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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2-04 10:06
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 전술과 80년의 한국군 전술이 같은 이유
 글쓴이 : 야비군
조회 : 4,152  

아래 '던컨스타'님이 올리신 사진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면....

사진은 여기--->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military&wr_id=33005&sca=&sfl=&stx=&sst=&sod=&spt=0&page=1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패한 원인은 군사 전술 능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연합군(좀더 정확하게 '미군')보다 군수 보급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즉 독일군의 전술 능력은 연합군보다 월등히 우수했으나 미군의 끊임없는 군수 보급 앞에서는 독일군의 뛰어난 전술 능력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당시 독일군의 전술 능력은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그 당시 독일군의 전술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냐 하면, 독일이 항복한 후 미군은 독일군의 군사교범을 바탕으로 미군의 군사교범을 새로 만들었을 정도였습니다. 한국 전쟁 후에 한국군은 그 독일군 교범을 바탕으로 만든 미군 교범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한국군 교범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위의 사진과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저 당시에는 [1940년대 독일군 교범 = 1960년대 미군 교범 = 1970년대 한국군 교범]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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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타 12-02-04 10:44
   
독일군의 전술능력이  2차대전에 큰도움이 되었던건 사실이지만

초기 연합군의 패전은  프랑스군의 군 기강 해이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초기 프랑스-영국 연합군은 이용가능한 전력이 독일보다 2배많고 항공기대수 또한 2배많고

기갑전력은 1.5배  야포와 포병세력 또한 1.5배 정도였지요.


독일군의 전격전이 좋은 전술이긴 하지만 멍청한 연합군이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점도 있었죠.

사실 독일이 2차대전 초기 좋은기갑전력이 있었던게 아닙니다.  기갑사단 3개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차량화되어 있지않고 기병이 주된 수송수단이었죠  독일군의 본격적인 변화는 1940년 이후 라고 생각합니다.

즉 전쟁 초기 체코-폴란드-프랑스 진격은  독일군이 강력했던게 아니라 요행히 정말 극적인 운으로 성공했던것이지요- 심지어 독일군 수뇌부 또한 초기의 빛나는 성과를 믿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알프스 산지를 통해 강한 요새를 구축한 체코- 기갑전력은 형편없었지만 60만이 넘는 예비군을 보유하던 폴란드
체코의 경우 강력한 요새가 있던 슈테텐을 스스로 독일에게 내주었고

폴란드는 60만이 넘는 예비군을 초기에 배치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였고

프랑스 또한 막강한 100만이 넘는 예비군을 마지노 요새를 믿고 배치하지 않았죠.
     
스펜타 12-02-04 11:04
   
아이러니컬 하게도 독일이 구축한 완벽한 전격전술을 완성한 국가는 미국이었죠.

2차대전 당시 모든 사단이 차량화 기갑화 되어있고 소련과 독일의 포병을 씹어먹는 화력덕후 미군
schutz 12-02-04 11:43
   
독일이 패망한 가장 큰 원인은 소련과 전쟁을 했기때문입니다..

독일군의 수급력이 딸린것도 거의 모든 기갑군과 보급품들이 동부전선으로만 흘러들어가기 때문이지요.

체코는 세계대전의 압박과 영-프의 묵인속에 포기한것이며(후에 체코 전체가 독일의 보호국으로 들어갔고)

폴란드의 예비군은 독일군의 침공이 개시되지마자 총동원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당장 우리나라도 전쟁이 터지기 전에 총동원령을 내리진 않을겁니다.
설령 폴란드가 총동원령을 내려 60만 예비군을 미리 동원했다 하더라도 변변한 기갑, 공군 전력도 없는 폴란드군이 독일군을 상대로 얼마나 버텼을지도 의문입니다.

프랑스의 예비군도 마찬가지이며, 당시 마지노선과 상대적 우위의 영-프 연합군 기갑전력이 있었기에 프랑스 참모부가 자만에 빠졌었다고 할수있지요.(공군 전력을 계산치 못한게 한 몫했죠.)
     
잭키콩나물 12-02-04 18:32
   
우리나라는 무장공비때도 예비군 동원됐는데요.
전면전이라면 당연 동원될 것으로 보입니다.
Har00 12-02-04 14:05
   
프랑스의 경우는 전략의 실패입니다.
즉, 1차대전이 끝나고 참호전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항공기와 전차를 중심으로 새로운 종심전투 사상이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영국에서 제시 되었는데, 그것을 받아 들이고 전술-전략화 시킨 것은 독일과 구소련이었습니다.

프랑스가 이런 전략을 세운 이유는, 1차 대전의 당사자인 프랑스가 비록 승전국이 되었지만, 실상은 독일 못지 않은 많은 경제적인 손실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후 배상금을 받아내야 할 독일이 몰락했기 때문에 배상금을 받아 낼 수 없었고, 나중에 히틀러의 집권 이후엔 배상금을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다시 경제 공황이 닥치자 필연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나온 것이 1차 대전과 같은 거점 방어를 선택한 것입니다.

