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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09 14:53
[공군] T-50비하인드스토리
 글쓴이 : 넷우익증오
조회 : 1,753  

T-50 개발사업의 전신 KTX-2사업의 시작

‘골든 이글(Golden Eagle)’이라 불리는 T-50은 디지털 비행제어, 최신 항전장비를 갖춘 최적의 첨단 초음속 훈련기로, 개발 당시 국내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당시만 해도 공군의 고등훈련은 T-38과 같은 노후 기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고등훈련기의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89년 4월 국방과학연구소(이하 국과연)는 고등훈련기 사업을 공식적으로 건의하기에 이른다. 당시 우리나라는 KF-16 전투기 사업인 KFP(Korean Fighter Program)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전투기 120대를 구매 및 합작 생산해 공군력을 증강시키고 우리 항공산업을 육성해보자는 취지였지만 논란도 적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1989년 말 공군은 20여 대의 고등훈련기를 영국 BAe의 호크(Hawk)기로 구매키로 하고 그 이후의 소요는 연구개발을 통해 항공기를 충당한다는 절충교역 방안을 국방부에 요청함으로써 T-50사업의 전신인 ‘KTX-2’사업이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목표는 그동안 축적한 항공기술력을 바탕으로 복좌형 고등훈련기를 개발하고 나아가 초음속 경공격기, 경전투기 등의 파생형 항공기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각종 무기를 장착하면 경공격기로 탄력적인 운용이 가능하며, 레이더와 공격능력을 강화해 F-16처럼 본격적인 공격기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업의 주 계약업체인 KAI(당시 삼성항공)는 체계종합과 최종조립을 맡게 됐으며, 록히드마틴은 항공전자와 비행제어 분야의 기술 지원을 담당했다. 1992년 7월, 국과연과 제너럴 다이내믹스(이후 록히드마틴에 합병)와 맺은 KTX-2 기술지원 협정서는 KFP사업 절충교역의 일환으로서 고등훈련기 설계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T-50 개요

형식 : 단발 터보팬 초음속 훈련기/ 경공격기 | 승무원 : 2명 | 전폭 : 9.45m | 전장 : 13.14m | 전고 : 4.94m

기체중량 : 6,441kg | 추력 1만7,700파운드(8t) | 최대속도 : 마하 1.5 | 실용상승한도 : 14.8km | 항속거리 : 2,592km

체계개발 이전의 많은 난관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

1992년 12월, KTX-2의 탐색개발 계획이 정식으로 국방부의 승인을 얻음으로써 드디어 설계작업에 착수하게 됐다. 탐색개발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었다. 먼저, 첫 해인 1993년에는 개념설계 작업을 수행했고, 1994부터 1995년까지 기본설계가 진행됐다. 개념설계란, 항공기의 성능 요구에 따라 기본적인 항공기의 형태를 설정하는 과정이고, 기본설계는 설정된 기본 형태를 더 구체화하기 위해 다양한 해석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설계 당시까지 사업을 추진하던 주체들은 초음속이 필요하다고 본 반면, 수요자인 공군 내부에서는 훈련기가 아음속(음속 보다 약간 느린 속도)이면 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놓아 혼선을 빚기도 했다. 다행히 1994년 정책 분석보고서에 의해 아음속 보다 초음속 훈련기가 훈련효과가 더 높다는 사실이 증명돼 KTX-2는 초음속 훈련기이자 경공격기로서의 개발이 확정됐다.

그러나 개발팀은 또 하나의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바로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은 사업주체인 군과 KAI에게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1996년 항공산업 관련 정부 부처들은 KTX-2사업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펼쳤다. 항공산업의 육성을 바라는 통상산업부는 사업 추진에 적극적인 반면, 예산을 담당하는 부처에서는 사업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해 8월, 정부는 사업 추진 타당성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을 중심으로 재검토를 의뢰했고 이듬해인 1997년 7월 새롭게 체계개발 방침을 결정했다. 존폐의 기로에 놓였던 KTX-2사업은 9월 26일 총 사업비 1조6,996억 원(개발비 1조6,864억 원, 정부 사업관리비 132억 원)과 개발분담방안(정부 70%, KAI 17%, 록히드마틴 13%)을 포함한 고등훈련기 체계개발 계획이 최종 확정되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

KAI는 이외에도 1997년 불어 닥친 IMF 국가부도사태, 록히드마틴의 기술 이전에 반드시 필요한 미 국무부의 수출승인 문제를 슬기롭게 대처해 가며 체계개발에 돌입하게 된다.

