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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29 18:06
[잡담] IMF 군번의 비애.
 글쓴이 : 해충감별신
조회 : 10,677  

97년 말 부터 99년 까지의 군번이 IMF 군번이죠.

이 군번은 역대 어느 군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경험했죠.

그것은 입대영장이 나왔을 때 우리가 흔히 연상하던 그런 모습이 아닌

기쁨(?)을 경험했죠.

나라가 온통 난리인 판국이라 군대라도 들어가서 지출이라도 줄이려는 가정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 입영대기자들이 너무 많아서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대학생의 경우 휴학을 하면 특별한 일 없으면 영장이 몇 달 안에 나왔었습니다.

저 또한 군대를 가려고 입대신청을 했지만(97년 초가을) 병무청에서는

빨리 군대를 가려면 휴학을 하는 것이 그나마 빨리 영장이 나온다는 조언에 휴학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IMF가 터지면서 입영신청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저도 그 다음해가 되도록 영장이 나올 생각을 안했었죠.


아무튼.

그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각 훈련소마다 적정 인원을 넘어서는 인원으로 인해 수용인원보다 많은 인원이 기거하고,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보급품 보다는 대충 맞춰서 있는대로 보급을 받아서 자대를 갔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당시 병사들의 월급이 일괄적으로 2-30%(정확한 수치 기억 안남) 삭감되었고,

보너스도 절반인가로 줄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이등병 월급이 9,600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보급품도 줄어서 각 부대마다 자잘한 도둑들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오죽했으면 하사관들도 자신들이 병생활할 때나 있었던 속옷도둑이 다 있냐고 할 정도 였죠.

양말, 속옷은 쉴새 없이 없어지면서 돌고도는 품목이었고,

가끔 전투화나 전투복들도 많이 훔쳐 갔었습니다.


먹는 것도 정말 열악했었는데

군대에서 처음 눈물 흘렸던 때가 이등병으로 자대 배치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짜장면이 점심메뉴로 나왔을 때 입니다.

저희 소대가 마지막 이었고 그 중에서도 우리 분대가 마지막이었는데

이미 짜장소스는 진작에 떨어져서 흔적도 안남았고,

반찬이었던 짠지는 양념만 조금 남은 거 배식반이 자기네 비벼 먹는다고 면 넣고 비비고 있었죠.

별 수 없이 면만 받아다가 양념통에 조금 남은 말라버린 고추장 흔적에 비벼 먹다가,

그것도 떨어져서 간장 뿌려서 먹고 그것도 떨어져서 소금 뿌려 먹다가 포기했죠.

짬시키는데 눈물이 핑 돌더군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입니다.

그 외에 각종 반찬들도 유통기한 같은 거 없이 무조건 떨어질 때 까지 나왔습니다.

오이소백이 같은 것은 하도 발효되어서 오이가 섬유질 흔적만 남고,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오이소백이 국물에 담겨 나왔죠.

저야 푹 익힌 오이소백이를 좋아해서 맛있게 먹긴 했지만 신김치 같은 것을 싫어하는 병사들은 고생했죠.

항상 적정 인원보다 보급이 적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나마 연대 취사반에 파견나가 있는 취사병 중 왕고가 저희 중대 출신이라

다른 곳 보다 조금 더 받았음에도 그 모양이었습니다.

우유도 일주일에 한번인가 밖에 안나왔죠.


저희는 수색중대라 일부 보직들이 생명수당이 나왔었는데

중대행보관이 생명수당만 따로 모아서 라면을 사다가 소대원들에게 주기적으로 나눠 줬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부대와는 다르게 라면을 일주일에 1개 때로는 2개를 받아서 먹을 수 있었는데

다른 부대는 한달에 1개 꼴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80년대 군번도 군대에서 굶주리지 않았다는데 밀레니엄을 눈앞에 뒀었던 저희는

IMF라는 희대의 사건을 맞아서 말 그대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군생활을 했었네요 ㅠ.ㅠ


밑에 군대 배식이야기 나왔을 때 80년대 군번도 안그랬다는 소리에

울컥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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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템플러 14-09-29 18:51
   
부대마다 차이가 좀 있었나 보군요...
저도 98년 12월 31일 제대했는데, 먹는거를 그렇게 압박당하진 않았던것 같습니다.
맛은 없어도 먹을만큼은 먹었던.......
다만 imf 라고 기름값 아끼라고, 차량,보일러 좀 타이트하게 관리했던 기억은 있습니다.
     