즉, 프랑스의 전략 사상은 마지노선을 중심으로 독일을 방어하되, 따로 후방에 기동군을 두어 마지노선이 뚫리는 부분에 집중 투입하여 방어한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프랑스만의 삽질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독일 역시 '지크프리드선'이라고 해서 프랑스의 마지노 선과 비슷한 방어 선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가 대패하게 된 것은 전격전에 대응할 수 있는 종심 사상이 전무했던 것이 큽니다.

두번째는 전술에 따른 차이인데, 1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빠르게 임무목적형으로 세부 전술을 가다듬었습니다. 즉, 전술 목적에 홥치하면 상황에 따른 판단은 하급 지휘관에게 일임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프랑스의 지휘체계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예상외의 독일군의 침입에 따른 혼란에 빠르게 대응할 수 없었고, 대응한 이후에는 이미 상당수의 병력이 포위 괴멸된 이후였습니다.

세번째는 집중과 분열입니다.
항공과 기갑수는 프랑스가 독일에 비해 월등하고 능력도 우수했지만, 독일은 한정된 자원으로 기갑부대를 편성하는 등 집중시켰습니다.
때문에 한 방향으로 뚫는 힘은 프랑스가 가진 방어 능력에 비해 월등하게 강했습니다.

이후 독소전에서는 독일의 이처럼 강하게 뚫는 힘을 상쇄시키기 소련은 위해 종심방어를 채택하게 되고, 그 대표적인 전투가 쿠르츠크 전투가 되겠습니다만, 프랑스 전에서는 아직 그 사상이 명확하게 확립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전열이 무너지자 예비대를 채 투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선이 뚫리게 되고, 이후 포위 괴멸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독소전 초반 소련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번째, 독일군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 했습니다.
당시 돌격의 핵심은 전차가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을 독일 뿐 아니라 소련, 영국, 프랑스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해서 당시에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독자적으로 전차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시기적으로 뒤처졌을 뿐 아니라, 개발된 전차들 역시 영 프 소의 눈으로 보면 상당히 떨어졌고, 수도 적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체코를 점령하면서 상당수의 전차를 노획했다는 것을 간과합니다.
당시 체코는 LT vz 35 와 TNH P-S 전차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독일은 이를 각각 PzKpfw35, PzKpfw38로 개칭후 독일의 부족했던 전차 수를 보충하게 됩니다.
Har00 12-02-04 14:30
   
독소전에 관해서라면,
애초부터 히틀러의 목적은 소련에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치의 목적 때문인데, 유태인과 공산주의에 대해 극단적인 반대, 아니 혐오를 하는 것이 바로 나치이기 때문입니다.
히틀러 어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모든 것은 러시아에의 대항책이다. 그것을 모를 정도로 서방국가들이 어리석고, 앞을 내다보는 눈이 멀었다면, 나는 먼저 러시아와 손잡고 서방을 친 그 다음 전력을 다해서 소련을 공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히틀러는 소련이 언제고 그들의 뒤를 치리라는 것 역시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당면한 문제로서는 러시아가 우리에게 위험한 존재는 아니다. 지금 여러가지 내부 사정에 의해서 약체화되어 있다. 더구나 우리는 러시아와 협정까지 맺고 있다. 그러나 협정이란 실익이 있는 동안만 지켜지는 것이다. 러시아도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동안만 그것을 지킬 것이다. 비스마르크도 그와 같이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경솔해서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내린 것이 아니다. 영국과 소련사이에 협정의 준비가 진행중이라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이 치고 나가느냐. 밀려서 부서지는 것을 기다리느냐 그 어느 한 쪽이다."
애초부터 히틀러는 소련과 전쟁을 상정하고 있었으며, 스탈린이 결국 동부전선에서 밀고 내려오리라고 예측했습니다.
따라서 히틀러의 입장은 소련이 약체화 되어 있을 때, 주 전장을 자국이 아닌 소련 내에서 갖겠다는 명확한 의지입니다.
그런 측면에서보면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 역시 이해가 됩니다.

끝으로 히틀러의 소련에 대한 시각입니다.
"유럽과 미국의 사고방식이 바꾸어지지 않는 한 볼셰비키즘은 서서히 아시아 전반에 뻗칠 것이다. 세계관의 문제임으로 30년이냐 40년이냐 하는 햇수는 중요하지 않다."
맘마밈아 12-02-04 17:49
   
독일 입장에선 소련의 유전을 장악하지 못하면 영미 세력과 대등하게 싸우는게 불가능해지죠..
크로아썅 12-02-05 22:18
   
잘 읽었습니다 ㄹ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