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의 글 중에 하도 어이가 없는 빨갱이보다 더한 빨갱이 짓으로 대남공작을 스스로 벌이고 있는 자가 있기에 재미 없는 글을 써 봅니다.
1. 일제 식민지 탈피와 광복.
-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이용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엄청난 핍박과 수탈이 있었습니다.
- 3.1운동 이래로 우리 민족의 광복 의지는 항구여일로 같았고 여러 방도로 광복을 추구합니다.
-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드러낸 것으로 제국주의의 종말을 촉진합니다.
- 미국의 승리와 일본의 패전으로 조선반도는 독립을 할 수 있게 됩니다.
- 하지만 광복은 외세에 의한 것으로 광복 이후에도 외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2. 이념 갈등과 분리
- 식민지배 시기 광복의 방법론 중 하나가 자주적 독립 쟁취가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무장투쟁론으로 실천됩니다.
- 동학 농민 운동 때부터 우리 민중은 무도한 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이 있었고, 일제에 대해서도 그러한 민중의 결집을 통해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국주의 일본을 힘대 힘으로 깨기는 힘들었고 여러 가지 형태로 현실에 대응하는 독립 운동이 전개됩니다.
- 자강 운동에서부터 다양한 노력이 있었으나 일제의 강력한 압박에 제대로 조직화되기 힘들었습니다.
- 임시정부에서는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이 큰 인사들로 요인들이 구성됐는데 무장투쟁론을 기본으로 절대적인 저항을 원칙으로 하는 극렬인사들이 많았습니다.
- 이러한 이유로 왕족 출신에 족벌의식이 강하며 외세를 이용해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이승만과는 임정이 걸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 그리고 구소련에서 일어난 볼세비키 혁명은 제국주의를 민중의 손으로 어떻게 뒤엎는지를 보여주었고, 대부분의 임정 요인들이 사회주의자적 면모를 갖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 실상은 독일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혁명이지만 우리나라를 비롯 많은 식민지배 국가와 민중으로부터 사회주의는 독립의 가장 큰 방향성이 됩니다.
- 미국이 승전으로 일본의 권리를 빼앗고 결과적으로 조선 반도의 광복도 이루어졌지만 우리 스스로 쟁취한 광복이 아니기 때문에 후처리 문제가 우리 손을 벗어나게 됩니다.
- 이로인해 미국의 대답을 받지 못한 임정 요인들이 개인신분으로 귀국하였는데 사회주의를 지지하던 극렬인사들은 구소련의 통제를 받고 북한으로 들어가 이미 정부 수립과 관련한 일들을 하며 미국과 UN의 노선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단일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만들고 국회에서 헌법을 제정하면 국가로 공인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미 구소련은 북한을 사회주의 괴뢰국가로 만들 생각으로 차일피일 UN의 방침을 따르지 않고 내부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절차를 밟아 갑니다.
- 이로 인해 소련파냐 미국파냐로 주요 요인들이 갈리게 되고 이하에서도 민중들끼리도 다툼이 끊이지 않으며 민족 내부의 분열과 배타적 적대의식이 고조됩니다.
3. 정당성 문제
- 임정 요인들은 사회주의 계열, 민족주의 계열이 중심이 돼 있었는데 무장투쟁론의 사회주의 계열이 더 많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이념 문제를 떠나 어느 식민 지배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당시 사회주의는 냉전 시대의 그것과는 다른 이상론으로 인식된 결과입니다.
- 임시정부 경무총감과 총리 등을 역임했던 김구는 광복 이후 임정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일개 유명 인사로 불리며 공식 직함 없이 '선생'으로 불립니다. 민족의 분열을 막기 위해 남북을 오갔으나 남과 북 모두에게 환영 받지 못햇습니다.
-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민족주의는 봉건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계급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배척되었고,
- 제국주의 입장에서 민족주의는 불손 세력처럼 여겨졌습니다.
- 미국은 제국주의를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제국주의를 승계하는 나라로 볼 수 있고, 북한의 소련과 맞서기 위해 남한에 친미 정권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내세운 인물이 바로 이승만입니다.
- 미국이 독단적으로 이승만을 허수아비로 세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이 여러 인물 중 무리가 없는 인물을 물색했고 여러 기준에 부합한 것이 이승만 이었을 것입니다.
- 이승만 자신도 타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고 강단도 있어 마냥 미국이 시키는대로 움직일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 다만, 임정에서 쫓겨난 이승만이 정치적 기반 자체가 미국에 있다고 봐야 하고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미국을 등에 업어야 했으므로 미국과의 갑을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음은 사실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 이승만은 1948년 정부 수립과 헌법 제정을 통해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하여 우리의 전통성이 임시정부에 있다고 법으로 보장합니다.
- 그러나 당시로서는 실제 임정의 체제와 요인을 승계한다기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독립국가 임과 우리가 일제에 맞서 투쟁했던 역사를 인정한다는 것이 컸습니다.
- 북한은 대부분의 사회주의 계열 임정 요인들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면서 스스로를 한반도의 공식 정부로 생각하면서 정권을 출발합니다.
- 이로 인해 정통성 논란이 촉발되었고, 1950년 전쟁을 치르고 확실한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면서 체제 경쟁과 정통성 문제가 함께 남북 대립의 큰 노선을 차지하게 됩니다.
4. 역사적 모순과 혼란
- 대한민국은 1893년의 동학 동민 운동, 1919년의 3.1운동, 1960년의 4.19 혁명 등 우리 민중이 나선 민주적 투쟁을 기치로 합니다.
-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미국의 독립 선언, 프랑스 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 자유 시민 국가를 표방하므로 우리 민중이 이룬 일련의 민주적 투쟁을 매우 존경합니다.
- 그러나 실제로는 4.19 이후에도 쿠데타를 통한 독재 정권이 나라를 지배했고, 군부 독재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끝까지 이어집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이상과 현실은 항상 괴리가 있었고 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 특히 학생을 중심으로 순수 이상을 추구하는 이들은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의 방편으로 민족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논의했고,
- 이에 대해 북한은 지령을 통해 이런 조직을 이용해 남한의 분열을 조장하고 대남공작을 실시하겠다는 전략을 실천합니다.
- 결국 민주주의 하겠다는 사람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통해 사회주의적 사고관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 그리고 경험하지 않은 역사를 극단적인 제단으로 이념의 극단적 편향성을 띄게 됩니다.
4. 대한민국의 근본.
-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시민 민주주의를 실천한다.
- 분단과 전쟁을 통해 휴전 중인 대한민국은 전쟁 중이며 그 적은 북한의 수괴와 그 하수인, 그리고 인민군이다.
- 이념은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한민국에서 당연히 자유이며 개인의 문제로 국가가 강제할 수는 없다.
- 다만, 국가보안법을 통해 북한의 사회주의는 배격하며 그 근거는 그들이 대남 공작 등을 통해 우리나라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사상으로 불리는 주체사상은 특별히 자유의 범주 밖의 것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도 개인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통제 대상이다.
- 북한의 주체 사상은 김일성 유일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사회주의 사상과도 다르며 일종의 종교적 세뇌가 목적인 것으로 사이비이고 당연히 학문적, 사상적 논의 가치가 없다.
- 그러나 이를 이용해 파당을 가르고 양극단에서 상호 비방과 배척을 이유로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사상적으로 주홍글씨를 씌우는 것도 결국 대한민국의 분열을 조장하고 그것은 북이 추구하는 대남공작의 방향과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