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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2-10 10:11
조선 각궁의 위력 (네이버 캐스트)
 글쓴이 : 스펜타
조회 : 13,344  


한번 조선 각궁에 대해서 쓰다가 날아가 버려서 눈물을 흘리며 포기했는데.
마침 네이버가 각궁에 대해서 글을 올려주었습니다. ㄳ ㄳ

조선 편전의 경우 통아로 비조준사격으로 최대 1000보 즉 1km 를 넘게 날아갔습니다.
(대규모 궁수부대는 적을 조준사격하지 않습니다.    적과의 거리를 짐작하여 동시에 발사하죠)

조선과 비슷한 활과 화살을 사용하던 12c 요나라와 금나라가 
송나라 중장기병과 싸울 때 송나라 중장기병의 철 장갑을 종잇장 마냥 뚫어졌다고 합니다.

(송나라 철기 제작기술은 엄청났었습니다.  프랑스 석학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는
12c 송나라의 철강 생산량은 19c 영국의 철강 생산량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당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중국이 차지한 전세계 GDP는 50%~60%이고 서양이 중국의 gdp를 따라 잡은건 19c 후반에 가서야 이루게 되죠.....)  

이런 중장기병을 요리한 활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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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들은 중국의 창법(槍法), 조선의 편전(片箭), 일본의 조총이 천하제일이라고 항상 말했다.’ 일본인들이 중국의 창술, 편전을 사용한 조선의 활쏘기, 일본의 조총을 동아시아 삼국을 대표하는 무술 혹은 무기로 손꼽았다는 이 기록은 1614년(광해군 6년)에 편찬된 조선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에 실려 있다. 이처럼 조선의 활쏘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조선을 대표하는 무예로 인정 받았다.

 

 

군인의 진급을 좌우한 활쏘기

심지어 임진왜란 종전 직후인 1598년(선조31년)에 출간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 서적으로 손꼽히는 [무예제보]에는 “조선은 칼 쓰는 법과 창 쓰는 법은 전혀 배우지 않고 오로지 활쏘기만 연습했다”는 구절도 나온다.

 

1543년에 작성된 법전인 [대전후속록]에는 군인들의 활쏘기 성적에 따른 포상과 처벌 규정이 명기되어 있다. 활쏘기 성적이 나쁘면 진급과 포상의 기준이 되는 근무 인정 일수를 삭감했고, 두 차례 활쏘기 시험에 불참할 경우 품계를 강등하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런 만큼 조선의 군인이라면 활쏘기에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가장 자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일과 중에 하나가 활쏘기다. 이순신은 1592년 1월1일부터 1598년 11월17일까지 7년 동안 일기를 썼는데 그 중 1593일분의 일기가 남아있다. 이 1593일 분의 일기에 총 264회의 활쏘기 연습 기록이 등장한다. 남아있는 일기만으로 치면 대략 6일에 한번 활쏘기 연습을 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한 번 활을 쏠 때 평균 35발(7순)을 쏘았으므로 임진왜란 중 장군이 연습용으로 쏜 화살의 수는 최하 8000발이 넘었을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 중 활쏘기 장면, 전통 활쏘기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군인의 활 실력

이순신 장군은 1592년 3월28일자 일기에서 50발을 쏘아 표적에 43발을 명중했다고 기록했다. 이 같은 성적은 조선시대 군인들의 활쏘기 실력 중 어느 정도 수준일까. 임진왜란 종전 8년 후인 1605년에 함경도에서 군관으로 군 생활을 한 박계숙과 역시 1644년에 함경도에서 군관으로 복무한 박취문 부자가 대를 이어 기록한 [부북일기]에서 그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일기의 주인공인 박계숙은 50발을 쏘아 48발을 맞춘 기록도 있고, 50발을 쏘아 50발을 모두 명중한 사례도 있다. 그의 아들 박취문은 더 뛰어나서 5발을 10번 쏘아 모두 명중하는 ‘10순 몰기’ 기록이 여러 번 보인다. 심지어 다른 명사수인 군관 이시복과 활쏘기 시합을 벌여 189발을 연속 명중하기도 했다. 박취문의 활쏘기 능력이 대단해보이지만 시합결과는 200발을 연속 명중한 군관 이시복의 승리였다.

 

[부북일기]에서 함경도 군관들의 활쏘기 기록을 보면 성적이 가장 나쁜 군관들의 기록이 50발을 쏘아 43발을 맞추는 수준이었다. ‘50발 발사 43발 명중’이라는 이순신의 활쏘기 성적은 1600년대 중반 함경도 군인들의 활쏘기 실력과 비교하면 하위권에 해당하는 셈이다. 일반 병사들의 활쏘기 실력은 이보다 낮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조선시대 군관 이상 무관들의 활쏘기 능력은 상당한 수준이었음이 분명하다.

 

 

조선시대의 활 사거리

조선시대에 가장 널리 사용하던 화살 종류인 유엽전의 경우 120보 쏘기가 기본이었다. 1보는 보통 1.2m로 환산하므로 120보는 144m가 된다. 현대의 국궁 활쏘기에서도 이 같은 규격을 약간 조정해 보통 145m 거리에서 활을 쏜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편전은 130보(약 156m) 거리에서 사격을 했고, 무과시험에서는 150보(약 180m) 거리에서 과녁을 맞히는 종목도 있었다.

 

수원 연무정. 우리나라 활터의 사대와 과녁 사이의 거리는 145m다.

