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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29 15:22
[사진] [펌] 2차대전때 미국의 불명예 무명용사들의 무덤
 글쓴이 : 노닉
조회 : 1,978  



프랑스의 우이즈 엔 미국 묘지 E구역에 묻혀있는 2차대전 미군들

공원 한구석에 비석 없이 명패만 박아놓고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묘역으로 되어 있음


총 94명이 매장되었고 전부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군법으로 처형당한 미군들이 묻혀있음


어니스트 리 클락 상병, 어거스틴 M 구에라 일병: 15살 소녀를 집단강.간하고 살해

윌리엄 해리슨 일병: 7세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

로버트 L 피어슨 상병: 75세 노인을 강.간하고 살해

블레이크 W 마리아노 일병: 20대와 50대의 두 여성을 강.간. 이외 최소 한 명을 총으로 살해.

로버트 L 스키너: 9세 여아를 강.간하고 살해. 여아와 함께 있던 다른 남성도 살해


대략 이런 애들이 묻혀있고 원래는 이름도 안 적어놓고 무덤번호만 있는데

2009년에 정보공개 청원으로 인해 누가 어디에 묻혀있는가 공개되었음



원래는 96명이었는데 두 명을 이장시켜줌


한명은 에디 슬로빅으로 1944년에 징집되어서 전쟁에 끌려왔다가 탈영하고 적전도주죄로 처형

2차대전 동안 미군에서 탈영죄 하나만으로 처형된 유일한 케이스


에디 입장에서야 난데없이 군대 끌고오더니 총 쥐어주고 사람 죽이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고 상층부 입장에서도 프랑스 전선에서 국방군들의 발악으로 사상자는 계속 쌓여가는데 탈영병을 가볍게 처벌했다간 탈영이 속출할 것이니 어쩔 수 없었던 선택임


미국 입장에서도 반인륜 범죄 저지른 인간쓰레기도 아닌데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80년대에 미국 본토로 이장시켜줌


여러모로 시대의 희생자...



또 다른 한명은 렉스 F 미란다란 병사인데 얘는 술에 잔뜩 취해서는 노상방뇨하다 잡히고

이에 대한 화풀이로 밤에 자신의 상사인 엄격한 병장의 숙소로 벌고벗고 들어가선

코를 골며 자고 있던 병장머리에 총을 쏴서 죽였음


하여간 우리는 저런거 구분안하고 죄다 현충원에 묻어줬지 끌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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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ist 20-03-29 16:13
   
쿠데타 집권세력들은 현충원에서 다 파내야지..
이런 놈들을 기린다는 것은 앞으로도 군대에게 쿠데타를 하라고 조장하는 것과 같지..

총선 끝나면 이제는 현충원 선별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순전히 국가에 공만 있는 사람들만 묻히게 하고 공이 없으면 당연히 파내고 공이 있다 한들 과가 그에 못지 않거나 오히려 과가 더 큰 사람들도 다 파냈으면 한다..
자기들 가문이야 어쩔 지 모르지만 전 국민이 숭배할 대상은 아니지..
     
이름귀찮아 20-03-29 16:25
   
그거 파내면 그 가족들만 난리칠 상황이 아니조

당장에 조중동애들 입에 거품을 물건데
          
수염차 20-03-29 21:55
   
조중동을 파묻을 방법은 없을까요
야구아제 20-03-29 21:08
   
초기 낙동강 전선에서 전사한 호국영현들 중에는 전시라 제대로 영현 처리하지 못하고 전사자들을 시체더미로 쌓아 두고 소각하여 뼈 등의 부수물을 유골함에 일정량씩 담아 영현처리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모역에는 그들이 함께 있는 것이지 한 분이 곱게 한 곳에 각방 쓰고 있으시다고 보기 힘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참 슬픈 일이네요.
강시 20-03-29 22:21
   
독립군 체포  고문의 달인 악질 친일 고등계 형사출신 노덕술이나  관동군 헌병출신으로  김구선생 암살에도 관여돼 있는 김창룡도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판인데
없습니다 20-03-29 23:19
   
에디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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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미시간의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손버릇이 나빠 공장 등에서 물건을 훔쳤고 교도소에 두 번이나 가기도 했다. 1942년에 가석방 된 뒤에 앤투어넷 위즈니스키(Antoinette Wisniewski)와 만나 결혼하였다.

에디는 범죄 등으로 인해 병역에 부적격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초기에는 당연히 집에서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 전선이 격화되면서 전사상자가 급증하고 미군의 병력 수요도 늘자 징병의 폭이 확대되면서 징병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도 신체 등급이 현역이고 중범 전과만 없으면 모조리 끌어내기 시작하는데, 에디도 이런 이유로 육군으로 징병되었다. 성장하던 시절에도 이미 절도죄를 여러번 저지르는 등 인성에 문제가 많다는 평가를 받았으니까, 애초에 병역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무리하게 징병했다가 비극이 벌어진 셈이다.

텍사스에서 훈련을 받은 뒤 프랑스 전선에 배치됐지만 동료와 숨는 등 적 앞에서 도망쳤다. 부대에서 낙오하여 후방에 있는 캐나다군 육군 부대에서 6주를 보내기도 했고 이 일로 기소되었다. 슬로빅은 군사 법원에서 자신이 전선에는 맞지 않는다며 소총수로 배치되면 도망갈 거라고 대대장인 로스 헨베스트(Ross Henbest) 보병 중령에게 말했다. 군 변호사인 헨리 서머는 부대로 일단 복귀하면 기소가 연기될 것이고 다른 부대로 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슬로빅은 거부하고 군사 법원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밝혔다. 아마 자기가 탈영만 했으니 사형은 당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군에서 탈영죄로 처형당한 범죄자가 여럿 있긴 했지만 순수 탈영만으로는 사형이 집행된 사례가 이전이건 이후건 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제 무덤 파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당시 그가 소속됐던 육군 제28보병사단은 휘르트겐 숲 전투(Hürtgenwald)를 비롯해 독일 국방군 육군과의 최전선에서 계속 사상자를 내고 있었고, 워낙 전투가 처절한 나머지 정신줄을 놔버린 군인들도 수두룩할 지경이었다. 그때문에 사단에선 군기를 확실히 세우고 잠재적 탈영병들에게 탈영한다고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1944년 11월 11일에 군법 회의가 열렸고 군 검찰 측인 존 그린(John Green) 육군 법무 대위는 그가 전선에 배치될 경우 탈영하겠다고 증언했다고 증인을 내보냈고 변호인 측인 에드워드 우즈(Edward Woods) 대위는 슬로빅이 증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9명의 장교로 된 배심원은 유죄로 판단했고, 적전탈영죄로 사형이 선고됐다. 사단장인 노먼 코타(Norman Cota) 육군 소장이 재가했다.

1944년 12월 9일 슬로빅은 연합군 최고 사령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육군 원수에게 감형 청원을 보내지만 12월 23일 기각되었다. 이듬해인 1945년 1월 31일 오전 10시 4분에 프랑스 알자스의 광산촌인 생트마리오미느(Sainte-Marie-aux-Mines)의 사형장에서 헌병들의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그 후 우아즈-엔(Oise-Aisne)의 미군 묘지 중 범죄를 저질러 총살된 이들만 매장한 E 묘역에 묻혔으나, 1987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중범죄자가 아닌 일반 탈영병임을 감안, 그의 시신을 미국으로 옮기는 것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허가하여 미국으로 와 1979년에 사망한 아내의 무덤에 같이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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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스스로 제발찍은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