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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30 18:23
[질문] 2차 대전시기 독일의 전쟁능력관련 질문입니다
 글쓴이 : Penomue
조회 : 3,426  

2차대전시기 석탄이나 철광석 gdp같은것을 보면 석유를 제외하고는 독일이 영국보다 생산량이 많았는데

여러 글을 보면 독일이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전쟁을 지속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나와있습니다

인력외 어떠한 면에서 그러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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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다다다 13-05-30 18:27
   
독일은 식민지가 없었으니까요. 1차세계대전 패전국으로 독일 그 자신의 기술력 말고는 내세울게 미미했죠.
스마트MS 13-05-30 19:01
   
고.....고무???아 자원이 아니군아...;;;
     
뭐꼬이떡밥 13-05-30 19:14
   
고무도 중요한 자원으로 알고 있는데요
          
스마트MS 13-05-30 19:20
   
질문글의 요지를 잘못해석하여서. 자원이외로. 읽어서 말이죠 ㅎㅎ
호랭이님 13-05-30 19:02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저 비교는 독일과 영국 본토와의 비교구요, 전쟁중에 영국은 영연방 전부의 인적, 물적자원을 총 동원했죠...독일 vs 영연방 전체국가로 보시면 왜 독일이 졌는지 답이 나옵니다.
뭐꼬이떡밥 13-05-30 19:15
   
식민지 빨이죠..
물건을 팔아서 팔아먹을수 있는..
만약 독일이 영국이나 프랑스 만큼 식민지가 있다면 어쩌면 2차 세계대전이 안일어 날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군사학과생 13-05-30 19:27
   
우선 독일은 19C 중엽에 통일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찌감치 제국주의에 들어서 세계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는 프랑스, 영국에 비해 출발이 늦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독일의 군사사상은 언제나 단기전, 속도전 이었지만 프랑스,영국의 군사사상은 지구전, 소모전 이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독일은 언제나 공세적이었고 프랑스, 영국은 항상 수세적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을 예로 들면 보불전쟁이나 1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를 6주 만에 점령하려 했던 슐리펜계획, 후티어의 돌파전술과 그 돌파전술을 막기위해 구로의 종심방어전술, 2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마지노선과 프랑스의
방어선을 뚫기위한 독일의 낫질작전까지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언제나 프랑스, 영국은 우세한 식민지 자원으로 독일이 제 풀에 쓰러지도록 버티는 것이었고 독일은 그 전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습니다
산악MOT 13-05-30 20:18
   
조금 샛길이지만
2차대전 폴란드 침공 시기가 5년 후였다면 유럽의 지도는 지금
많이 달랐을 겁니다

히틀러의 독단으로 제대로 정비가 안된 상태서 전쟁개시를 했거든요

독일해군은 1945년을 목표로 재건중이었고
다른 기술적 부분도 전쟁 후기에나 완성되거나 겨우 나왔죠

전쟁 후기의 독일의 기술력보면 다른 나라는 엄두도 못낼것들이 많았으니까요
     
현시창 13-05-30 23:29
   
많이 달랐을 겁니다.
독일은 털렸을 테니까.
     
현시창 13-05-30 23:33
   
41년 독일이 그토록 예상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영국과 프랑스의 산업이 완전히 전시체계로 전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40년부터 뒤늣게 재군비에 들어갔습니다. 만일 독일이 전쟁을 늦췄다면 42년 무렵이면 영국공군력은 독일과 동급으로 올라설 예정이었고, 해군은 전체전력의 30%를 신예함으로 재충전할 예정이었으며, 독일군은 41년당시 상대한 것보다 3배 많은 영국원정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로...
43년이면 건함계획이 마무리 되어 목표한 이탈리아 해군대비 2배의 전력을 갖추고, 벨기에 국경까지 요새화를 마무리지었을 겁니다.
          
산악MOT 13-05-31 12:08
   
영국과 프랑스 산업이 전시체제로 전환된것도  독일의 침공때문이 었을텐데  독일이 침공 안했으면 그상태로 더 오래 갔겠죠.  독일은 전쟁준비도 은밀히 진행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이 전차와 포병에 집착했다고 하는데  바르샤바 진격때  전차는 보잘것 없었습니다.