전통 화살들. 조선은 화살의 종류도 다양했다. <출처: 문화재청>

 

이 같은 무과시험의 활쏘기 거리 기준이 활의 최대 사거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종류의 활이라도 크기나 제작방법에 따라 사거리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팔 힘이나 화살의 형태와 무게에 따라서도 사거리 차이가 벌어진다. 또한 활을 쏘는 각도도 사거리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각궁은 최대 300m까지 날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 같은 변수를 생각하면 구체적인 조건을 특정하지 않는 한 최대 사거리는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참고로 같은 합성궁 계통의 활인 터키 활의 경우 최대 845.5m까지 날아갔다는 주장이 있다.

 

해군사관학교에 소장된 조선시대 수군의 교범인 [수조규식]을 보면 전투시 적용할 여러 가지 무기의 사거리가 나와 있는데 각종 총통은 200보(약 240m), 조총은 100보(약 120m), 활은 90보(약 108m)로 규정되어 있다. 실전에서는 원하는 표적에 명중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므로 활 성능상의 최대사거리보다는 짧은 사거리에서 활을 쏘았음을 알 수 있다.

 

말 위에서 활을 쏠 때는 좀 가까운 거리에서 활을 쐈다. 조선 후기에 널리 보급됐던 [사법비전공하]라는 책을 보면 “말 타고 쏠 때에는 10~20보(약 12~24m)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화살을 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어 기병은 근거리에서 활을 쏘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병법서적 중에 하나인 ‘병학통’을 보면 당시 기병은 적이 100보(약 120m) 거리에 들어오면 활을 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말을 정지시킨 상태에서 사격법이어서 일반적인 기병들의 활쏘기와는 차이가 있다.

 

 

조선시대의 활 사격법과 편전

우리나라 활을 쏘는 방법은 양궁의 사격법과는 차이가 있다. 화살을 쥐는 방법도 다르다. 국궁 사격에서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 깊숙한 곳에 시위가 물리고, 엄지손가락을 다른 손가락 안쪽으로 꺾어 넣은 후 엄지손가락 위에 화살을 놓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합성궁을 사용하는 중국, 몽골에서도 널리 사용하는 방식으로 국제적으로는 몽골리안 릴리즈(Mongolian release)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 등은 엄지손가락으로 화살 끝을 누르면서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시위가 걸리게 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 방식을 이 핀치 릴리즈라고 부른다. 유럽과 지중해 연안지역에서는 집게손가락과 중지 끝으로 화살을 쥐고 여기에 약지까지 더해 세 손가락으로 시위를 잡는 방법도 사용했다. 이것을 지중해식 릴리즈라고 부르는데 현대 양궁에서도 널리 사용하고 있다.

 

화살을 놓는 위치도 다르다. 오른손잡이가 쏘는 국궁이라면 표적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활의 오른쪽에 화살이 놓인다. 이에 비해 양궁에서는 활의 왼쪽에 화살이 놓인다. 사극에서 국궁 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이 같은 국궁 사격법을 제대로 재연하지 못하고 양궁 쏘는 방식으로 찍어서 논란이 된 경우도 많았다. 다행히 근래의 [추노], [성균관 스캔들] 등에서는 좋은 고증으로 제대로 된 활쏘기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이들의 칭찬을 듣기도 하였다.

 

전통 활쏘기 방법(왼쪽 사진)과 양궁(오른쪽 사진)은 화살을 쥐는 방법, 화살을 놓는 위치가 확연히 다르다.

 

 

이수광이 조선을 대표하는 무기로 손꼽은 편전은 사실 일반적인 활쏘기에서 사용하는 화살이 아니다. 통아(桶兒)라고 부르는 반으로 쪼갠 대나무관 위에 화살을 놓고 쏘는 특수한 방식의 활쏘기에서 사용하는 화살이 바로 편전이다. 화살이 짧다는 점에서 애기살이라고 부르는 편전은 통아 위에 화살을 놓고 쏘기 때문에, 길이가 짧은 화살을 쏠 때도 화살 길이와 상관없이 시위를 당길 수 있다.

 

편전은 화살이 짧아 상대방이 화살을 눈으로 보기가 어렵고 사거리도 일반 화살에 비해 더 긴 것이 특징이라고 알려져 있다. 편전은 기록상으로는 1000보나 날아갔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긴 사거리가 특징이다. 이 같은 활쏘기 방식은 서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사용했지만, 동아시아권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널리 사용했다. 심지어 국경지역에서는 편전 쏘기를 금지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외국에 알려지면 안되는 특수한 기술로 취급하기도 했다.

 

편전과 통아

 

 

조선의 대표 활 각궁은 합성궁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활이 쓰였지만 무관들이 사용하는 활은 각궁(角弓)이었다. 각궁은 나무, 힘줄, 쇠뿔 등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재료를 천연 접착제로 결합한 활이었다. 나무를 그대로 다듬어서 활로 만드는 단일궁이나 성질이 약간씩 다른 나무를 여러 조각 결합해서 만드는 복합궁과는 달리 나무, 힘줄, 쇠뿔을 조합해서 만드는 각궁 같은 활을 합성궁(Composite Bow)이라고 부른다.

 

합성궁은 시위를 풀었을 때 활이 굽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활을 굽은 활이라는 의미에서 만궁(灣弓)이라고 부른다. 만궁 중에서도 합성궁 계열의 만궁은 시위를 풀었을 때 활이 거꾸로 뒤집힐 정도로 활의 탄성이 강하다. 합성궁-만궁 형태의 활은 말에서 사용하기 좋게 길이가 짧은 것이 특징인데 이런 짧은 활을 단궁(短弓)이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영국 롱보우나 일본 전통 활처럼 시위를 풀었을 때 곧게 펴지는 활이 있는데 이런 활이 바로 직궁(直弓)이다. 단일궁-직궁 계열의 활은 활을 보통 길이를 매우 길게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장궁(長弓)이다. 직궁-장궁 계열의 활은 단일 재료로 만드는 단일궁이나 비슷한 재료를 써서 만드는 복합궁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 각궁은 바로 합성궁-만궁-단궁에 해당하는 활로 강한 탄성과 복원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길이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합성궁은 특히 길이가 짧아서 휴대하기가 편하므로 말 위에서 기병들이 쏘는 활로 매우 적합하다. 이 때문에 이런 종류의 합성궁은 우리나라와 이웃 중국은 물론이고 만주족부터 몽골, 투르크에 이르기까지 기병으로 초원지대를 휩쓸면서 대제국을 건설했던 집단은 예외 없이 사용했다.

