하면. 중국이 북한을 핵무장을 시켜 한국의 영향권에서 꺼내놓았다는 것은 아주 그럴 듯한 시나리오입니다. 더구나 이란-파키스탄-북한을 보면 핵탄두, 미사일, 발사차량이 아주 유사합니다. 이 트라이앵글의 배후는 모두 하나로 축약됩니다. 중국.
북한이란 완충지를 핵무장까지 시켜 보존한 중국은 영리하게도 이를 가지고 한국까지 조종하려 들었습니다.
21세기 초부터 북한과의 공존과 평화, 궁극적으론 통일을 위해선 "주변국"과의 외교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널리 퍼졌습니다. 물론 전 그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요. 힘이 없는데 주변국과의 외교를 통해 뭘 어쩌구 저쩌구한다? 설득력이 없습니다. 책봉 받습니까? 독일 통일은 외교를 통해 양해를 받은 게 아니라, 소련의 힘이 무너져 세력균형이 쏠려서 그렇습니다. 독일 통일은 미국의 추인이 결정적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하필 이 결정이 저주가 되어 한반도가 장기 분단한 것이고요.
소련/러시아를 견제할 줄 알았던 통일독일이 오늘날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을 하며 미국의 뒤통수를 갈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미국이 한반도 통일에 의구심을 푸는 건 결국 제 2의 독일이 나올 수 있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전 한반도 통일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 점이라 봅니다.
결국 통일은 주변국에게 굽신거리며 인심을 살 게 아니라, 통일을 원하는 세력이 힘이 세지도록 조정해야 가능해집니다. 그게 제 생각이에요. 결국 키포인트는 미국입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다 필요 없습니다.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을 쓰러트리면 됩니다. 그리고 가장 센 보스와 협상을 하면 됩니다. 괜히 여섯, 다섯 모여봐야 결론은 안 납니다. 하나를 만족 시키기도 어려운데 다섯? 불가능한 일이죠.
여태까지 우린 어떤 착각에 빠져 이 불가능한 미션을 클리어하겠다며 시간만 낭비한 겁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군사동맹은 오직 미국뿐인데. 한반도 정세와 한반도의 대외전략에 일본, 중국이 감놔라 배놔라. 생선대가리를 동쪽에 놔라, 서쪽에 놔라 참견을 해온 거고. 우린 그들 인심을 사느라 갈지자 횡보를 한 겁니다. 이러니 중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은 우리 영향권에 들어 있는 속국이란 인식을 심어준 것이고요.
최근 대한민국 행정부의 움직임은 그래서 주변국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한 겁니다.
"나 사장하고만 얘기할 거니까, 직원 꺼지고, 옆집 가게 사장 꺼져."
한반도의 평화 혹은 전략을 가지고 대화는 미국하고만 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한 것입니다.
보다시피 정권초부터 일어난 북한과의 협상 이벤트를 모두 보시면. 주변국을 모두 제낀 걸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북한과의 정상회담 정보를 얻지 못했고, 중국조차도 그랬습니다. 철저히 한국과 미국, 북한 이 3자만이 긴밀히 움직였습니다. 물론 마지막 한 방에 일본이 드디어 태끌에 성공하긴 했지만 말이죠.
이제 대한민국 외교안보라인의 생각은 간단해요. 한반도는 한, 미, 북 3자가 움직인다. 다른 여타 잡스런 세력은 배제한다. 그런데. 수십년 동안 꿀을 빨던 중국이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관을 가지고 한국에게 헛소리를 했습니다.
그가 언급한 양국관계 3대 요소는, 상호존중, 상호협력, 한반도 평화유지인데.
이게 하나 같이 개소리입니다.
상호존중은 한국이 그냥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고, 남지나해의 보유를 응원하란 소립니다. 개소리죠.
상호협력은 나는 내수시장을 막을 테니, 너는 계속 시장을 열란 소립니다. 개소리죠.
한반도 평화유지는 우리가 북한에 영향력을 넣을 테니, 그냥 이대로 살자,란 소립니다. 개소리죠.
뭘 하나라도 주는 게 없이 그냥 찌그러지란 소릴 당당하게 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주 재밌게도 한반도 양국이 왕이 얼굴에 아주 먹칠을 해버립니다.
왕이가 3가지 개소리 요구를 한 다음, 오후 오찬에 중국은 왕이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합니다.
< 응, X까! >
중국이 한국에게 북한 비핵화에 도움을 주겠다,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며 입에 발린 소리를 하자. 그 침이 마르기도 전에 북한이 엿을 날렸습니다. 중국이 북한에게 영향력이 있고, 비핵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래서 왕이 정도가 왔다면, 북한은 이런 행동을 해선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대놓고 엿을 먹였습니다. 즉, 북한은 전세계에 [중국 같은 건 우리 공화국에 영향력 같은 거 뭣도 없다]라고 선언한 겁니다.
북한은 중국에게 굴욕감을 줬습니다.
그런데 막상 중국은 북한을 방법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북한에겐 이제 미국이란 대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북한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영향력이란 게 있다 해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대한민국 외교안보 라인 핵심관계자들 역시. 딱히 중국에게 고갤 숙일 필요는 없다란 확신을 줬을 겁니다. 중국에게 뭘 양보하든 어차피 우린 얻을 게 없고, 잃을 것만 있으니까요. 무려 20여년 넘게 한국 등을 쳐먹던 먹거리 두 가지가 모두 떨어져 버렸습니다.
네, 중국은 한국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두 가지 카드를 어제 자로 완전히 다 잃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파이브 아이즈는 냉전의 산물이다! 그냥 우리 아래 찌그러져 살아라! 라고 요구한 왕이에게 대한민국 역시 메시지를 보여줬습니다.
< 한반도 비핵화? 네가 비핵화를 말해? X까고 있네 >
결론은 사장하고 말하면 됩니다.
옆집 사장하고 말해야 된다거나, 직원에게 일단 물어보란 사람은 일단 그 사람 친구인지 의심부터 하고 볼 일입니다.
왕이가 우리에게 남긴 건, 실없는 소리고.
우리가 왕이에게 준 건, 감자바위입니다.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어쩌구저쩌구는 어제로서 쫑났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