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도착했다.
여기는 필리핀 음식을 파는 식당이다.
여느 큰 필리핀 식당처럼 현지 라이브밴드의 노래 소리도 들려온다.
메뉴판에 영어도, 음식 사진도 있다. 마이클에겐 다행이었다.
이 곳은 예전에 현지법인 사장이 안내해 알게 된 곳이었다.
소녀에게 물었다. "뭐 먹고 싶어?"
소녀는 역시나 부끄러운 웃음을 지으며 메뉴판에 있는 음식 사진 하나를 손으로 가리킨다.
밥에 리엠뽀(구운 삼겹살 비스무리한거)가 있는 사진이었다.
역시나...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의 전통적인 식사는 보통 접시 하나에 밥과 반찬 한 가지이다.
반찬으로 고기가 있으면 진수성찬이다.
태국에선 예전에 밥과 수박을 반찬으로 먹기도 했다.
소녀는 본인에게 가장 친숙해 보이는 밥과 반찬 하나로 구성된 음식을 고른 듯 싶다.
마이클은 내가 골라주길 바라는 눈치여서 난 마이클과 소녀를 위해
탕을 비롯해 육해공 메뉴 대여섯가지를 주문했다.
천천히 식사를 하며 간단한 영어로 때론 몸짓 발짓을 섞어 가며 소녀와 대화를 시도한 결과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녀가 말한 언니는 친언니가 아니라 같은 동네 언니다.
소녀는 마닐라시가 아닌 다른 곳에 사는데 동네언니를 따라 왔다.
소녀도 동네언니처럼 LA카페에 가서 돈을 벌려 했으나 기도에 막혀 들어가질 못했다.
혼자 집에 돌아갈 차편이 없어 근처 밖에서 동네언니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필리핀 사정을 어느정도 아는지라 한편으론 상황이 이해가 가면서도 참으로 기가 막혔다.
동네언니가 LA카페에 간 목적대로 남자에게 pick을 당해 남자랑 같이 LA카페 밖으로 나간다면
이 소녀는 내일 아침까지 어쩔 참이었나?
설사 동네언니가 pick 당하는거에 실패하더라도 어른들한테도 위험한 곳에서
혼자서 밤늦게까지 동네언니를 어떻게 기다릴 셈이었는지...?
맛있게 먹고 있는데 자꾸 물어보면 밥맛 떨어질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시니강을 맛 본 마이클이 그 강한 신맛에 놀라며 오만상을 쓰자 소녀가 웃음을 터트린다.
소녀의 웃음에 나도 마이클도 웃음이 터졌고, 우리 셋이 한참을 웃었다.
소녀에게 먹여주려는 흉내를 내며 아~~해보라고 했다가 내가 먹어버리는 등의 유치한 장난도 치고
라이브밴드에 노래도 신청해 들으며
검은머리 아저씨, 노랑머리 아저씨, 필리핀 소녀 이렇게
남이 보면 참 어색해 보일 법한 조합인 우리 셋은 유쾌한 식사시간을 가졌다.
식사가 끝이 날 무렵,
내가 미리 포장 주문했던 음식 몇 가지를 종업원이 가져왔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고
소녀를 처음 만난 장소에 다다른 우리는 잠시 발길을 멈췄다.
LA카페에 강한 호기심을 느낀 마이클은 잠시 LA카페에 가보겠다고 한다.
내일 오전 미팅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 후 마이클을 보냈다.
마이클을 보낸 후 난 소녀에게 물었다.
"고 홈?...웨잇 시스터?"
소녀는 이번에도 잔뜩 부끄러운 웃음을 지으며 머뭇거리더니...
"고 홈"
다행이다. 내가 바라던 답을 해줘서...
소녀를 데리고 호텔로 갔다.
프론트 데스크에 있던 호텔직원에게 호텔 리무진을 불러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차와 기사가 왔고 난 기사에게 소녀를 집 앞에까지 데려다 주고
호텔로 돌아오면 프론트 데스크에 소녀가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신신당부하며
팁을 두둑하게 줬다.
"옛 썰~~돈 워리 썰~~"
소녀를 차 뒷좌석에 태운 후 포장한 음식들을 주었다.
내가 타지 않자 소녀는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아마 나도 같이 가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소녀를 보냈다.
다음 날
현지법인에서의 업무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왔다.
맡겨두었던 룸키를 찾으러 프론트데스크에 가니 리셉션 직원이 나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며
쪽지 하나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