 

시위를 결합한 각궁(아래)과 시위를 푼 상태(위)의 각궁 <출처: 문화재청>

 

 

위화도 회군의 핑계가 된 합성궁의 약점

조선시대 각궁은 나무로 활의 기본 뼈대인 활채를 만들고 활채 안쪽에는 쇠뿔을, 활채 바깥에는 소의 힘줄을 덧붙여서 제작했다. 각궁을 포함한 합성궁 계열의 활은 나무, 힘줄, 쇠뿔을 조합해서 만든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세부 재료나 가공 방법, 크기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름의 개성이 있다. 이를테면 조선의 각궁은 활 양쪽 끝의 고자는 산뽕나무로 만들고, 손잡이 부분에는 참나무로 만든 대림목을 붙여 강도를 보강했다.

 

이처럼 각궁을 비롯한 합성궁은 여러 가지 성질이 다른 재료를 결합해서 활을 만들기 때문에 접착제가 필요하다. 합성궁의 접착제로 동물성 천연접착제인 아교를 주로 사용했으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바다 물고기인인 민어의 부레로 만든 어교(魚膠, 부레풀)를 널리 이용했다.

 

각궁의 각부 명칭과 재료

 

 

이처럼 접착제를 사용해서 활을 만들었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으면 접착제의 접착력이 약해지는 것이 각궁을 비롯한 합성궁의 약점이었다. 1388년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면서 명나라 요동을 정벌할 수 없는 이유로 내걸었던 4불가론의 하나로 "때가 바야흐로 덮고 비가 많은 계절이라 쇠뇌와 활의 접착제가 풀린다"고 언급한 것이 바로 이 접착제 문제를 지칭한 것이다. 서로 성질이 다른 재료를 접착하는 만큼 가공 방법이 복잡하고 제조 기간이 긴 것도 각궁을 비롯한 합성궁의 약점이었다. 각궁 제조 가정에서 손 3700회 이상의 손질을 해야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사라진 흑각군궁, 다시 세상에 나올까

조선시대 각궁은 다시 뿔의 종류와 사용하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군대에서 사용한 군용 각궁 중 가장 성능이 좋은 활은 흑각궁이었다. 흑각군궁(黑角軍弓)으로 불리는 군용 흑각궁은 활채를 대나무가 아니라 산뽕나무로 만들고, 뿔은 수입산 검은색 물소뿔을 사용했다. 또 표면을 실로 감고 옻칠도 해서 내구성을 보강한 것이 특징이다.

 

흑각궁에 사용하는 물소뿔은 주로 동남아시아나 남중국에서 생산됐다. 조선은 이를 중국이나 일본을 거쳐 수입했으므로 물소뿔을 안정적으로 수입하는 일은 조선 왕조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명나라는 무기 재료로 사용되는 물소뿔의 수출량을 1회 교역당 50개 정도로 항상 일정하게 제한하기도 했다. 물소뿔을 일종의 전략물자로 간주해 수출 물량을 통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왕조는 수입 물소뿔 대신 국산 쇠뿔을 사용하는 각궁을 사용하기도 했다. 국산 쇠뿔은 뿔 색깔이 희기 때문에 이를 사용해서 만든 각궁은 백각궁이라고 불렀다. 혹은 국산 쇠뿔을 썼다는 뜻에서 향각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흑각궁은 최고의 각궁의 손꼽혔지만 재료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2010년 12월에 야스쿠니신사에서 발견된 문제의 활. 사라졌던 조선의 실전용 흑각군궁일 가능성이 있어 관심을 모았다.

 

현재 국궁 활쏘기에 사용하는 각궁이나 박물관에 남아있는 각궁은 대부분 활쏘기 연습에 사용하는 일종의 습사용 각궁이다. 1929년 조선궁술연구회에서 발간한 [조선의 궁술]을 보면 이미 당시에 습사용 각궁만 전하고 전쟁에 사용하는 각궁은 실물도 없고 제작 전승도 끊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2010년 12월 일본 야스쿠니신사에서 실전용 흑각궁일 가능성이 있는 활이  처음으로 발견되었을 때 언론에서 큰 관심을 보인 것도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이다. 동아시아 삼국 중 가장 활쏘기를 잘한다는 자부심을 지녔던 나라에서 실전용 군용 흑각궁이 하나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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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a 11-02-10 11:33
   
활을 왠만하면 우리가 짱 ;;; 장궁 ㄲ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촌놈 11-02-10 11:46
   
19세기까지 활만 죽도록 쏴왔으니;;;
11-02-10 12:04
   
이런 위력적인 무기를 가지고 임진왜란 병자호란때 그렇게 털렸나...ㅋㅋ

좀 뻥을 쳐도 작작 치던지...편전이 무슨 1km? 컴파운드 보우가 1km조금 넘어가는데 뻥을 쳐도 좀 작작 치셔...ㅋ
     
스펜타 11-02-10 15:27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조선군이 털린 이유를 역사적으로 설명해 주마

조선초의 국방력을 솔직히 까고 말해서 동아시아에서 킹왕짱 정도 됬지.!!