탁월한 역량으로 기장 짧고 효율적인 상세설계 도출

이렇듯 많은 어려움을 헤치고 착수한 체계개발은 1999년 7월 12일부터 16일까지 기본설계회의(PDR)을 거친 뒤 8월 31일 외형형상(OML)을 확정했다. 다음 단계인 상세설계는 도면이 완성되어야 하는 시점까지 불과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필요도면 수는 거의 10,000장에 육박했다. 게다가 턱없이 부족한 설계인력에 록히드마틴 측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항공기 개발 역사상 가장 짧고 가장 효율적인 상세설계를 내놓게 되는 기적을 일구어냈다. 이러한 결과는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담당 구성원들의 헌신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은 CATIA(컴퓨터를 활용한 설계프로그램)를 이용해 동시공학을 적용한 시스템의 강점 때문이었다. 대개 항공기 설계 후에는 모형을 제작해서 설계의 적합성을 검토하고 다시 설계를 반복한 다음, 시제품을 제작해 이를 보완해나가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T-50은 100% CATIA를 사용해 한 치의 오차 없이 설계됐으며, ‘동시공학’이 완벽하게 적용된 세계 최초의 고등훈련기다.

동시공학이란, 제품과 관련된 제조기법 및 각종 지원 부문을 포함한 여러 과정을 동시에 병행하여 설계하기 위한 시스템 관점의 접근방법으로, 실제 부품 제작과 조립상의 문제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비용과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CATIA를 활용한 우리회사의 상세설계 능력은 당시 해외에서도 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성공적인 초도비행에서 초음속 돌파까지

2000년 8월 완료된 상세설계를 바탕으로 최종조립을 마친 후, 2001년 10월 31일 T-50 시제 1호기가 국내외의 수많은 관심 속에 출고행사를 성대히 치렀다. 이날 출고식에는 대통령을 포함, 국내외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축하와 격려 속에 이루어져 그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사업을 수행해온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 한편, 현재의 T-50이라는 명칭은 2000년 2월 1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응모한 별칭 공모 결과 바뀌게 된 것이다. T-50의 T는 Trainer를 뜻하며 50은 공군 창군 50주년을 뜻한다.

T-50은 출고 이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과연 등의 전문기관과 함께 다양한 시험과 성능검증 작업을 수행했다. 성능검증은 크게 항공기의 내구성을 판단하는 구조 분야의 시험과 항공기의 전체 계통 성능을 평가하는 것이다. 지상에서의 다양한 시험과 완벽한 수정 보완을 마친 뒤 비로소 비행시험에 돌입했다. 2002년 8월 20일, T-50은 우리 항공산업사의 큰 획을 그리며 개발진들의 환호와 벅찬 감격 속에 초도비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세계적으로도 자체 개발한 고유 모델의 초음속 항공기를 보유한 국가는 12개국에 불과해, 이번 비행 성공은 우리나라가 항공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섰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T-50의 시험비행 개시 후 총 6개월 만인 2003년 2월 18일에는 4만 피트(약 12km) 상공에서 음속을 가볍게 돌파했다. 당시 초음속 비행은 초도비행 이후 2대의 T-50 시제기를 통해 총 60여 회의 시험비행으로 각종 항공전자장비, 계통, 기체구조, 비행작동성, 안정성 및 조종성 등 광범위한 검증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로써 1991년 11월 국방부 획득심의회가 초음속 고등훈련기 개발계획을 승인한지 11년 3개월 만에 T-50은 초음속 비행 성공이라는 역사를 새로 쓰게 됐다.

