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부모님 일때문에 아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기전에 따로 정해놓은거 없으면 아들 딸 모두 똑같이 나눠같지만 자식중에 누군가가 개입해서 부모님 맘 흔들어놔서 재산 많이 챙겨갈순 있더라고요 몰래 빼돌리고 그런게아니라 법적으로도요 쌍팔년소리하시는데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는 6.25도 겪은 옛 세대세요 할아버지는 안그러셨는데 할아버지 먼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장남이 어떤 거짓말을해도 다 믿으시고 따라서 재산이 최대한 장남에게 많이 가게 만들아놨었죠 장남 아니란 이유로도 재산 적게 받기도해요 그놈의 법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흠, 윗분들 출가외인이니 하는 말에 좀 흥분(?)들 하신 것 같은데 사실 올리신 내용들이 대부분 다 맞습니다만 그게 옳다 틀리다 이전에 나중(아마 중기 이후...) 그렇게 된 것이 사실이고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큰 이유로 왜란등의 전쟁으로 여러가지 사회환경이 바뀌어서 그런 것으로 압니다.
윗분들 쓰신 것처럼 원래는 딸들도 제사하고 재산도 물려받고 했엇습니다만 왜란을 겪으면서 사람도 많이 죽고 아녀자들 희생도 크고 집안의 대를 있고 자손을 남기는 문제도 있고 해서 결국에 그렇게 바뀐 것으로 압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져 어렵지만 가문을 이으려면 결국 가문의 중요한 재산들을 흩지 않고 한 사람에 몰아줘 가문의 대를 잇는 일을 하게해야 해서 결국 다른 아들들도 그렇지만 시집가서 다른 집안 사람되는 딸들은 더더욱 재산과 멀어지게 된 것으로 압니다.
대게 장자가 대를 잇고 그 장자는 다른 일은 않고 주로 가문을 돌보는 일들(가문의 전통을 보존하고 집안의 행사(제사나 여러 모임)나 문중 재산의 관리(선산이나 묘 외 가문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는 것들)을 해야하기에 재산을 그렇게 물려 받은 것으로 압니다.
조혼도 그런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으면서 하게된 것으로...
집안 구조도 안채니 바깥채니 하는 구분이 나타난 것도 그런 탓으로 알고 있네요. 왜란등 전쟁의 험악한 세상에서 집안 아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구조들이 나타나고 남자가 거하는 방은 밖에서 누가 찾아온다든지 집근처에 사람들의 기척을 먼저 알 수 있는 위치인 것도 그런 것이 반영된 것으로 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