명나라가 새내기 국가 였을 때, 왜 그렇게 조선을 견제한 이유는 조선의 북방군은 군제편성이 모두 기병일 뿐더러 여진족과는 다르게 정예강군이었기 떄문이야 !

하지만 평화가 길면 나라가 나태해지는 법 ..

건국 후 근 200년간 전쟁한번 치루지 않은 국가( 몇번 전투는 있었는거 아니까 태클 ㅈㅅ)

  국방이 무너지고 활이 무너지고!!!!!!!!!!!!!!!!!


ㅜㅜ 그나마 남아있는 군대는 아직 정예라고 부를 수 있는 조선 북방군 이었어 !!

근데 이들은 잘알다시피 조총이란 신무기아래 전멸하게 되...

(오다노부나가의 유명한 다케다신켄의 기마대를 전멸시킨 3단 조총 빠빵전술이 그대로 재현됬지)

국방이 무너지면 이런결과가 초래하는거야

만약 조선초 국방력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임진왜란은 경상도에 한정된 국지전이었을걸!!!!!!!!!!


왜냐고!!! 조선초 조선 전체 군인의 숫자는 20만도 넘었거든!!!!

대마도 한번 전투하러가는데 근 2만의 숫자가 가던 조선 초기의 국방력!!!

ㅠㅠ
     
스펜타 11-02-10 15:29
   
그리고 컴파운드 보우가 바로 복합궁이 바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어를 그대로 해석 해봐 복합궁!!
ㅌㅋㅋㅋㅋㅋㅋ
     
뻑가리스웨… 11-02-10 17:43
   
그때나 지금이나 나랏님들 끼리 쳐 싸우던건 여전햇고

훈련받은 군인보다는 일반 백성들이 나서 싸우다보니

그런적도 있지만 ....

그리고 컴파운드보우를 우리 활편전 하고 비교 하는건가요?

이양반 어디 외국 사람인강?;;;;  먼 비교 대상이 대는걸 비교 하던강 하시짐...

최강의 컴파운드가 이정돈대 우리활이 그만큼돼겟냐 식이넹  멀좀 알아보고 말씀 하세요

그냥 한개만 안다고 나머지까지 아는척 하시지 마시궁 ㅡㅡ
     
니르바나 11-04-06 22:07
   
컴파운드보우라는 게 FRP로 만든 막대를 이용하는 건데.
그막대가 움직임이 너무적어 켐을 이용해 시위 움직임을 늘리는 거다.
간단히 각궁을 못만들어서 졸라 복잡하게 만든거고 종류는 어쩌피 컴포지드보우 합성궁하고 같은거.

물체의 운동 에너지는 질량 m 과 속력 v 의 제곱
 이거 이해못하면 말을 말아

같은 힘이라도 속도가 높아질수록 효과가 더 올라가는것임

그리고 편전이 작기때문에 화살의 위력이 약해지는 공기저항이 적어짐.
사막여우 11-02-10 13:32
   
잘은 모르지만 임진왜란적에 우리나라 무기도 나름 첨단이였어요 ㅋ 우리나라가 일본에 당한 이유를 다른데서 찾는 다큐가 나왔었는데..
ㅎㅎ 11-02-10 13:33
   
"ㅗ"님의 무식에 절로 감탄이 나옴
최대 사거리와 유효 사거리 개념을 모름?
군대는 갔다 왔음? 군대에서 다 배우는 개념인데.
화살이 뒷바람 불고 특출나게 팔힘 좋은 사람이 당기면 그 정도 날아가는거 납득이 되는건데.
k-2 소총도 유효 사거리는 4-500m이지만 각도를 42-45도 정도로 쏘면 1-2km보다 더 멀리 날아감.
그리고 위력적인 무기도 일정 정도의 수량이 있어야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데, 화살이 본문에도 나와 있었지만 수량 자체가 너무 적어서 승패를 가르지 못한거임. 읽기 능력과 독해 능력 향상좀 하세요
 2차 대전때 독일군이 최고의 전차와 탄도 미사일, 제트 전투기를 가졌는데도 전쟁에서 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 하세요?
물량전에 장사 없습니다.
 앞으로 인터넷에 글 쓸때 생각이라는걸 하고 쓰세요.
스펜타 11-02-10 15:11
   
"ㅗ" 거참 모르시네    컴파운드 보우보다 탄성이 강한게 북아시아 복합궁이 올시다

영국의 롱보우가 그나마 좀 탄성이 따라가는데 단순히 그나마 뿐이오  롱보우의 그 엄청난 휴대적 불편함은

영국 궁병의 극악한 근접전을 보여주었고 백년전쟁 후반에는 프랑스군이 기사로대변되는 중장기병 전술을 버리고

경보병 전술을 채택하자 영국은 고사하게 되지 !


하지만 이 복합궁은 휴대성도 뛰어날 뿐 아니라 , 엄청난 탄성으로 무지막지한 힘을 가지오

(아마 당신은 당길수도 없을걸?  기록상 활을 댕기는 훈련만 몇주를 했다고 나오니까)

그리고 고대에서 중세까지 이 동아시아 복합궁을 상대할 유럽군은 아무데도 없었지 .


몽골군 부터 시작해서 셀주크 오스만 투르크 - 이들 모두 유목민족이면 이런 복합궁을 사용했오

기병을 타고 언덕같은 데서 활을 쏘고 치고 빠지면 이 편전이란 놈은 작아서 보이지도 않지요.

게다가
스펜타 11-02-10 15:14
   
가장 중요한 점은 이 활로 몽고군이나 투르크인은 공격의 범위와 기동성이 엄청 났다는 거지

예로 몽고군 같은 경우 하루에 백킬로도 넘게 진군한적도 있지!!!!!!!

