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계층사회 카스트 제도 - 전쟁행위를 반성하지 않는 이유
한국은 반상(양반과 상민)이라는 신분제도는 있었으나, 카스트 제도처럼 심각하지는 않았고, 과거를 통하여 관리(공무원)를 임명하며 이를 통한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졌었다. 관리는 순환제나 진급을 통하여 주기적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나라에 능력의 기여 또는 헌신 정도를 통하여 면천 또는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진다. 사농공상이라는 개념적 계층 나눔이 있으나, 혈연관계를 중시한 종법제(씨족 宗法制-宗中/문중) 사회이다. 한국은 중앙집권적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봉건사회가 존재할 수는 없었다.
반면에 일본은 현재도 신성수장(히로히토)과 세속수장(막부 또는 수상)이 있는 이중통치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신성수장(천황)은 지금도 혁명으로 바꿀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위치에 있다.
일본인의 신분은 : 귀족/봉건영주, 사무라이, 농민/공인/상인, 부락민(불가촉천민)으로 나뉜다.
봉건 영주가 종신으로 세습하여 지역에 평생 군림함으로 당연히 과거제도는 없다. 19세기까지 평민에게는 이름만 있고 성(姓)을 가질 수 없었다. 일본은 족보가 없으며, 출생 시 결정된 신분변경이 안 돼 한국과 달리 신분상승은 불가하다. 현대인이 인간의 평등과 자유에 대한 신뢰를 중요시 하는 것과 일본인이 계층제도에 대해 가진 신앙과 신뢰는 맞먹는다. 그래서 일본인은 과거급제를 통한 신분상승과 그를 통한 권선징악의 이야기 춘향전을 전혀 이해 못한다.
미국대사가 수교 후 처음 일본에 부임 했을 때 신성수장의 존재를 몰랐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뭐지 ?
- 일본인은 자기 신분에 맞는 위치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행동지도가 되어 있어, 이것이 사회를 유지하는 으뜸 규범이다. 그래서 영주에게 개선 건의는 할 수 있으되, 합당한 건의는 받아들여지지만, 건의자는 행동지도를 거부했으므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한다. 그 거부의 결과물(효수)을 마을의 저잣거리에 걸어 놓는다. 민중들은 이 건의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이러한 죽음을 당연시 받아들이나 그를 영웅시 하지는 못한다. GR 사회. 이것은 구성원에게 불만이나 의견개진의 절제를 요구함으로, 현재 일본인의 혼내와 다테마에라고하는 이중성의 근간이 된다.
- 아랫사람에게는 철저한 복종과 절제 및 희생을 요구하나 윗사람은 책임회피를 당연히 여긴다. 윗사람의 결정으로 한 일이지만, 문제가 생기면 아랬사람의 결정으로 한 것이되어 아랬사람은 자기살해 당한다. 으~~~ shit
- 100년 가게, 100년 식당, 100년 여관은 일본 사회가 다른 것을 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계층적 질서유지가 생존의 덕목으로서 봉기가 불가한 사회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인은 개인의 양심과 의(義)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계층제도 안에서 위에서 내려준 집단적인 목표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주군의 복수는 의무이다(로닌[浪人] 이야기). 그래서 선과 악의 구별은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일본의 지도자에게 백성은 소모품이다. 이의 예로, 일본군의 조직에는 부상자 후송 또는 치료 시스템이 없다. 현재의 자위대도 취약함이 그렇다. 부상자는 고장 난 총기나 장비류로 간주되어 현장폐기하고 재보급을 받으면 된다. 가미가제 특공대나 코로나에 걸린 사람을 비방하는 것도 유사한 문화로 간주된다.
반면에 한국인은 조선조 육백여년간 군(君)권과 신(臣)권이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개인적 양심과 의(義)의 기준에 따라 민중이 전면에 나서서 이끌어온 나라이다. 또한 일본과 달리 한국인에게는 개인적인 복수문화가 없다. 복수를 가치 있는 일로 여기지 않으며, 진정으로 참회하면 복수하지 않고 받아주는 문화이다.
일본은 영주가 패배했을 경우 영주는 도망이나 할복하고, 민중은 새 영주에게 복종함에 거부감이 없고 복속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맥아더(마카사)가 점령 후 주둔했을 때 희안하게도 반발이 거의 없었다. 일본인들은 미군사령관인 맥아더에 대해서 바로 히로히토(천황)를 대하는 태도를 취하고 일본을 떠날 때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반면에 임진란에 선조가 도성을 비우자, 왜군은 일본처럼 조선 백성이 환영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부분이 의병으로 변하여 놀랐다는 기록이 있다. 얘들은 우리와 다른가벼 ~~~ ^^
이것을 보면 한국군 사단 두엇이 그리로 에끼벤 먹으러 친선 수학여행 한번 갈 필요는 있다고 생각이 든다. 아참! 요즘은 신속기계화 대응여단이다. 열렬히 환영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게되면 아우님들 거기 마꾸도나루도 사먹게 용돈이라도 두둑히... 준비해 둘께요 !!!
