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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31 02:03
[해군] 1903년 4월15일 인천항
 글쓴이 : 스마트MS
조회 : 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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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1907년 부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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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정부가. 당시 일본에게 구입한 군함이 입항 하였습니다.
 
군함은 양무호 揚武號라 명명되었습니다.
 
양무호 제원
 
함명: 양무호  원명:S.S.Pallas   일본명: 勝立丸
 
건조연월 :1888년 2월
 
건조사: 영국 미들스브로 딕슨 社
 
총톤수:3.432톤
전장:346.3척 (105m)
전고:27척 (8.3m)
선폭:41.3척(12.5m)
 
주기관:삼연성기 三漣成汽  1.750 마력
 
석탄소비: 일 43 톤
 
화물적재량 4.087톤
 
무장: 8cm 포 4문  5cm 2문  양총 150정  권총 22정  탄약.화약 50상자 刀子 100구
 
승무원 7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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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 신순성분
 
 
조선이 그리도 원하던 최초의 근대식 전함 이였습니다.
 
 
 
하지만.
 
입항은 하였지만 당시의 여론은 곱지만은 않았습니다.
 
양무호 구입 목적이. 밀수방지용 순양함 주 임무와 해양방위용 이라기 보다는.
 
고종 재위40주년 경축하려는 행사용으로 구입했다라는 여론.
 
양무호의 태생 자체가. 군함이 아닌. 원양 항해용 화물선
 
더구나. 영국으로 부터 25만원에 석탄운반선으로 활용했으나. 석탄 과다 소비하는 불량기선이라는 오명 쓰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구입당시의 구매가격 논란.이였습니다.
 
대한제국과 일본간 거래시. 일화 55만원으로 구입한 이 함선은. 앞서 이야기한 바처럼 25만원에 구입했고.
오랜 시간동안 굴려먹은 중고선을 고가에 구입하였기 때문이였죠.
 
 
함의 성능/ 구입가격/ 도입 목적...의 문제등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시점에서.
 
근원적인 문제가 더 있었습니다.
 
바로.
 
양선을 운용할줄 아는 근대해군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죠.
 
고로 해군도 없이 함을 도입하였고. 26세의 신순성을 함장으로 배치하고. 수부.화부를 모집하여.
대기만 시켜 놓은채 재정낭비를 한다는 여론에. 어려움만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신한 군부대신 윤웅렬은.
 
어차피 군함 도입하였으니 본격적으로 해군을 다시 만들어보자 건의 하였으나.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선원교육 명분으로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화물선으로 개조 되어... 일본으로 귀환하였습니다..
 
 
비운의. 함선이자. 비운의 함장으로 역사에 남겨졌지만.. 기억속에 흐릿하게 잊혀져가는 사진 몇장뿐이라 아쉬움도 남는듯 하네요.
 
 
ㅇ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적으로 두가지로 생각되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입니다.)
 
먼저.
 
조선의 해군사관을 육성하던.해군통제영학당을 보호하지 못한점.
이로 인해
영국 교관. 콜웰 대위와 준사관 커티스 와 30명의 생도를 보호하지 못한점.
 
두번째.
 
서울주재. 미국 대리공사 허어드의 주둥이,
 
"조선정부는 해군 창설의 의지와 재정능력이 없다"라는 첩보를. 정보를 열강과 공유하여.
 
조선정부의 군함구입 요구를 각국이 회피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듯하네요.
 
 
조선의 해군사관생도들은. 일반 군인으로서 농민군 진압에 투입되거나. 영어교사 허치슨을 따라 서울 박동의 한성영어학교로 옮겨갔다고 전해지네요. 아쉬움만 남는 재원들이라 지나간 역사이긴 하나.씁쓸함 남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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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13-10-31 08:42
   
이미 조정이 좀먹어서 나라가 기운 상태니... 뭐는 남아있었겠음...
강성대국 13-10-31 12:19
   
3천톤급 무장상선???
그나저나..
시력이 나빠서 그런가 사진을 아무리 훌터봐도 8센치 5센치가 안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