해충감별신 14-09-29 19:48
   
부..부럽네요..저희는 먹을 것으로 엄청 고생을 해서..

보일러는 생각나네요.

한겨울에 소대당 5분이던가 10분이던가 샤워용 급수해주는데

98년 겨울에는 짬밥이 안되서 늦게 샤워하는 바람에 비누칠 하는 와중에 물 끊겨서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하느라 엄청 고생했었죠 ㅎㅎ
          
나그네21 14-09-30 14:25
   
전방은 그래도 먹을거리는 잘나왔죠. 다른게 다 안나와서 글치. 부식, 3종, 4종 죄다 열악하게 나왔죠. 주식만 빼고.
스포티지 14-09-29 19:19
   
98년 6월 군번인데...먹을거는 이상 없었는데..99년 겨울때는 제주 감귤을 1인당 1박스 이상 처리 해야 했었는데..
물 안먹고 귤 먹어서 손이 노랬고.. 이거는 전군 공통 사항일 건데...
그리고 레이더 부대 같은곳은 부식이 남아 돌았고, 군 생활 내내 건빵은 튀겨 먹고 먹을게 부족하지는 않았음..
단지 취사병의 실력이 에러라서... 짜장면은 쉤이었음...내 생전 그렇게 맛없는 짜장은 본적이 없다는...
단 하나 오징어 젓갈은 군 생활 내내 부족 했음.. 부대 최 고참이 되어도 오징어 젓갈은 도저히 3조각 이상 먹어 본 적이 없음...
     
해충감별신 14-09-29 19:46
   
귤사건은 99년이 아니라 00년 초 였습니다.

왜 기억하냐면 제가 귤과 그 친구들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마침 그때 갓 병장 달아서

박스로 나온 귤을 안먹어도 되었었거든요.

그 당시 중대에서도 얘들 군기잡는다고 할 때 전처럼 줄빳다나 집합같은 것은 없었죠.

그 대신 점호시간에 귤 한박스 가져다 놓고 먹이기를 고참들이 시전했었죠 ㅡㅡ;;

암튼...

당시 처음에 귤풍년으로 국방부 장관이 1인당 귤 한박스씩 사다가 주고,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당시 제주도지사였던 우근민이가

군장병 사기 진작을 위해 또 1인당 귤 한박스씩 보냈었죠 ㅠ.ㅠ

그래서 정확히 기억 합니다.

당시 혹한기 훈련 앞두고 귤을 받는 바람에 단 몇 일 만에 귤 수십박스를 소대에서 다 처리하느라

얘들다 피부가 누렇게 떴었죠.
NightEast 14-09-29 19:40
   
97 5월군번인데.. 진짜 imf 터지고 보너스달 없어지고 월급 반띵되서 이등병때 월급이 6천원이였음;;
부대에 px도 없어서 밖에서 사먹어하는데 음료수 몇개 사면 한달 월급이 날라감
이게 대체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대접인지 정말 어처구니;;
샌드페이퍼 14-09-29 20:35
   
★ 고생들 많이 하셨네요..

저도 imf 98군번인데 원래는 97년도나 늦어도 98초에는 갔어야 했는데

너무 밀리다보니 걍 탱자탱자 하다가 98년 9월에 갔었습니다.

특전사로 차출되는 바람에 특전병으로 끌려가게되었는데

매일 체력단련 2시간중 특공무술, 태권도 1시간 구보 1시간씩 구르는게 짜증나서 그렇지

특전사라 먹는거 만큼은 잘줬던 걸로 기억합니다.

크림빵도 3일에 한번씩 나왔죠. ;;

사격같은거 하면 이긴팀한테 몰아주곤 했는데

아무튼 육체적인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부식같은건 잘주더라구요.

일반 보병 나오신분들은 IMF 때 고생 많이 했겠다 싶네요.

저희는 특전병도 정기 강하를 하기 때문에

생명수당 한달에 4만 몇원씩 나왔습니다.

기본급이랑 합치니 5만원 좀 넘더군요. ;;;

아마 왠만한 보병부대에서는 꿈꾸기 힘든 금액일 겁니다.

