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그때 그 상황이면 다른 왕도 그랬을것이다. 4대강사업이 돈을 아주 많이
빼먹을수 있는 사업이라는걸 알기 떔에 다른 어떤 대퉁령이라도 실체를 알면 안할수 없었을것이다 실체를 몰랐어야하는데 괜히 알아서 운이없었다.. 그리고 돈봉투에 100억이 넣어져 있고 내가 권력자인데.. 그 상황이면 100억 받고 청탁을 받을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운이 없었다 100억이 아니라 청탁이 50억이었다면 안넘어 갈수 있었는데 이상황은 누구나 넘어갈것이다
성폭행범이 나도 남자다 여자가 너무 섹시해서 성욕을 억제 못해 그런것이다. 다른 어떤남자라도 그랬을것이다. 하필 너무 섹시한 여자가 내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운이 없었다
통신사 셋 중 2명이 쳐들어온다했고,
(그 것도 둘 중 하나는 같은 서인이 안올거라고 했는데도 꿋꿋이 쳐들어올거라고 주장)
나머지 한 명도 이렇다할 근거 없이 도요토미 얼굴이 쥐상이라는 이유로 안올거라했는데
제대로 된 왕이라면 2명 말을 들었겠죠.
그리고 정보화시대가 아니니까 통신사를 보낸거 아닙니까?
그리고 혹시나 해서 적자면 반대했던 한 명도 사람이 덜되서 그런 주장을 한게 아니라
나라에 대한 잘못된 애국심이 과했던걸로 추정된다네요.
그래서 나중에 왜놈들이 쳐들어 왔을때 죄책감으로 일에 열중하다가 과로사했답니다...
그상황에 일본이 쳐들어 오는 전쟁은 피할수 없었다... 공감합니다. 운이 없어 쳐들어 왓다 라는건 좀 그렇고 우리가 일본 쳐들어 갔다면 일본이 운이 없는게 아니니깐요 . 쳐들어 오는게 불가항력까진 아니었을지 몰라도 이런저런 상황 마른하늘에 벼락 맞을 확율보단 전쟁발발 하지 않을 확율이 높지 않았을까ㅋ 어쨌건 뭐 일본쪽에 정세는 이미 전쟁은 피할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렇지만 그상황이면 다 그랬을것이다 .. 좀 문제가 있어요 ..
그리고 글쓴이가 공무원이 꿈인 청년이거나 공직자를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 그런생각은 버려야합니다. 공무원도 사람인데 .. 돈봉투앞에서 어떻게 당당해.. 누구나 저 더러운 돈봉투 청탁을 받을것이다 .. 이런식으로 정당화가 되는거지요 사람이지만 공무원이기 때문에 정직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노력을 했어야지..불리하다고 도망다니고 더 큰 권력에 붙고 더 큰권력 좋죠 이익을 쫓는다... 그리고 좋은 말만해주는 간신을 옹호하고 좋은말 누구나 듣기 좋죠 봉투봉투 열렸네 자꾸 그런거 받고 돈봉투 누구나 좋죠.. 자기주위 상황을 어쩔수 없다 말하지 말고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더 생각하는 사람이었음 좋겠습니다
운이 없는게 아니죠 .. 길가다 마른 하늘에서 벼락 밪고 죽거나 .. 10명중 1명 걸리는 제비뽑기를 했는데 내가 그 1명 술래에 걸리면 운이 없거나 1명이 술래를 피해가는 상황이 오면 그것이 운이 좋거나 나쁜거지요. 그 조선시대 상황이 운이 없는 상황이 아니죠 댓글님의 글을 보면 누구나 할수 있는게 왕인데 .. 운이 없어 잘 못했다로 들리는 이유가 뭘까요
역사에도 만약이란건 없지만...진짜 수양대군 이 썩을 인간이 골육상잔 하고 수많은 인재들을 죽이지만 않았으면 어떤 세상이 펼쳐졌을까 싶네요. 수양대군때문에 훈구파들이 그들의 기반을 권고히 했고 그만큼 부정부패도 심했습니다. 성종대에 그나마 견제가 들어갔지만 연산군이 다 말아먹고, 그때부터 이미 망조가 들었다고 봅니다.
세종대왕 못지않게 치적을 펼쳤던 문종. 제대로 평가되지 못해서 정말 안타까운 왕이죠. 솔직히 세종대왕 말년에 세자였던 문종이 실질적으로 조정을 살폈고, 여러가지 제도 및 군제, 과학기술, 무기 등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일을 해냈던 분입니다. 문종이 조금만 더 일찍 아들을 보고 그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면 태종-세종-문종에 이르는 조선시대 황금기를 더 이어갈 수 있었을텐데 정말 아쉽죠.
단종이 너무 어린 나이에 왕이 되고 수양대군 등을 견제하기 어려워서 결국 골육상잔의 비극이 일어났죠. 이런 빌어먹을 상황때문에 세종-문종대에 키운 문무에서의 수많은 인재들이 죽었죠.
제가 보는 선조의 굴욕은 수양대군 썩을 넘이 발단이 되었고 차후에 연산군이 말아먹으면서 막장전개가 된 상황에서 나온 결론이라고 봅니다.
