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밀리터리 게시판
 
작성일 : 19-02-07 14:03
[전략] 우금치에서 동학군을 토벌한 것은 조선군대였음!
 글쓴이 : 탄돌이2
조회 : 3,375  

조선관군.png

그 무렵, 쪽본군은 짱개군을 맞상대하니라고 주력이 다 평양으로 갔고,
우금치에서는 조선군 중화기 부대가 주력이되어 동학군을 토벌했으며, 쪽본군은 그 후방지원만 했다고 함.
(조선관군 2500명, 쪽본군 200명)

내가 왜 이걸 굳이 따지냐면,

유튜브에 보면, 우금치에서 동학군이 조총과 농기구로 싸울 때, 쪽본군이 기관총으로 학살했다고 하면서,
은근 조선의 후진성을 부각시키는 년놈들이 몇몇 있기에 따지는 것임.

그때 조선군이나 쪽본군 모두 기관총은 수입제였고, 
그 즈음 조선군도 중화기를 다루기 시작했다고 함.

즉, 우금치에서 동학군을 기관총으로 제압한 군대는 조선군대였음.
이 정도였으니 조선군이 해산되고 나라가 병탄되자, 조선군 중에 의혈 넘치는 사람들은 열받아서 독립군으로 뛰어듦.

동학군 조선군 모두 우리 조상들이고 양자를 비난하고픈 맘은 전혀 없음!
둘 다 우리 역사임.

162CFE1D4CD92D0A01.jpg

1902년에 대한제국이 도입한 영국제 맥심.기관총(빅커스.사)

출처:https://blog.naver.com/kkumi17cs1013/221362944935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납땜질 19-02-07 14:24
   
결국 그 조선 군대는 써보지도 못하고
나라 망함..자국민만 때려잡는데 특화된 군대
     
탄돌이2 19-02-07 14:29
   
위 글의 취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토착왜구들의 선전선동질을 꼬집는 겁니다.

그리고, 체재가 자리잡은 나라에서 반란을 토벌하는 게 무슨 문제인 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조선 민비세력들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 모든 권력혁명은 내전을 일으킵니다.
동학혁명도 그 연장선이구요.... 프랑스/러시아 혁명 다 내전으로 번졌구요.
다만, 우리는 그 동학내전이 정부의 승리가 아닌,  왜구의 승리로 끝난 게 비극이였죠.
"죽 쒀서 개한테 준" 꼴이였읍니다.
구름위하늘 19-02-07 14:34
   
재미있는 팩트 체크 내용 이네요.
잘못 알려진 상식은 아직도 많이 있는 듯...
새콤한농약 19-02-07 15:03
   
추측인데... 조선군대였던 관군에게 개틀링 기관단총이 많이 있었을리가요... 야포는 모르겠네요...
결과는 관군과 왜군 연합군(?? 시.발)의 화력과 지형을 무시한 지휘부의 전술로 인해 패한거겠죠...
이래서 군대에서 지휘관의 중요성이...
     
탄돌이2 19-02-07 15:05
   
누가 패해요?
우금치를 끝으로 조선군대는 동학군 토벌을 성공했는데요!
          
새콤한농약 19-02-07 15:10
   
댓글을 잘 읽어보세요... 관군과 왜군 연합에 동학군이 패한 전투라는 문맥인데...
               
탄돌이2 19-02-07 15:13
   
님은 동학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세요..... 동학군의 구성도

동학군의 형편으로 전략/전술을 짤 수 있는 군대가 아니였어요.
따라서 동학군 지휘부가 이렇고 저렇고 따지는 거 자체가 무의미 함.
(이순신 장군이 동학군을 지휘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임)
태니하트 19-02-07 15:43
   
서양이 아프리카군을 학살하면서 식민전쟁을 벌일 때

조선군은 일본인의 지휘를 받아 자국 농민을 학살한 역사적 슬픔...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농민군과 힘을 합쳐 일본군과 싸웠다면...