쓸거 좀 쓰고 그돈 모아서 (적금) 제대하고 얼마간 더 모으니 오십 몇만원 정도 되더군요.

싹 털어서 등록금 갖다 바쳤지만....-_-
     
밥주세요 14-09-29 20:49
   
저는97년도 특전병으로 갔어요 imf 터지니까. 우유갯수가 줄어들었죠. 아마 님 갔을 때는 줄어든 상태여서 잘 몰랐을거에요.
소천 14-09-29 20:39
   
imf 군번이 월급이 더 많았네요?
02군번이 이등병 3천원이었는데
     
해충감별신 14-09-29 21:00
   
어느 나라 군대 다녀오셨나요? 05년도에도 이등병 월급이 2.5만원이 넘었는데...
          
소천 14-09-29 21:21
   
03년도부터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월급 현실화 추진했거든요.
원래 제 이등병때 월급 3천원 병장이 만얼마였었고
제가 제대할때 월급올라서 병장이 3만원대 월급이었습니다.
          
아구양 14-09-29 21:41
   
ㅎㅎ 지금월급 많이오른거구요 저때는그정도밖에 못받았음요 그나마 노통때부터 많이오른거임
               
세상참 14-09-29 23:49
   
이건 무슨~ 제가 92년 군번인데 이등병때 7천몇백원 받았습니다.
그 위로 계급별로 8천얼마, 9천얼마, 병장이 만 몇백원 받았죠.
설마 IMF때 월급을 50%도 넘게 월급을 깍아버렸단 말입니까?
진짜로 월급을 깍아버린거면 정말 황당한 일인데 진짠지 궁금하네요.
                    
소천 14-09-30 00:44
   
02년때 이등병 월급=담배보급(한보루 반)이었습니다.
담배 한보루 반 보급신청을 하면 월급이 없었으니
한갑이 250원 한보루 반이면 15갑이니 3750원쯤이었겠네요.
                         
세상참 14-09-30 01:05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 검색을 좀 해봤는데 이등병 월급이 97~99년 9600원 2000년이 9900원으로 나오는데요. 병장월급이 97~99년에 13300원 2000년에 13700원으로 2000년에 소폭인상 후 2001년부터 죽죽 오른걸로 나오네요.
정부 인덱스 자료에 나오는 내용이니 실제로 그렇게 받으셨으면 자대에서 해먹은게 아닐까 싶네요.
                    
mr스미스 14-09-30 00:59
   
자료 찾아보니까 세상참님이 제대로 기억하고 계시네요
                    
세상참 14-09-30 02:06
   
년도를 본문글과 소천님의 댓글과 헛갈려서 IMF운운 했네요.
그 밑의 제 댓글도 같이 년도를 헛갈려서 쓴 댓글임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추가로 02년도에는 계급별로 16500원, 17900원, 19800원, 21900원이라고 정부 인덱스 자료에 나오네요.
각 년도별 사병월급은 아래 미스터스미스님의 댓글 링크를 이용하시면 1950년도부터 지금까지의 액수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소천 14-09-30 02:34
   
자대에서 해먹었나보네요.
찾아보니 병장때 월급은 3만원이상 제대로 나왔는데
     
mr스미스 14-09-30 01:01
   
소천님 다른나라 군대 다녀오신듯;;
http://www.index.go.kr/potal/stts/idxMain/selectPoSttsIdxSearch.do?idx_cd=1700&clas_div=&idx_sys_cd=816&idx_clas_cd=1
2002년도에 이등병 월급 16500원이었습니다..
깡통의전설 14-09-29 21:27
   