수투카와 보병 그리고 초기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차들로 전격전을 한거죠.
ME 109 또한 10년 이상된 기체였죠  결국  그당시 진행하던  은밀한 신무기들은

전쟁 후반에야 나올수밖에 없었습니다.

해군또한 마찬가지였죠. 

EBS 다큐 보시면 잘 나와있습니다.
               
현시창 13-05-31 14:04
   
아뇨, 영프는 물론 미국조차 주데텐란트 합병 이후로 재군비를 시작했습니다.
독일이 세력권을 확대하는데 설마 손가락 빨고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신 건 아니겠죠?

그리고 보잘 것 없는 기반에서 가용가능한 모든 자원이 전차와 화포 위주로 들어갔지요. 프랑스와 체코의 산업기반을 접수한 이후, 독일의 군비증강이 더욱 가팔라집니다. 게다가 말씀하신 ME-109가 10년 이상된 기체라고 하셨는데 스핏파이어 역시 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는 기체죠.
사통팔달 13-05-30 20:49
   
독일무기보면 기발한건 전쟁중에 다나왔죠,다완성된뒤 전쟁했으면 더많은피해를 봤겠죠 연합군이랑 영,프들은 말이죠.v로켓같은거 많이 만들어 놨었다면 초기개전때 엄청났겠죠.제트전투기도 그렇고 말이죠.그러나 물량빨에는 장사없기도 하니까요
     
현시창 13-05-30 23:39
   
기발한 병기가 전쟁중에 나왔다는 건, 개전시기가 늦춰지면 애시당초 투자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히틀러의 독일이 개전직전 발안한 여러 계획을 보면, 공군이나 해군이나 기존 군사강국들의 전력을 양과 질로 따라잡으려는 방향이었습니다.

전쟁중에 하다하다 안되니 만들어낸 비밀병기들따윈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해군 역시 잠수함이 아닌 거대한 수상함과 항공모함에 집착했고, 육군 역시 포병과 전차에 집착했습니다. 공군 역시 쌍발 전투기와 쌍발고속폭격기에 집중했지요.

그리고 그런 경향을 감안하면 개전시기가 늦어졌을 경우엔 독일은 총체적 전력문제로 가뿐하게 박살났을 겁니다. 왜냐면 독일이 성공을 거두는 시기는 영, 프, 미의 신형병기가 개발은 끝내놓고 재군비 문제로 필요한 수량만큼 양산배치되질 못한 헛점을 노린 상태였거든요.

개전시기가 6개월만 뒤로 밀렸어도 영국의 스핏파이어와 ME-109의 수가 비슷한 상태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영국항공전은 실제보다 독일이 더 큰 피해를 입으며 조기에 끝나버렸겠죠. 실제 전쟁에선 6배의 이상의 숫자로 독일측이 우월한 상황이었죠. 재군비가 빨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의 생산상황은 영국이 독일보다 월등했습니다. 독일측의 항공기 생산량이 급증하는 건 프랑스 생산시설의 흡수 및 계열화작업이 끝난 이후였습니다. 만일 프랑스의 생산시설과 막대한 자원스톡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42~43년도 독일공군의 양은 담보되지 못했을 겁니다.(독일 자체의 항공생산능력은 영국의 절반가량에 불과)

독일의 성공은 질이 아니라 기가막힌 타이밍 러시였습니다.
1년만 늦었다면, 39년에 이미 150만명의 정규군을 확보해 훈련까지 마친 미국이 역사보다 빨리 유럽에 개입했을 가망이 높습니다. 그 어떤 소모도 없이 군비전환을 마친 미국이 맘놓고 1년간 생산을 한다고 상상해보시길...그리고 대서양으로 물자를 뿌린다고 생각해보시길...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였고요.(진주만 공습이 1년만 늦었어도 일본은 미국과 넘사벽의 전력차로 압살당했을 겁니다. 정확히 1년후에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4척과 에식스급 항공모함 6척이 쏟아져나왔고, 수십척의 경순양함과 백여척에 달하는 구축함이 쏟아질 예정이었거든요.)
무엄하다 13-05-30 22:43
   
나폴레옹과 히틀러로 인해 유럽과학이 무지발전했죠 ㅋㅋ
질문에 답은 식민지죠 당근 ㅋㅋ
깡순이뽕 13-05-30 23:50
   
제가 보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패전원인 3가지요약 하자면
여자/병참/돈(채권) 3가지 요소을 잘 운영을 못해쪄..
여자...
영국이나 미국은 여성들을 직접 전투에 참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전쟁에 쓸 모든 물품을 공장 에 투입하고 여성인력을 마니 활용 했져
병참
독소전 당시 소련과 독일의 기차퀘도폭이 틀려서 독일보급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않고
기차을 이용한 보급품 우선순위 유대인/집시 동성애자 운반이 1순위 2순위가  전쟁 물자..