이러한 기동성을 서양이 보유한게 언제더라 ..... 차량이 개발된 이후???
야호~! 11-02-10 16:22
   
우리나라 활은 애기살까지 더해지면 약 500M는 날아갈 것 같아요. 전에 스펀지인가? 다큐인가? 그곳에서 보통 활로 각궁으로 300M 쯤 날아간 것 같아요. 그리고 임진왜란 때 고전을한 이유는 조선은 엄청난 시간동안 전쟁도 없이 평화스럽게 살았고 결국 조선에 남아있는 군대도 점점 필요 의미도 사라지게 되었어요. 대포는 녹슬고 병사들은 군기 완전 빠졌죠. 게다가 조선은 일본이 자신들을 적수가 되기에는 하찮게 여겼죠. 공격이라고 해봤자 해적들이 대부분이였고요. 그런데 갑자기 기습적으로 조선을 침략했고 조총이라는 전에 보지도 못한 무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일본군의 무기에 어느정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백성들이 조선군으로 들어오고 이순신이 일본군의 보급을 끊어버리고 다른 장수들이 보급 끊긴 일본군을 싸우기 시작했죠.
     
뻑가리스웨… 11-02-10 17:37
   
헉! "야호" 님아  우리나라 활 그중에 애기살은 요즘 소총 최대 사거리 까지 날아 갔담니다

요즘 소총  살상력은 빼고 그저 멀리만 쏘면 총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쏴서 총알이 포물선 비행해서 최대로 날아가는 거리가 2.4킬로 정도래요

근대 우리 활이 거이 2.4Km 정도 날아갔어요

운동에너지가 좀 떨어질지 몰라도 관통력은 요즘 소총 이상 나왓구요 ....

소총으론 생나무 뚫기 힘들지만 활론 뚫려요 물속에서 총알은 얼마 못가지만 활은 숙 나가는거 처럼


500m는 너무 햇다 일본애들 지 키만한 활이 그래도 한 150 ~ 200 날아 갔다던데 ,,,  질적으로 달라요
-_-; 11-02-10 18:14
   
저기요...편전이 사거리가 길고 위력적인 건 사실이지만....어떻게 1000보를 1km로 계산을 할 수가 있죠;; 1보를 1m로 계산하신 듯...계산법이 전혀 틀리신 것 같네요. 500~600m가 맞고요. 사거리 2.4km는 현재의 소총으로도 불가능하고요..-_-; 500~600m도 대단한거에요; 눈으로 보면 까마득한 거리죠.
     
뻑가리스웨… 11-02-10 18:44
   
현재 소총을 살상력이나 명중 관통에 관개 없이 순수 최대 사거리로 쏘기 위해

총을 약간 대각선으로 쏴서 총알이 포물선으로 비행했을때 최대 닫는 거리가 2.4킬러 미터 입니다

군대 가면 기본적으로 유효 사거리 최대 사거리 머 그런거 가르쳐 줄때 주무셧나요?;;;

애깃살은 일반 화살이 아니라 통아 에 걸어서 쏘는 한뼘정도 길이에 화살이구요

이것의 최대 사거리는 요즘 소총의 최대 사거리 정도가 돼며

최대사거리에서 의 살상력은 흠 관통력은 소총 이상이지요
          
-_-; 11-02-10 19:58
   
최대사거리랑은 전혀 상관없는 소리하고 계시는 거고요, 고참한테 최대사거리 2.4km라고 말하다간 한대 맞을겁니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편전의 원리도, 상식 수준의 물리법칙도 이해 못하고 계신 듯 하네요. 관통력 부분도 잘못 이해하고 계시네요. 편전의 경우 사거리가 증가하는 건 맞지만 똑같은 힘을 가하는 반면 질량은 줄어 오히려 관통력은 약해요. 관통력이 늘어나려면 힘과 질량이 늘어 나야겠죠. 아래에도 써놨지만 편전의 원리는 같은 힘으로 화살의 무게와 부피를 줄여 더 멀리 보낸다는 겁니다.
               
무기상 11-02-17 15:54
   
편전이 중량이 작아지면서도 비행거리와 관통력이 증가한 이유는
운동에너지의 효율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화살이 날아갈때 물고기처럼 좌우로 흔들리면서 날아가는 것을 아실겁니다
시위가 활을 밀어내는 힘이 화살이 좌우로 요동치면서 운동에너지의 손실이 발생합니다
편전의 경우는 발사장면같은거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좌우흔들림 없이 날아간다는거죠
기존의 화살을 두고 봤을때 운동에너지의 손실을 극한으로 줄여 사거리와 관통력을 높인겁니다
          
-_-; 11-02-10 20:00
   
곡사로 쏴서 탄환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다는 부분은 동의합니다.
     
뻑가리스웨… 11-02-10 21:07
   
좀 알아 보시고 애기 주세요 ~~

포물선 비행으로 현대 케이2쯤 돼는 총에 최대 사거리 정도는 어디서든 구할수 있답니다
-_-; 11-02-10 18:29
   
아..그리고 소총 관통력 무섭습니다. 사람을 맞출경우 줄줄이 관통해요. 인체에 치명상을 주기가 더 효율적이기에 납탄을 쓸 뿐, 철갑탄을 쓰면 관통력은 훨씬 더 증가해요.
     