95 군번입니다. 거기다 공대 최강일때 대학갔구요.(이름 있는 대학 공대는 왠만한 의대보다 높았죠.)
군대 원래 그렇습니다. 저도 사이즈 안맞는 전투모에 짝짝이 바지 받아서 요대 없으면 바지가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보급품이 자신의싸이즈 따라 나오는게 아니라서요. 걍 대충 싸이즈 분배해서 배분했죠. 좀 큰놈은 7호 좀 몇벌 많이 큰 놈은 6호 몇벌 이런식으로...
IMF라서 특별히 그런건 아닌것 같습니다.
그때도 입소대에 미어터지듯 있었구요. 전 운이좋아 4일만인가 훈련소로 들어갔는데 일주일 넘게 입소대에 대기한 병력도 있었어요.
뭐 라면은 원없이 먹었네요. 사서라도 먹었으니....
병장때 월급이 13000쯤이 었나... 특수지 근무수당 받고 보너스 받으면 4만원 가까이 됐던것 같습니다.
전역하고 알바 좀 하려니 IMF 터졌고... 취업하려니 IMF로 공대 나부랭이로 전락한 시점이었죠.
사견입니다만 그때가 문과대랑 공대가 가장 차이 많이 벌어졌지 않나 싶네요.
그 똑똑한 친구들 다 자기 적성 못살리고 연봉많이 준다면 거기로 분야 상관 없이 뿔뿔히 흩어졌었죠...
그 인력만 제대로 키핑 했음 이공계 문제니 뭐니 많이 줄었을겁니다.
다 지난일이고... 역사의 한부분이죠. 요즘 공대 출신들 보면 좀 많이 한심하긴 합니다..
개나 소나 공대 출신이니....
드라이브1 14-09-29 22:37
   
그당시 인원이 너무 많아서 일부는 집에서 출퇴근했지요
페닐 14-09-30 00:13
   
회사에서 그시절 군생활 한 애들 ...30대 말 쯤 되는 애들...얘기 들어보니. 월급도 줄었던것 같고
들은 얘기로는 반찬도 1식 4찬에서 3찬으로 줄었고 초과 배식에서 정량 배식으로 변했다던데....
직접 격진 못했지만 여러 모로 안좋아 진것 같음.

웃기지도 않는게 벼룩의 간을 내먹지....사병월급 깍다니
군대가 최정 임금 조차 보장하지 않는 초법적인 존재인가?...그렇다면 민주주의 국가 군대가 아니라 군국주의 국가나 군사 국가로 봐야 겠지...납치해서 노예만도 못하게 부려먹던 시절도 아니고...쩝.
바벨 14-09-30 02:05
   
97년 9월 군번입니다. 훈련소 6주훈련 받고 자대배치 한달후엔가 IMF가 터지더군요. 한창 이등병이라 뉴스라는게 체감상 와닿지 않았지만 일병 정기휴가로 첫휴가를 나갈때(그땐 100일 위로휴가가 없었죠) 사회분위기 암울하더군요. 입대할때 서울역앞에서 봤던 누비라 대형 옥외광고도 대우의 마지막이었으니..
학교에 갔더니 동기들 입대신청해놓구 못가는 상태구 여자동기들은 무더기로 휴학하구..
시간이 지나다보니 그래도 다들 졸업은 했네요..
그냥 그때 시절이 생각나 적어봤습니다.
코쿠리아 14-09-30 07:02
   
예전에 들었던 부사관 경험담 기억나네요
증식으로 나오던 건빵도 중단, 아침 빵식에 나오던 딸기잼 공급도 중단,
돈까스 튀기는 식용유 보급안된다고 돈까스를 쪄서 줬다던데 ㅎㄷㄷ
그것도 gop부대
맘마밈아 14-09-30 10:33
   
저도 97년 군생활할때 난방비 아낀다고 내무실에서 침낭 뒤집어 써고 냉돌에서 잤던 기억이 나네요;
투더리 14-09-30 12:09
   
전 99군번 8사단 전차병 소속이었는데 엠사팔이 전차 굴릴 기름도 없어서 전차장 뒤로 술래잡기하듯 쫄래쫄래 걸어서 훈련하던 기억이 나네요. 탄약수라 무전기 매고 걸어댕겼는데 참... 그리고 겨울에 보일러도 화목보일러를 만들어서 인근 야산에서 듬성듬성 몰래 벌목 해서리 나무로 보일러 돌렸던 기억도 납니다.
마르지도 않은 생나무를 한겨울에 태우려니 그게 불이 붙나요. 애써 타더래도 지속적으로 봐주지 않음 순식간에 꺼지고 다시 불살리려면 개쌩쇼를 해야했고 진짜 .. 참..
Jakejack 14-09-30 13:49
   
98 년 1월 군번 입니다.
논산훈련소에서.. 딱 한번 목욕 시켜준 기억이 나네요..물아낀다고..
 더럽고 냄새나던 기억.. 또 저희 형이 군데가면 밥은 잘주고 우유도 매일 나온다더니
일주일에 한번 나올까 말까.. 부식은 일식이찬..양은 형편 없고 ㅎㅎ