여성인력을 전쟁 물자 생산에 투입하면서도 채권을 사게 하면서
근로자의 높은 수입을 보장함으로써 높은 생산력을 증가 하게 됩니다..
예을 들면 미국의 조선소에서 2달이면 만들배을
전쟁 마지막에는 2일이면 만들정도 에 높은 생산력을 키우게 되져
독일은 유대인을 밥 조금 주고 전쟁물자을 생산하게 되지만 영국이나 미국처럼
생산력 향샹에 실패 하져
데스투도 13-05-31 12:02
   
일단 금속 희귀금속 석유등의 군수물자 생산에 꼭 필요한 자원이 독일에는 별로 없었습니다.
대전중에 스웨덴에서 철강을 수입할 수 없었다면 아마 전쟁이 더 일찍 끝났겠죠.
게다가 1차대전때처럼 장기전으로 갈 것을 생각해 산업 인프라등 기반시설을 너무 크게 확장함으로
대전중에도 군수물자를 뽑아야 할 시기에 기반시설 정비하는데 많은 인력과 공업능력을 잡아 먹었습니다.

영국은 각지의 식민지들로 부터 이런 물자를 충당할 수 있었고 실질적으로 한나라나 다름 없던 미국에서
대대적인 군수 지원이 있었죠.

다만 영국은 섬나라라 해상으로 들어오는 물자들이 막히면 장기전이 될 경우 국가 자체가 망할 위험이
있었고 실제로 독일의 되니츠 제독은 이런것을 염두해두고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보다 능률적으로
개편해서 울프팩 전술을 선보이게 됩니다.

영국 수상 처칠이 대전중 유일하게 자신이 두려워 한 것이 되니츠의 유보트라고 회고하기도 했고
실제로 44년 말 발터 교수가 전기 잠수함을 개발해 실전배치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베를린 점령을 더욱 서두르라는 지시를 최전선에 내리기도 했습니다.

영국 학자들의 계산으로는 전쟁이 2년만 더 지속되었다면 유보트에게 격침된 수송선의 양으로 유추해
볼때 전쟁을 이겼다 하더라도 국가가 망하게 되는 사태가 왔을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히틀러의 가장 큰 뻘짓중 하나인 독소전 개전이 군수 물자보급 측면에서 심각한 뻘짓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투기나 탱크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희귀금속과 기동병기를 굴리기 위한 석유를 수입하던 것이 소련인데 이것이 막혔으니 답답한 일인거죠.
(본래 계획대로 1년안에 소련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독일은 첩보력을 연합군에 비해 등한시 했기 때문에 물정이 어두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 여성인구의 산업참여도에 있어서도 이미 대전 전부터 독일은 여성인력의 참여도가 높았고 또 전통적인 가정을 중시하는 풍조를 나치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대전중에 더욱 적극적으로 여성인력을 활용하지 못해서 전시체제로 인한 인력증가가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는데 예전에 본 것인지라 기억이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시나프로 13-06-06 10:57
   
독일이 연합군 상대로 입은 인명소실은 전체의 10분의1밖에 안돼요. 반면에 연합군의 피해는 3배에 달하고요. 결국은 히틀러의 판단착오로 소련을 침공한게 결정적인 패착이 된거죠. 자고로 유럽에서 러시아와 전쟁에서 이긴 경우가 없을뿐더러 그 여파로 결국 자멸의 길로 들어가죠. 히틀러가 유럽을 점령하고 더이상 확전않고 버텼다면 추후 영국과 협상으로 전쟁을 끝낼수 있는 기회를 엿볼 수 있었는데...,그리되면 유럽의 현대사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세계가 돼있을지도 모르구요. 히틀러의 초기 구상은 영국과는 공존,프랑스에겐 자치권을 나머지 국가들은 직접통치하려 했다는데 전쟁초기의 성과가 너무 좋아 과대망상이 불을 지르면서 파멸의 길로 들어선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