뻑가리스웨… 11-02-10 18:41
   
소총을 물에서 쏘면 저항에 걸려서 얼마 못가죠

하지만 화살이나 작살은 힘은 총알에 비해 적지만 뚫고 지나가죠

최대 사거리에 걸린 애깃살은 최대사거리에 걸린 소총탄 보다 확실히 관통력 쎔니다

질긴 생나무 같은 경우 총쏘면 나무가 운동에너지 때문에 총알 보다 큰면적이 파여 나가지만 관통은 힘들죠

하지만 화살 같은 경우는 특히 통아에 걸어 쏘는 애깃살은  그만한 운동에너지로  파열 시키진 못하지만

관통은 한답니다
     
뻑가리스웨… 11-02-10 18:59
   
한가지더 애기 하자면 지금 소총이 얼마만큼 인명을 관통 하는지는 모름니다

하지만 확실한건 파워가 쎄진만큼 관통력이 쎄질수도 있지만

파워가 쎈만큼 부딪혓을때 저항도 크기 때문에 개개의 살상력은 높아 졋을지 모르나

관통력은 오히려 떨어졋을수도 있습니다
          
-_-; 11-02-10 20:06
   
일단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하겠고, 설사 그렇다쳐도 그럼  편전은 어떻게 관통력이 높아지는지 묻고싶네요.
               
뻑가리스웨… 11-02-10 20:35
   
에혀 그냥 님이 한번 알아 보세요 ~~

파워가 쎄다고 무조건 관통력이 늘어 나는건 아니랍니다

파워가 없다고 관통력이 무조건 떨어지는것도 아니랍니다

한번 알아보세요 ~~  이건 어떤면에선  상식 수준에 기초 과학이랍니다 ~~

단순히 님글에 대한 반박이라 보시고  ㄱ뭐라 그래야 돼나 승부욕이나 그런쪽으로 생각지 마시고

한번 쯤 알아 보시고 애기주세요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겟다니 할말이 없네요
                    
무기상 11-02-17 15:29
   
없는지식에 덧붙여 말씀드리면
관통력은 물체가 발사되는 속도와 탄두의 무게,비행방식,공기와의 마찰,표적의 상태 등등
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총은 화약으로 화살은 활로 발사가 됩니다 여기서 발사속도 및 운동에너지는
총이 월등하게 높습니다
그러나 탄두의 무개와 벨런스를 따지면 화살이 유리하지요
그리고 비행방식 탄두는 명중율을 높이기 위해 회전하면서 비행 합니다
화살의 경우는 보잘것 없는 깃이 지만 그것으로 직신성을 유지하며 비행 합니다
탄두가 물에서 급격히 운동에너지를 잃어버리는 이유가 비행방식과 탄두의무게 때문 입니다
공기중에서 발사가 됫다고 해도 화살의 운동에너지 손실율보다 탄두가 에너지
손실율이 크다는 것 이지요
예를 들자면 탱크 105미리 강선포 에서 120미리 활강포로 바뀐걸 들고 싶네요
문론 120미리가 장약이 더 많이 들어 있지만 날아가는 탄두의 모양을 보면
105미리는 총알모양 120미리는 화살모양 입니다
두서 없는 설명이지만 조금이나마 도움 되셨으면 합니다 ㅎㅎ;;
               
스펜타 11-02-11 08:52
   
굳이 이야기 해주자면.....

화살은 방탄복을 관통합니다.

왜냐하면 화살같은 경우 총알과 같은 막대한 운동에너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죠???


총알은 그 막대한운동에너지 때문에 총알탄자 자체가 뭉개져 버리고 넓게 퍼진 총탄은
방탄복의 강화섬유질에의한 저항으로 막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운동에너지를 가진 화살은 화살촉이 뭉게지지 않고  작은점 하나로
모든 운동에너지를 투사하기에 방탄복을 관통하는 것이죠.
                    
무기상 11-02-17 15:35
   
화살촉이 칼날처럼 되어 있어서 칼로 자르는형상으로 뚫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화살촉이 예리하지 않더라도 총알보다 중량이 더 나가서 라고 생각해요
총알이 뚫지 못하는이류는 회전력에 브레이크를 거는 수십장의 케블라 섬유때문이고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요?
-_-; 11-02-10 18:53
   
또 임진왜란 때 조선의 참패는 조총때문이 아니라 군사편제 때문이라 보는 게 맞을겁니다. 조총 그렇게 뛰어난 신무기는 아니었어요. 재장전 느리고, 사거리 짧고(각궁보다 짧죠.), 명중률 낮고(결국 조준사격이 아니라 활처럼 화망을 구성하는 식이었죠.), 기후의 영향 많이 받는 등 단점과 제약이 많았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조총보다는 각궁이 조선에게는 더 유용한 무기였죠. 오히려 화포 제작기술은 조선이 더 좋았어요. 권율의 진주성 전투와 이순신의 해전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죠. 따라서 조선의 연이은 패배는 무기때문이 아니라 군사편제인 제승방략이 가지는 결점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겁니다.
-_-; 11-02-10 19:19
   
애기살의 사거리가 2.4km라고 주장하시는 분...편전의 원리를 이해하고 계시는 분인지 모르겠네요. 간단히 얘기하면, 편전은 똑같은 힘으로 화살의 무게와 부피를 줄여 더 멀리 보낸다는 겁니다. 화살의 무게와 부피를 줄인것 뿐인데 사거리가 2.4km나 늘어난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뻑가리스웨… 11-02-10 20:38
   
단순히 무게와 부피를 줄엿기 때문에 더 멀리 간다라 ㅋㅋ

무게를 줄엿기 때문에 오히려 더 멀리 안갈수도 있는겁니다 부피도 마찬가지구요

이건 단순히 무게를 줄이니 마니에 문제가 아니랍니다 ㅋㅋㅋ 것도 한번 알아보세요 ~~

제보기엔 활이나 총에 대한 상식 부족 같으세요

그냥 이러구 나가면 걍 감정쌈정도 밖에 안돼요 

최소한의 원리와 기초 과학에 대해  조금 알아보세요 님 나름 대로 ~!
     