동급 훈련기 중 최고의 성능으로 무장한 T-50

2003년부터 대량 생산을 시작한 T-50은 2005년 하반기부터 공군에 납품됐다. 전 세계 최고 성능을 지닌 전투기의 조종 훈련을 위해 설계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의 기체는 공기역학적 성능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최고 속도는 마하 1.5, 최대 이륙중량은 2만9,700파운드, 자체중량은 14,285파운드, 엔진은 17,700파운드의 강력한 추력을 가지며, 설계하중 g수는 -3g에서 +8g 사이이다. 또한 T-50은 최고 4만8,000피트 고도에서 운용할 수 있으며, 기체구조수명은 8,000시간 이상이라고 한다. T-50의 크기와 무게는 F-16 전투기의 80%와 70% 정도로, F-16 수준의 기동성능과 F-4 수준의 무장성능을 갖추고 있다. T-50 고등훈련기는 고도의 기동 성능을 위한 디지털 비행제어 시스템(Fly-by-Wire)과 안정성이 향상된 첨단 디지털 엔진제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기체 구조와 착륙장치에는 일반 전투기보다 높은 구조하중 기준을 적용해 동급 훈련기 중 최고의 성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개 T-50 한 대가 만들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2개월이다. T-50은 F-16에 비해 엔진출력은 60%, 주익면적은 92%, 부피는 89%, 중량은 77%이며, 상대적으로 엔진출력이 작은 것은 훈련기로서 경제성을 중시하기 때문이고, 중량이 작은 것은 FA-50 개발을 위해 이미 T-50에 여유예비공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무 컴퓨터에도 80%의 예비성능을 갖추고 있으며, 메모리에서 70%, 네트워크 대여폭에서 70%, 발전용량에서 50%의 여유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파생형 전투기 개발해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의 자부심

T-50은 무장능력이 없는 순수한 훈련기이다. 그에 반해 TA-50은 전술입문 훈련기로서 제한된 공대공·공대지 무장운용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경공격기라는 점이 다르다. 2011년 6월, 공군은 TA-50 22대를 순차적으로 도입하기로 한다. 그동안 공군은 KF-16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27주가 걸렸는데, TA-50의 도입으로 8주로 줄어들게 된다. 또 TA-50에서 파생한 FA-50은 TA-50을 본격적인 경공격기로 더욱 개량ㆍ발전시킨 항공기로, 2012년까지 시험평가를 마친 뒤 2013년부터 실전에 배치하여 노후한 F-5 등을 대체하고 있으며 또한  T-50은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에서 운용하는 T-50B로도 다시 태어나 우리나라와 세계의 하늘에서 유려한 비행솜씨를 뽐내고 있다.

T-50은 한국 공군훈련기 외에도 수출용 훈련기로도 거듭나게 된다. 2011년 5월, KAI는 인도네시아에 T-50 고등훈련기 16대를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바로 인도네시아 수출형 모델인 T-50i로, 2013년 7월 형식인증을 받아 항공기의 안전성을 입증 받고 2013년 9월부터 순차적으로 납품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스웨덴에 이어 세계 6번째 초음속 항공기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2013년 12월에는 경공격기 FA-50의 이라크 수출형 모델인 T-50IQ 24대를 포함하여 20억 달러 이상의 수출을 성사시켜 국내 항공수출 사상 최대 성과라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또 2014년 3월에는 FA-50 기반으로 개발한 필리핀 수출기 FA-50PH를 정부 간 계약방식으로 수출 체결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순차적으로 12대를 납품했으며, 2015년 9월(1차 4대)과 2017년 7월(2차 8대)에는 태국 공군 요구도에 맞춘 T-50TH를 납품하기로 계약해 순차적인 납품이 진행되고 있다.

T-50은 개발자들의 위대한 도전정신이 빚어낸 눈부신 역사임이 분명하다.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땀과 눈물, 희생정신으로 만들어낸 T-50을 발판으로 KAI가 세계를 향해 더욱 힘차게 비상하는 미래를 꿈꿔 본다.


