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직전까지의 우리 군.
우리나라 정부 수립 후 한국 전쟁 직전까지 이승만 정권이 육성한 한국군의 규모는 약 10만 명입니다.
무장은 일본군이 버리고 간 무기와 미국이 공여한 무기들로 장비했으며 야포도 현저히 적었고, 전차는 전무했으며 기갑차량도 전술습득용 정도였습니다.
항공기도 연락기 수준이었습니다.
해군의 경우 국민의 성금에 정부 지원금을 얻어 2차 대전 때 미국이 써던 구형을 겨우 사서 하와이에서 포를 달고 탄을 사서 장비해 한국전재 직전에 도입된 백두산함이 대표 전투함이었죠.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우리 군의 전력이 겨우 저 정도였습니다. 무려 전쟁 전에 말이죠.
2. 한국 전쟁 시기 우리군
한국 전쟁이 고착상태가 됩니다.
이는 미군이 인식하는 한반도 전쟁의 양상이 다른 참전국들과 달랐기 때문이죠.
- 이승만 정부는 이번 전쟁을 통일 전쟁으로 이어가지 않으면 전쟁은 다시 일어 날 수 밖에 없다고 보아 반드시 통일 전쟁으로 가야 한다고 보았고,
- 북한군과 중공군 역시 무리하게 시작한 전쟁이니 반드시 남한을 정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소한 시간을 벌어 재정비하여 다시 칠 때까지 여유를 갖기 위해 휴전 협정에 참여는 하되 시간만 끄는 전술을 펼쳤죠.
- 미군은 한반도 완충 지대를 인정하고 전쟁 전 상황으로 돌리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에 반대하여 만주에 핵을 쓰자던 맥아더 장군은 워싱턴과의 마찰로 결국 군복을 벗게 됩니다.
-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였던 아이젠아워는 전투복 차림으로 한반도 전선을 둘러 보며 반드시 미군을 고국으로 귀국시키겠다고 다짐했고,
- 휴전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장비와 물자는 두되 미군은 철수하는 방향을 추진합니다.
- 이에 한국군은 징집 연령을 높여 40만에 달하는 군인을 모으게 되죠.
- 가정을 꾸리고 잘 살던 30대 아저씨들도 군에 징집되었던 것입니다. 몇 해 전 6.25 특집(7~8년전)으로 휴전 당일 전사한 3명의 구국영령을 따라 가던 방송이 있었는데 그 분 들 중 한 명이 30대가 넘어 징집됐던 분이라고 하다군요.
- 전쟁 전 10만도 겨우 꾸리던 한국군이 3년간의 전쟁으로 엄청난 경제적 피해와 인명 손실 속에서 40만에 달하는 군대를 보유할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입니다.
- 즉, 당시 한국군은 사실상 미군이 장비시키고 입히고 먹이고 했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3. 한국 전쟁 후 60년대 한국군.
- 우리 경제는 세계 최하권, 전쟁은 휴전 상태로 어느 한쪽이 군사적으로 약해지면 금방이라도 전쟁이 재개될 상황이니 미국이 절대적으로 한국군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 주한미국의 대부분은 휴전선 인근에 배치되어 있었고, 최전방은 휴전선을 경계로 한국군이 숫자적으로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어, 미군은 총성 한 발만 나도 자동 개입되고 전방에서 한국군이 잠시만 막으면 미군이 곧바로 반격하게 되고 부산을 통해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 등의 지원군이 배치되는 구조였습니다.
- 당시의 군대를 이른바 '쌍팔년도' 군대라고 부르는데 못 먹고 못 입고, 춥고 배고프던 군대의 대명사였죠.
4. 1970년대 한국군.
- 박정희 대통령은 군의 구조적 개혁을 위해 힘을 씁니다. 베트남 파병을 통해(국민의 생각이 아닌 독단적 결정이었지만) 한국군 무기를 현대화하고 실질적인 기갑 전력을 확충하며 기갑전의 개념을 수립하였습니다.
- 더불어 미군의 최신 장비를 도입하여 일본보다 앞서 F-4 전투기를 장비하게 됩니다.
- 1970년대 후반에는 자주국방계획이 수립되고 실천되어 '번개' 작전 등을 통해 소총, 수류탄, 박격포, 무반동총 등이 국산화됩니다.
- 사실상 1970년대 중반까지도 대부분의 전쟁 물자는 미군이 지원한 것이었고, 우리 국방 예산으로 우리군을 입히고 먹이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이었습니다.
5. 1980년대 한국군
- 자주 국방계획의 단계적 추진으로, 장갑차, 전차, 해상 전투함 등이 국산화에 성공하고 점진적으로 항공기 면허 생산 등을 통해 점진적인 국방 구조 개혁을 추진하게 됩니다.
- 1979년부터 국방예산이 정식으로 한국군 독자로 편성되어 추진되었고, 부족한 예산 속에 자주 국방과 북한과의 전력 공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했기에 인건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 그러면서 체계적인 군조직 구성이 가능해지며 사실상 이 때부터의 한국군이 제대로 한국의 군대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 물론 독재 정권의 영향으로 군이 오용되기도 했지만 한국군이 제 모습을 찾아가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1980년대 후반부터는 미군의 여러 임무들이 한국군에 조금씩 이관되기 시작한 시기기도 하였습니다.
6. 1990년대의 한국군
- 군현대화의 정점에 육군은 아파치 헬기 도입이, 해군은 이지스 구축함 도입, 공군은 F-15전투기 도입이었는데 사상상 90년대에 이들 작업이 다 추진되었습니다.