무기상 11-02-17 16:48
   
일반활과 편전에 가해지는 힘은 같아요
그러나 편전의 경우 외형을 살펴 봤을때 기존보다 짧지요 무게가 줄엇지요?
근대 비행능력과 관통력은 더 증가 했을까요?
답은 운동에너지 손실율이 기존 보다 월등히 좋다는 겁니다
더 설명하자면 살이 짧아진 만큼 살의 요동이 줄어 에너지 손실을 줄인것
그리고 덧살에 의한 1차 요동을 줄여 또한번 에너지손실 방지하였고
기존 화살촉과 편전의 촉을 살펴보면 기존은 날을 갈아 세웠고
편전은 사각뿔 모양으로 주조가 아닌 단조로 만들어 졋다는거죠 쉽게 말해 일반 탄과
누군가가 말한 철갑탄에 비교하면 되겠군요
마지막으로 기존 살과 편전의 크기와 무게 비교시 편전이 길이는절반 이하로 줄엇습니다만
무게는 기존살의 절반보다 무겁다는 것 이지요
물리학,제료학,열역학 기타등등의 역학 이란게 이래서 사람 대가리 쥐어띁게 만든는 겁니다 ㅎㅎ
님을 비하 하거나 헐듵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좀더 폭넓게 생각해 보시란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니르바나 11-04-06 21:39
   
헛소리하는분들 잇는데
장궁하고 각궁은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조총과 소총을 비교하는것과 같은겁니다.
장궁은 우리에게는 초기삼국시대에나 쓰던 아주 구닥다리에 지나지 않죠.

한때 엄청난 관심을 일으켰던 알프스 얼음미라 외치의 유물에서도 거의 똑같은 형테의 장궁 반도막이 나왓습니다.
그얼음미라가 5300년전 미라입니다. 초기청동기시절이죠 절대 중세기술이 아님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동남아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활도 영국장궁에 못지 않습니다.
절대 장궁이 뛰어난 활이 아니라 영국이 전문화해서 쓴것일뿐이죠 유럽에 조선식 병과체제를 운영한것입니다.

그외에도 영국장궁이 좋다는 주목도 우리가 사용한 여러 나무질에 비해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특히 아시아에 널리 분포한 나무는 단단하고 탄력잇고 목질이 우수해 다른 마무에 비할게 못됩니다.
예전에 어쩌다 장궁하는 취미를 가진 교포가 쓴글을 봣는데
자신이 하는 곳에서 대나무 장궁이 인기인데 훨씬 미싼 주목장궁보다 힘도 덜들고 훨씬 강하고 정확도도 높다고합니다.
자기도 바꾸고 명중률이 30%정도 높아졌다는 말을 써두엇더군요
가끔가다 검색하면 대나무 장궁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대 각궁은 대나무가 사용되는대 가장 약한용도입니다.
지금 사용하는 각궁은 취미용이지 전투용이 아닙니다 일명 습사용이라고 하는데.
약하고 편하게 만들어진 활입니다.
재료가 가장 강한게 산뽕나무이고 회목이나 느릅나무등등이 쓰이고 가장 약한게 대나무입니다.
그런데 지금 남은 각궁 100% 대나무만 쓰지요.
또 평궁이라고 활의 단면이 직사각형인데 반해 과거의 군궁은 D자형으로 장궁같은 단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접착부를 강하게하고 떨어지지말라고 쇠심줄이나 명주실을 감아 강화하는게 되어잇죠.
이런 형테는 우리와 같은 구조의 활을 사용하는 몽고나 터키 헝가리등의 활에 남아잇습니다.
우리는 이런 군궁이 지금 하나도 남아 잇지 않습니다.
그나마잇는 군용활이라고는 부러진 정량궁 하나가 유물로 남아 잇을 뿐이지요.
얼마전 야스쿠니신사 전시실에 조선의 군궁으로 보이는 유물이 발견되서 관심이 집중되고잇습니다.

화살위력도 말이 많은데 운동에너지 법칙상 무거운 화살일수록 파괴력이 높을수밖에 없죠.
반면 무겁고 화살을 빠르게 날리기위해서는 당연히 활도 강해야합니다.
그래서 군궁은 될수잇는한 강하게 쏘는 사람의 힘을 최대치까지 사용하게 만드는게 정석입니다.
그래서 쏘는사람에따라 그 힘들 골라쓰는데
보통 고를때 당겨보는고 고르지만 구분은 몸무게를 따져서 합니다.
쏘는 사수의 몸무게의 1/3을 기준을 중궁이라고하고 강하면 강궁 약하면 연궁으로 구분합니다.
조선시대때는 9단계까지 구분을 햇다고 합니다.
당연히 군사들은 강궁 위주로 연마를 햇고 그 연마정도에따라 점점 강궁으로 가는게 상식입니다.
그래서 기록에보면 세조가 반정을하고 시위대를 모집하는데 활의 강도가 무려 120근이였다고합니다.
그 120근의 활을 당길수잇는 사람들을 골라 만강대(보병)라고하는 시위대를 구성햇습니다.
그런 시위대를 100명을 모집하기 위해서 한산인(백수)까지도 활만 잘쏘면 다 맞앗다는기록이잇습니다.
그사람중에 기병출신은 별도의 기병으로 구분도햇습니다.
활은 독특한 자세로 쏘기때문에 단순히 힘이싸다고 강궁을 처음부터 당길수잇는게 아닙니다-그런다고
한손은 밀고 한손은 당겨야하죠 거기에 안정된 자세에 세심한 조준까지 엄청난 난도기술과 힘이 필요합니다.
30kg짜리라고만 해고 한손은 30kg당기고 한손은 민는 상테에서 조준과 안정을 찾아야 맞칠수잇습니다.
그게 궁수육성에 가장 난제죠. 그래서 영국이나 조선이나 활쏘기는 나라 전체에 수련을 시켯습니다.
보통 정량궁을 당기려면 최소 6~10년은 날마다 지속적으로 성심껏해야 가능햇다고합니다.
영국의 장궁수들도 10~ 15년을 수련하는걸 당연하게 생각을 햇습니다.
영국의 군용 사격술도 조준사격은 근거리 30이하를 기준으로하고
 70미터 정도의 거리의 로밍샷이라는 부대 고공사격을 위주로 훈련햇습니다.