님 말대로 보급품 맨날 도난에 옷도 맞는게 없어서 대충 입고.. ㅅ전투화 도둑맞고.. 아.이젠 추억 이네요
소로스 14-09-30 14:57
   
00년 1월군번입니다  논산이구요

우리땐 IMF 살짝 지난뒤라 먹는건 나쁘지 않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건 귤인데,, 당시 제주도에서 귤값이 폭락해서

그거 전부 군에서 사줬던것 같은데 아무튼 엄청나게 많은 귤박스가 내무반마다 쌓여 있었어요

첨엔 이게 웬떡이냐 엄청 먹어댔는데 나중엔 ㄸ이 쌕쌕이 처럼 나왔다는,,, ㅋㅋㅋ

그와중에도 귤박스는 계속 들어오고,,,

제일 기억에 남네요
냐옹군만세 14-09-30 18:16
   
맞음 귤 진짜 많이 나와서 내무반마다 2-3박스씩 있던거 기억이남..

야근 근무 나가면 부사수 야식 사줘야 하는데 병장월급20000원가지고는 이건뭐...

야식이 보급되는게 아닌 상황이라 사수가 부사수꺼 까지 사주는게 불문율이라 뭐...

보름도 못 버팀...제가 알기에 월급 모자라서 집에다가 돈좀 부쳐달라고 했던 장병들 꽤 있었음..

병장때 샴프도 사고 세제도 사고 세안제도 사고 슬슬 사제 복귀할 준비해야하는데 2만원까지고는

뭐.. 체크카드 가지고 한달에 2-3번정도 부대 정문 atm기기가서 돈 빼온거 생각남..

참 에휴...
검푸른푸른 14-09-30 20:30
   
99년 군번인데 귤파동은 모두 같았나보군요 ㅋㅋ

귤이 창고에 쌓여서 썩기전에 다 처리해야한다고 하루에 무조건 1인당 한박스씩은 먹으라고
간부들이 달달 볶았었는데 ㅎ 간신히 다 처리하고 나니 다음번 부식차에 또 몇십박스씩 실려와서
사람잡던 귤파동 ㅋ

근무지가 격오지 였는데 대대에서 처리안되면 남는건 격오지로 계속 보내는 통에 지겹도록
귤을 먹어야 했던 그때가 생각나네요 ㅎㅎ
버프홀릭 14-09-30 22:12
   
저는 99군번 전방쪽이였지만 귤파동은 모르고 지나갔네요 ,,,,,  귤 개인당 5개 이상으로 먹어본적은 없었던거
같아요 , 우리부대는 어디 기부를 해버렸나 ㅋㅋ
먹는게 부족하다고는 안느껴졌어도 ,, 남들 만큼은 그렇게 안줬던듯 ,,,
한림 14-10-01 16:33
   
그러고보니, imf 군번이 복리후생 대우에서도 상당히 손해를 보고 갔다오신듯.
소로스 14-10-02 01:56
   
제가 00년 1월이라

IMF겪은 고참들한테 니들 진짜 군생활 편한거다 소리 정말 많이 들었죠

군복무중 남북정상회담도 하고,,

근데 제가 고참되고는 똑같은 소리를 후임들한테 했더랬죠,,, ㅋㅋㅋㅋ
바토 14-10-02 13:17
   
그정도는 아니었는데
시야4 14-10-08 14:12
   
98년 군번입니다..

모두들 귤폭탄을 겪으셨군요...묘한 동질감..ㅎㅎㅎ

저두 IMF때문에 기다리다 기다리다 그나마 빨리갈수 있는 해군을 지원했죠...

기초 군사 훈련 받으면서 교관 및 조교 하는말....해군 기수중에 니들이 젤 인원이 많은 기수야...

보통 600~800선이라던데 당시에 1200명 돌파한 기수...

자대 배치 받는 곳에 어디든 동기들이 있었음...이후 해군 지원자가 없어져서...신병 없어 잡일 오래한 기수

하지만 말년에 보급창(당시 3대 지옥창, 병기창, 정비창, 보급창)으로 전출되서...고생좀 하고

병장 4호봉(해군은 병장2호봉도 눈치봄) 건빵(이건 나중에 신병도 안먹음) 과 초코파이...캔으로 된 백도, 포도, 기타 통조림

부족없이 먹고 살았습니다....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