- 그러나 IMF 때문에 다소 보류된 부분이 컸고, 그 결과 2000년대 초반에 이들 사업이 완료되게 됩니다.
- 1990년대 군대는 경제적인 이유로 갑자기 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군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인원이 늘어 나는 시기였습니다.
- 군현대화가 정점에 이르면서 그리고 IMF 등의 외부 이유 등도 있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 복지보다는 국방예산 중 인건비가 반이 넘는다며 국방비의 효율적 배분이 시대의 요구 사항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군구조 개혁이 크게 요구되었고, 국방개혁 2020이 언론 지상에 나타나게 됩니다.
- 반미여론이 높아지고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여론이 생기자 미군 역시 주한미군의 규모를 줄이는 한편 미군 업무를 본격으로 한국군이 이관하던 시기기도 했습니다.
- 그 결과 국방 예산이 급격히 증가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우리 경제 규모로는 한국군의 규모를 감당할 수 없었던 시기입니다.
7. 2000년대의 한국군.
- 남녀 평등을 이유로 1990년대 후반(1997년 해군 사관학교를 시작으로)부터 여성들에 대한 군의 장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며 여군 진출이 본격화 되면서 군인 복지가 화두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게다가 각군의 무기 도입 사업이 완성기에 다다르자(해병대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군인복지 계선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군인 피복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일어 납니다.
- 군인 피복 등이 제향군인회와 일부 독점 기업들의 담합에 의해 부실과 비리가 만연함이 드러나고 이에 대한 국민 여론이 높아져 70년대 이전에 지어진 막사 등이 대거 개량되고 전투복 및 피복류 개혁도 크게 시도됩니다.
- 그러면서 군인 봉급도 지적 사항이 되었는데요, 2000년대 초반 군인 봉급이 2만 5천원 수준이었다는데 경악하여 군인 복지가 급격하게 군인 봉급 인상의 방향으로 바뀌게 됩니다.
8. 2010년대의 한국군.
- 여러 국제 평화 유지 활동을 통해 한국군의 인식이 높아지고 지원받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로 바뀐 유일한 국가로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된 한국군은 그에 맞는 군인 예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 그럼에도 국방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편이며,
- 육군의 군 조직적 특징에 따라 병력이 많고, 복잡한 체계 구조를 가져 이를 구조개혁해 효율적인 군 유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졌습니다. '똥별'을 없애야 한다는 논리가 그것입니다.
- 또한 출산율 저하로 군인 자원 감소의 시대를 맞아 적은 군인으로 북한의 1000만에 달하는 군에 대응해야 하며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와도 맞설 수 있는 군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한국군의 현실입니다.
- 과거 김영삼 정부 때 김영삼 대통령의 출사 유세 중에 국방비 아껴서 교육과 복지에 쓰자는 말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국방이 늘려서 우리의 안보도 챙기고 국격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정설인 시대가 됐습니다.
- 그러면서 군 구조 개혁을 통해 더욱 더 장비 소요가 늘어나고 해병대 등 전력 확충에도 엄청난 예산 들이 줄지어 편성 되어야 하기 때문에 국방비의 증액은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 그러나 국민 경제도 어려운 판국에 국방비를 대책 없이 늘리면 국민 여론이 나빠지기 때문에 이도 원하는대로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죠.
- 그래서 제일 만만한 것이 군인 봉급입니다. 특히나 징집군이기 때문에 굳이 돈을 많이 줄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있으니까요.
- 그러나 그런 말이 통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고, 어떻게든 군인 봉급을 조금씩이라도 올려야 한다는 인식에는 동의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 사실 이 때문에 많은 군 사업들이 민영화 되었고, 면세였던 것들, 보급이었던 것들이 사제화(군내 민영 업체)되고 있습니다.
- 어찌 보면 군 봉급이 오른 것 같은데 어찌 보면 공짜였던 것들이 유료화 혹은 민간화되면서 더 비싼 돈을 치뤄야 구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실질적인 군 봉급 증가는 아직도 제자리 걸음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9. 결론과 첨언
- 요약하면 우리군은 한국 전쟁으로 인해 정부 수립 이래로 우리 경제 규모를 훨씬 넘는 군대를 유지해야 하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고, 미군의 대량 원조에 의지해 군을 꾸려야만 했습니다.
- 경제 개발 이후에는 이런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는 못 했지만 시대가 달라져 군인 복지를 높여하 한다는 여론으로 사병봉급이 꾸준히 증가 중이지만 결국 이도 현재 우리군과 경제적 역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 최근 통일을 민주적으로 하자는 논의가 높아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군이 필요 없는 것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 군대의 목적 상 미군도 마찬가지이지만 군인 복지보다 제대 군인 예우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즉, 군은 헌신과 봉사로 민주 시민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시간이고, 군을 제대하고 나면 나라를 위해 다른 시민들을 위해 헌신한 군인들에 대한 국가적, 시민적 예우를 더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 물론 미군의 경우 군내 복지도 뛰어난 편이지만 어떤 경우의 훈련에는 전투라는 긴박하고 예상 불가능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매우 비인간적이고 매우 위계적인 훈련도 실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우리의 군인 복지가 군인을 '편안하게' 하자는 방향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 우려가 큽니다.
- 다시 말해, 군인 복지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군의 목적과 군 본질에 출실한 군인 복지와 예우가 이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