1997 한국형 고등훈련기(KTX-2) 1단계 체계개발 사업 계약

1999 기본형상 확정

2000 T-50 상세설계 완료

2001 시제1호기 최종조립 착수 및 시제 1호기 출고기념식

2002 T-50 초도비행 성공

2003 T-50 초음속 돌파비행 성공

2005 T-50 출고기념식 및 양산 1,2호기 출하

2008 T-50 초도양산 최종호기 납품기념식

2009 TA-50 잔여무장시험 종료 및 전투사용가 판정 획득

2010 T-50 전력화 완료 기념식 및 블랙이글 첫 비행

2011 TA-50 도입 공군 발표

2012 TA-50 최종호기 납품 완료

2016 T-50 비행기 무사고 5,000회 비행시험 달성

+ Hidden Story + Episode 1. 국제적으로 유명했던 우리회사 해외구매팀의 활약 T-50 개발 시기에는 늘 예산에 대한 부담이 컸다. 배정된 예산도 부족했고 비용상의 불확실성이 언제 발생할지 몰랐다. 때문에 당시 우리회사 해외구매팀은 특별한 협상력으로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T-50의 착륙장치를 구매할 당시, F-16의 착륙장치 제조사인 미국의 메나스코(Menasco)사가 유력한 후보였으나, 담당자들은 자료를 뒤져 전 세계 모든 업체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구조건이 어느 정도 결정된 것이 1999년 8월이었고 착륙장치 장착시점이 2001년 4월이었으니, 이 짧은 기간을 만족시킬 업체는 없어 보였다. 메나스코 측은 서서히 우리를 압박해 왔고 다른 대안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구매1그룹에서 프랑스의 다국적기업 메씨에르 다우티(Messier Dowty)사라는 기업을 찾아냈다. 메나스코 측에서 부랴부랴 가격 절충을 제안했지만, 이미 1천만 달러 이상 차이가 나 메씨에르 다우티와 계약을 맺게 됐다. 메씨에르 다우티는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 미국에 분산되어 있어 해외구매팀은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 개발자들은 철야근무를 당연시하는 우리 구성원들 때문에 2년 넘게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사직도 속출했다. 납기도 촉박하였지만 우리 구성원의 열의에 메씨에르 다우티 경영진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양사의 기술팀은 만약 납기를 맞추지 못하면 회사에 심어놓은 나무에 같이 목을 메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전력을 다해 T-50착륙장치를 개발하였다(사진). ​ ​ Episode 2. 해외 항공사 기술진을 놀라게 한 KAI의 설계능력 CATIA를 활용한 우리회사 구성원들의 T-50의 설계능력은 당시 록히드마틴의 기술지원 요원과 경영진들도 높이 평가할 정도로 우수했다. 마침 T-50의 설계를 끝내자 우리회사의 설계수준을 해외 항공사 관계자들에게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의 닷소(Dassault)사와 미국의 보잉(Boeing)사 기술진이 자사의 설계업무를 우리회사에 맡길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설계능력 평가를 위해 우리회사를 방문했다. 이날 기술진들은 T-50을 설계하면서 이룬 우리의 성과에 대해 크게 감명을 받았다. 닷소의 기술진은 “CATIA를 만들어 낸 닷소보다 KAI가 CATIA를 더 잘 쓰는 것 같다”고 평가했으며, 닷소에 돌아가 이러한 성과를 보여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료를 요청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보잉의 기술진은 “KAI의 설계·해석능력이 전반적으로 항공기 독자설계가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특히 설계 인프라는 오히려 보잉을 능가하는 것 같다”며 “여러 항공사를 돌아다니며 많은 평가를 해왔지만, 이렇게 훌륭한 시스템이 갖춰진 항공사를 보기는 처음”이라고 감탄했다. 이후 그들의 이러한 평가는 ‘KAI의 설계능력 Level 4 인정’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로 돌아왔다. Level 4는 보잉사에서 개발하는 프로그램의 설계에 참여해 독자적인 설계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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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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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구화 19-04-09 20:28
   
나에게는 넘 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