선조는 선조탓만하기 힘듭니다.
다른 모든걸 떠나서 왕권이 약했기때문입니다.
혹자는 선조때 죽인 사람이 많아 왕권이 강했다고도 하는데
실상은 선조는 애초에 왕위계승후보군에서도 상당히 명분이 떨어졌었는데
신하들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옹립한 왕입니다.
이때문에 그 폭을 벗어나기 힘들어서 즉위후 10년이상 신하한테 배워서 정치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여기에 붕당이 본격화되며 이 붕당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왕권을 강화해보려 줄타기를 했다는게 솔직히 선조의 실상이라고 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선조가 강력한 왕권을 가졌다면 맘에 안드는 신하들을 다 죽였겠지만
실제로는 붕당을 이용해서 이쪽 파가 힘이 쎌땐 그쪽에 서서 반대편을 죽이고
반대쪽이 힘이 쎌땐 그쪽에 붙어 저쪽을 죽이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쪽 다 피해가 있으니 그걸로 왕권을 강화하려한거지 애초에 왕권이 강해서 누굴 죽이고 말고 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왜란전후에 왕가의 재산만 봐도 알수 있는데 조선조를 거쳐 가장 많이 왕가의 토지를 잃어버린 시기입니다. 왕가의 토지란 완전한 왕가의 사유지입니다. 왕가가 직접적으로 가진 땅입니다.
대대로 왕가에 물려져내려가는 땅인데. 왜란 전후로 상당수가 세도가들 은결로 흡수됩니다.
신하가 왕이 가진 땅 훔쳐가는것도 모르는 왕이었던겁니다.
그 정도로 왕의 눈을 가린 시기란거죠.
이러한 여러가지 점을 고려해볼때 선조를 무턱대고 까는게 사실 좀 부질없는 짓입니다.
애초에 선조 마음대로 한것도 많이 없고 선조는 무슨 일인지도 제대로 모르던 판이니까요.
조선왕 통틀어서 제일 왕 못해먹겠다 소리 많이한게 실없는 소리만은 아닙니다.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처우도 위에서 언급했듯 저러한 요소가 어느 정도 반영이 된 문제입니다.
물론 그게 잘했다라는건 아닙니다만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처우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약화된 왕권인데
왕권이 약화된게 선조의 탓이 아니란거죠.
오히려 선조때는 나름 조금이라도 더 강화되었으니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온전히 선조의 탓을 하기는 애매합니다.
“누가 조선을 일컬어 예의를 아는 나라라고 하였는가? 이 일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건너뛰는 따위가 아닙니다.어찌 무례하기가 이와 같습니까?”
-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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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상 명나라를 가장 개무시하던 왕도 세조였죠..
이 때보면 실제 조선-명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도 조선이 이기고 북경까지 진격할 수 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음
당시 명나라는 영락제가 죽고 쇠퇴기였고, 토목보에서 오이라트에게 황제가 포로로 잡히던 상황이었죠
그에 비해 조선은 일본, 여진, 류큐 등을 비롯한 만국이 조선에 와서 입조하던 전성기..
이 때 여진족 데리고 명나라 정벌하러 갔다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 까 싶네요
제대로 된 임금이라면 또는 아버지라면 지가 앞장서 싸우고 대통을 이을 세자와 왕자들은 보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 시키는게 정답이죠 뭔 인간 이하의 쓰레기를 비호하시는지...
구국의 영웅을 세번이나 백의종군 시키며 견제하고 전장에서 장렬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웅을 뒤로하고 지 수발이나 들던 내시 새끼들을 공신 명단에 올리다니요
더 한심한건 그렇게 많은 목숨이 희생되었는데 후로 복수는 전혀 생각도 않했다는게 기가 막히죠..
연산군에 인조가 있는데 선조가 최악의 왕이니 마니 하는 건 좀 오버같은데...
사실 선조는 폭군이라고 까지는 부르기 어려운 임금이었고, 실제로도 딱히 폭정이다 싶을만큼 엇나가는 일은 잘 없었죠.
우리나라 임금의 실정은 기실, 중국쪽 폭군소리 듣는 임금들이랑 비교하면 애초에 폭정 수준에도 못들어가는 귀여운 수준이기도 하구요. 뭐 왕권이 약해서 막나가고 싶어도 막나가기 힘들기도 했지만서도...
유자업과 그 후손들이나 고환의 후손들에 대해 알아보시면 입이 떡 벌어지는 걸 보실 수 있을겁니다. 우리나라 역대 역사상 암군이니 폭군이니 할만한 임금 다 모아도 걔네중 하나한테 안되요 ㄷ
우리나라 귀족은 항상 도망가고 서양 귀족들은 항상 전장의 앞에 서는편이였죠(안그런애들도 있겠지만)
그 성향이 지금도 남아있어요
군대만 봐도 미국같은경우 전방에서 직접 바로바로 명령을 내려서 빠른 처리가 가능하다면 우리나라는 보고하는데 단계별로 거쳐가고 거쳐내려오니 한번 뭐 하는데 오래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