이러한 영향으로 일본제국 시대의 헌법은 백성의 간섭과 여론의 침입(?)을 방지할 수 있는 모든 예방수단이 들어가 있는 제국헌법을 시행 하였다. 이때의 헌법이나 지금의 헌법에도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결여되어 있으며, 있더라도 집권자가 충분히 제어 또는 억제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이 일본헌법이다.
- 전후 미국에 번역하여 보내진 일본제국정부의 정책 근간의 일부이다.
대동아 공영권이라 함은 모든 국가가 세계 속에서 각자 알맞은 위치를 갖게 하려는 일본의 고유한 정책이다. 이에 대한 저항은 각국의 각자 알맞은 위치를 즐기기를 바라는 일본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에 위배되기 때문에 반대하면 안된다. 일본은 그들의 형이며, 그들은 일본의 아우이다. 이 사실을 점령지 주민에게 철저히 인식시켜야 한다. 주민을 지나치게 배려하면 그들이 일본의 친절에 편승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통치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본의 지휘부가 구상한 세계질서에서 한국은 항상 일본의 아래에 있어야 마땅하고 그곳이 한국에게 알맞은 자리이다. 일본은 남북이 평화체제에 합의하고 경제교류를 통하여 경제에 일본을 앞서는 것을 감정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을 알맞은 자리인 일본의 경제적 속국으로 두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잘 안되니 저렇게 GR을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일본인은 매우 체재 순응적으로 시민혁명이든 경재혁명이든 어떠한 민주적 혁명도 일어날 수 없는 사상적 문화적 사회적 구조라는 것이 증명된다. 이러한 경직된 사회에서 경제 강국이 된 것은 그래도 전후의 환경에서 국력을 한데 모으는 응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기의 맡은 바 본분에 충실하고, 상부의 지시에 따르는 일본인의 집단 종속성에 따른 순응적 근면성으로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즉 메뉴얼적 사회인 것이다.
또한 현재 모든 면에서 일본이 침체되고 몰락(?)해가고 있는 원인 역시 이런 메뉴얼적 문화기반 때문이리라. 따라서 일본은 그러한 낡은 매뉴얼 체제의 토대위에서는 7,80년대의 국력이 최고였으며, 이런 경직된 환경으로는 결코 혁신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개선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의 세계 환경변화에는 더 이상의 적응이 안 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이유 중 하나로서, 한 가지 문제에 오랜 기간 몰두해야하는 사회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도 있다. 이런 면이 다수의 노벨상 수상이라는 좋은 결과일 수는 있겠으나, 사회와 세상을 혁신하고 창조해나가는 근본 원동력과는 거리가 있다.
그들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 매뉴얼이 없어서 발전할 동력을 잃었지만, 그래도 어느 한 방향으로 집착한다면 그것을 멈출 수 있는 매뉴얼 역시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여기에서 한국이 조심하여야 할 것은 명치(메이지) 시대에 정한론(조선침략론 1871~1873)이 무시되자,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가 반란. 혁명이 필요하면 내부의 불만을 밖으로 돌린 역사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반면, 한국은 문제의 근본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여 문제의 핵심과 상처를 헤집더라도 결국은 해결하며,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혁신과 혁명을 받아들이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앞으로 매뉴얼이 없어진 일본은 절대로 한국의 혁신적 문제 해결능력을 따라올 수 없다고 본다. 그 결과가 현재 한국과 일본의 총체적 국력 변화로 귀결되는 것으로 본다.
그동안 한국인의 평균소득은 일본보다 높아졌고,
2차대전 전쟁 후, 전리품 나누기 일환으로, 일본을 이렇게 가르려고 했으나, 트루먼의 미국은 일본을 혼자 다 먹으려고, 일본 대신 한국을 갈랐다. 그 트루먼은 한국에 불행의 씨앗을 심었다. 오지게도. 그럼에도 한국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일본 야만론을 쓴 박경리 선생이 도올 김용옥에게 한말 : 일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반드시 실패한다. 그 이유는 일본이 지향해온 모든 것이 전 인류와 한국의 미래에 근원적인 부정적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진정한 민주국가가 아니다, 다만 공산국가가 아닐 뿐이다. 이제 우리 문명의 탈을 쓴 야만국 일본을 좀 알고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