그래도 강력한 열강 일본을 막을 순 없었겠지만, 우리 역사가 좀 더 떴떴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탄돌이2 19-02-07 15:51
   
그래서 "죽 쒀서 개한테 줬다"고 하는 겁니다. ㅜ.ㅜ
rozenia 19-02-07 17:21
   
당시 조선군은 독일제 일제 미국제 영국제 등 수백에서 수천정씩 다른 소총과 야포들이 도입되던 시기였고 그중 개트링이 아닌 맥심기관총도 3문 도입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기억에 의존한 거라 수량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20문 이상 보유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우금치 전투 당시, 동학군은 근대적인 부대편제도 참모지휘도 훈련도, 장비도 없이 말그대로 농민군수준이었고 약 1500여명의 일본군과 3천여명의 조선관군이 8천여명의 첫번째 동학군 부대를 시작으로 이동하면서 사실상 세력이 토벌된겁니다

여기서 맥심기관총의 사용출처가 조선관군 쪽은 아닐것 같네요. 조선조정에서 맥심을 구매하고 쓰임새를 이해하지 못해 오랜기간 방치했고 훈련대장을 비롯한 1900년대 군대해체시점에서는 일본군의 간섭때문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또한 우금치전투의 시점상, 청일전쟁 당시 청군과 싸우는 목적의 일본군은 분명 수백정의 기관총을 구매보유하고 있었지만 급하게 보유한 상태라, 어떤식으로 활용해야하는지와 얼마만큼 실제로 화력이 좋은지에 대해 불확실하다고 판단 기관총없이 출병하게 됐다고 당시 일본대본영 기록에 나와있으나

동학군을 상대하고 한양을 사실상 점거하는 선발대 역할을 맡은 오오시마 혼성여단 류의 부대들은 북진하지 않는 남부토벌전을 수행하는 부대로서 우리나라 다큐에서도 일본군의 기관총의 화력이 압도적이었다라고 서술된 바가 있습니다 .
전쟁망치 19-02-07 18:18
   
그때 조선 조정은 꼭두 각시나 다름 없는데 뭐. 무슨 힘이 있었겠나요.
운요호 이후로 일본에게 3개의 항구를 열어 주고 청나라, 러시아 에게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다가
결국은 일본의 집요한 공작으로 정부 자체가 넘어 갈 위기 였는데.

저때 일반인들은 어디다가 하소연 할때가 없었을 겁니다.
1910년 부터 공식적으로 넘어 갔으니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이전에 사전 작업중에 중요 인사나 행정인사는 일본에 많은 협력을 하고 있었겠죠.

친일파의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함
     
납땜질 19-02-07 19:24
   
1894년 당시 조선정부가 먼저 파병 요청함..
일본군이 들어와서 내정간섭 빌미 준게 조선정부인데 뭘
          
탄돌이2 19-02-07 19:26
   
원세계가 민비세력을 압박해서 파병요청하게 했다는 설이 있음.

정황상 일리 있는 설이라고 봄... 황제가 되고 싶었던 원세계
도나201 19-02-07 20:13
   
이 전술에 대해서 기본도 모르는 놈이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뭐 얼척없는 이글은 뭐냐.....................

조직적이지 못하고 그저 공성전수준의 전술만 생각한 농민군에게 .

일본군은 기관포대를 설치하고  그전방에 공성방어전술을 구사한 관군...

그것도 이미 기세가 밀려 후퇴한 농민군이 마지막 발악식으로 돌진한 전투에서 .
관군이 더많았음. 그래서 관군이 학살한것임............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어느 일본놈이 한일합방은 합법이다 .. 주장하는 것이랑 똑같은 언사네.
라거 19-02-07 23:51
   
동학군의 패착은 전술화기가 약한데도 불구하고 인원만 믿고 너무 중세시대 전투를 치뤘다는거죠. 주변에서 야간기습하자했는데 전봉준은 그 말을 듣지 않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