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흥망성쇠에 물질적 환경이 끼치는 영향이 큰건 사실이지만 유현준 교수가 말한 부분은 동의하기 힘드네요. 조선과 서양을 단순비교해 본다면 뭔가 그럴듯해 보이기는 한데 한중일 삼국간의 역사를 비교해본다면 단순하게 적용될 수 없는 얘기입니다. 서세동점을 단순히 양쪽 문명의 건축방식의 차이에서 찾으려 한다면 수많은 반박이 나올것입니다. 오히려 온돌은 도시밀집을 막았다는 부분보다는 산림파괴로 인해 농업생산량을 감소시키며 국력을 약화시킨 부분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삼림파괴는 사실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났던 현상입니다만 늘어나는 인구에 의한 소비증가분을 기후적인 특성에 의한 식생의 높은 복원능력이나 국토면적,석탄과 같은 대체자원들 또는 무역이나 식민지 개척등으로 해결했다면 조선의 경우는 좁은 국토와 복원능력에 오랜시간이 걸리는 식생적 특성, 높은인구밀도, 농업생산위주의 경제로 인해 18세기까지 늘어난 인구로 급격하게 늘어난 목재소비량 때문에 산림파괴가 겉잡을 수 없을정도로 심해지면서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조선말이 되면 몇몇 산악지대를 제외하곤 국토의 많은 지역들이 거의 민둥산이었다고 할정도니 홍수나 가뭄에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한번 가뭄이 들면 숲이 저장해놓은 수분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하천의 물이 쉽게 메말라서 농업용수를 제대로 공급해줄수가 없었을 것이고 홍수가 한번 들이닥치면 토양이 쉽게 휩쓸려가기 때문에 땅의 지력이 떨어져서 농업생산량은 자연스레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늘날의 북한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진행되면서 국가재정은 더더욱 말라갔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기후변동이나 식생파괴같은 환경적인 압력으로 문명이나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진 경우는 흔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9세기 혼란한 조선말의 상황은 당시 세계정세와 관계없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수도 있습니다. 운이 없었던건 그러한 조선의 쇠퇴가 서구가 본격적으로 동북아까지 침탈해 들어오는 시기와 겹쳤다는 것
P.S : 일단 글을 써놓고 찾아봤는데 아래와 같이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발행한 책이 있었네요.
그냥 관종이네요, 조선 시대에 화폐 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것은 이미 동양 사회는 자본주의가 부의 편중을 조장하고 돈을 매개로 한 권력 집단이 형성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리는 국가가 하고 쌀과 면포를 물물교환 경제의 기본 단위로 삼았던 것이죠.
물론 봉건적 가치에서 벗어나며 '부국강병'을 추구했던 작은 사회였던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중국 모습 같았던 유럽이 화폐 경제로 해양 기술 발달과 함께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안정된 사회를 지향하던 조선(자본 경제의 호황과 불황과 같은 요동)은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고, 무엇보다도 정치권의 지나친 관념 철학화 때문에 생긴 소중화 사상과 그에 따르는 비현세적 가치관(당시를 태평성대로 규정하고 변화보다는 고착을 추구하며 권력이 극소수에게 집중된) 때문에 서구에 대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건물의 고층화는 환경 파괴와 연결이 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견해가 큽니다. 주요 선진국은 인구 감소의 시대가 되고 있고, 저 에너지 사용을 통한 환경 친화적, 혹은 경제적인 새로운 건물에 대한 패러다임이 생기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