화살무게도 조선초기에 5푼이던게 조선후기가면 기본유엽전이 1량짜리로 늘고
별도로 아량전(4량)과 육량전(6량)을 사용햇습니다 육량궁은 225g정도합니다.
그걸 쏘기위한 정량궁(육량궁)이 대궁이라고 별도로 잇었고요.
그 극강궁인 정량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육성을햇습니다.
정량궁의 용도가 적 진격부대 앞쪽의 방패병을를 퇴치하기위한 중화기입니다.
방패와 갑옷을 입고 진격하는 장갑병이 접근전이 약한 궁병게는 가장큰 위협 일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장갑을 파괴하기위해서 아량전이나 육량전을 발사했습니다.

임진왜란때는 각궁이 약해서 진게 아니라.
당시 조선 정치와 군사상테가 말이 아니엿습니다.
수백년간 전면전이 없엇고 조선의 실정상 육군은 만주쪽을 바라보는 평안 함경도등 이북지역에 집중되고 잇엇죠.
왜의 도방징후에 일부 대신들이 대비를 하려고 했지만 그에 대한 발반이 훨씬강햇습니다.
왕인 선조 자체도 막장이라 일본사신이와서 도발을 하는데 이해도 못하고 허풍이라고 대접해서 보내버릴 정도엿죠.
그런데 그밑에서 누구 재대로 대비를 햇겟습니까.
그래도 일부 유성룔같은 사람들이 이순신등을 내려보내 대비를 시킨게 고작입니다.
전라좌수영이던 이순신 군영은 사실상 임진왜란 당시에 대비가 완벽하게 되어잇던 실정인데
그외에는 전혀 대비가 되어잇지 않앗습니다.
특히 경상 좌우 두수영은 전혀 대비도 안되어 잇고 왜군이 처들어오자 그냥 도망가버립니다.
그래도 처벌도 안되어서 원균은 선조의 이순신 불신덕에 삼수군 통제사까지 되는 엽기짓까지하죠
목달아나는게 정상인 사람인데.
원래 원균진영은 12000명진영으로 이순신의 5000명보다 배이상이 큰 군영입니다 배도 두배나 많아야하고..
옥포해전때 원균 자신배 한척(대선 판옥선)과 예하군영의 배가 대선3척 소선5척 그정도가 참여한게 다입니다.
전라우수영 이억기도 12000군영이지만 전공이라고는 쥐뿔도없죠
명량해전때도 한척으로 참가하지만 벌리 도망가서 구경만합니다.
이억기는 군세가 좀 되엇던거 같지만  칠천량해전에는 다 말아먹고 배한척남아 도망간거 살아남앗을겁니다
조선자체에 실전 경험을 가진 장수와 군사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고 그남아도 이북지역에 잇엇죠.
왜군들의 규모도 엄청낫습니다 부산진에 1만2천, 동래읍성에 2만~3만이 처들어갓으니 상대가 안되죠.
왜군 전력이 총 15만이엿습니다 일본에 준비한 예비병이 그정도 더잇엇고.
당시 조선군 정규병이 4만이하엿음. 15만이 한꺼번에 쓸고 올라가니 조선으로는 감당이 안되는게 당연핫것이죠.
그래서 준비태세가 중요한것이고 정보가 중요한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임진당시 일본군이 강한게 아니라 조선이 전혀 준비를 안하고 잇던게 화근이엿습니다.
그러고도 안망하고 결국 일본왜군들 전멸하다시피 쫏겨 나갓습니다 진 전쟁이아니라 이긴전쟁이죠.
이긴 이유가 이순신장군 업적에 대부분이라는게 참 한심하기도 위대하기도 한거고
장비나 편재나 조선군이 월등했습니다.
갑옷 대포등은 일본군에 거의 없다시피햇고 기병도 조선군이나 명군이 월등햇죠.
드라마나 영화에나오는 조선군과 왜군의 갑옷 정 반대입니다
조선군은 직접싸우는 보병의경우 갑옷이기본입니다 반면 왜군은 장교급 사무라이나 되야 갑옷 만져봅니다.
정에라는 철포병마져 군복이나 군모도없이 평상복차림이엿음.
이순신떄문에 보급이 안되 얼어죽고 굶어죽은 왜군이 엄청낫습니다 그래서 약탈도 많앗고
머 명군은 쪽수가 많기는 햇지만 전공은 없습니다 싸우는 전투마다 패햇고 사상자도 멍청낫죠.
결국 포기하고 군량미만 축내 백성들 굶어죽게하고 도망갑니다.
심리적 이점은 잇엇을지 몰라도 명군이 실질적으로 한건 없다고합니다.
전투가 한창인 해에 100번이 넘는 전투가 벌어졋는데 단 8전해서 8패후 도주..
당시 명나라도 막장 망해가는 나라엿음 임진 끝나고 바로 후금에 망해버렷죠.
덕분에 우리는 개같은 인조덕분에 청나라에 재침당해서 삼전도 굴욕.
qndrnrqn 12-04-30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