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당시 주요 전장이 프랑스 땅위였고
파리까지 위협당한 프랑스인은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자신의 영토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고 항복한 독일은 그러한 두려움 대신
적이 자신들의 영토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무능한 수뇌부들이 항복했다는
사상(?)의 차이 때문이 아닌지 싶네요. 프로이센 부터 계속이어온 독일의 군국주의 병영국가 성향은 덤이고요 ㅋㅋ
공군은 전투기 숫자만 좀 더 많았지 우세였는지는 의문이고.. 육군력 또한 마지노선 방어에 묶여버린 비율, 아직 편제대로 제대로 정비가 안 된 상비사단, 독일에 비해 늦는 예비군 동원 등등.. 이러고 주력이 한 번 날아가버리니 답이 없어지게 되었죠... 물론 군 상층부의 병크가 가장 큰 원인이겠습니다ㅋ
단순히 지휘부에게만 문제가 있었다고 단정지어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당시의 프랑스/프랑스군의 입장과 왜 프랑스 정부와 지휘관들이 그러한 결정을 내렸었는지에 대한 배경적인 부분도 크게 감안해야 합니다.
프랑스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수많은 인명손실을 경험하였기에, 자신들이 1선에 나서서 출혈적인 공세를 펼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컸습니다. 선제적 예방 공격이라는 건 말이 쉽지 실제로 이걸 실행에 옮기기 위해선 아주 강력한 지도부가 존재하거나 이러한 위기의식이 전체 국민에게 팽배해져있어야 했는데. 프랑스의 군부가 '이거 위험한데?' 하고 정부절차없이 무작정 소집령을 내리기도 어려웠습니다. 폴란드 침공 이후 뒤늦게나마 소집령을 내리고 모으고 있었다지만, 독일군의 낫질작전을 비롯한 미친듯한 공세전략에 대해 예상하기란 어려웠습니다.
애초에 마지노 선이 만들어진 것부터 보면 프랑스가 어떠한 생각으로 저러한 걸 만들었는지 감이 오시잖습니까?
그리고 세계사적으로 어느 전쟁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본래 방어적으로 전략을 수립하는 쪽보다 공격적으로 나아가는 쪽이 유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토크맨터리 전쟁사에서 나온 멘트이지만 방어하는 측은 '이정도면 충분하겠지?'하기 마련이고, 공격하는 측은 방어하는 측의 전략이나 전술을 미리 분석하고서 대응하기 쉽다는 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군부가 전차에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지만, 전차의 활용면에서 양 쪽의 차이가 컸던 건 이러한 입장도 반영되기때문인 걸 감안하셔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해서 프랑스 군부의 과실이나 잘못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당했으면 재빠르게 후속 조치와 대처라도 내릴 수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였다는 건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도 않아요.
프랑스의 사상자는 군민합쳐 59.5만명인데, 이는 끝까지 싸운 영국(49.5만명)보다 사상자가 더 많은 겁니다. 특히 대전기 내내 독일의 공습과 v-1/2를 주로 두들겨 맞은 영국에 비해 민간인 사상자가 거의 30만명이 더 많습니다. 군인 사상자는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끝까지 항전한 영국보다 민간인 사상자가 절대적으로 더 많다는 건 독일군정하에 놓인 프랑스 국내상황이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전쟁수행에 있어 프랑스의 산업시설이 전방위적으로 이용되었고, 유럽최고의 곡창지대인 프랑스 농업생산물이 철저하게 수탈되어 프랑스 농촌의 농민들이 굶주렸을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닐까요? 게다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에 마르세유 상륙까지 국토전역이 짧게나마 전화에 전부 노출된 바 있고요.
프랑스가 전후 영국정도의 위상에 다다르는데 성공한 시기가 70년대 초반부터라는 걸 생각해보면 거의 30년이 뒤쳐진 셈입니다. 원래 프랑스는 영국 바로 다음의 열강국지위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숨은 승자도 아니고, 피해를 줄인 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