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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23 20:43
[펌글] 차범근 플레이 실시간으로 본 올드팬의 상세한 회고
 글쓴이 : 실험가
조회 : 2,477  

차범근의 98득점 기록에 대해 아쉬운점은.. [5]
노바디 추천 9 | 반대 4 | 조회수 645 | 2011.05.11


그당시에 왜 어시스트 기록이 없어서

어시 기록이 안남아있다는 점임..

차범근 선수의 플레이 내용상

어시스트가 득점 만큼 많았을 선수임..

상당히 이타적 플레이어였으니..

골키퍼 일대일 찬스에서도 옆에 더 좋은 위치 선수에 패스하는 선수..


차범근의 말레이지아 3골 몰아넣기가 왜 유명한줄 아나? [10]
노바디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5 | 반대 4 | 조회수 1532 | 2011.05.19 | 신고

단순히 20여분동안 3골 넣어서?
 
단순히 4-1 실신상태였던 팀을 구제해서?
 
 
 
노노노노노
 
그 경기를 본 사람이나 암직한 사실이다..
 
 
그 세골은.. 그냥 세골이 아니다.
 
 
그 세골은..
 
 
순수한 표현으로..
 
차범근이 혼자서 세골 넣은거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말레이지아와의 경기에 세골 넣은거 갖고
 
왜 수십년간 전설처럼 회자되는줄 이해 못할 것이다..
 
 
그 경기는..
 
한국 대표선수들이 태업한 경기다. 당시 최정민 대표팀 감독의 경질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일부러 태업한 경기란 이야기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말레이지아가 복병이라 한들...홈 에서
 
말레이지아에 4-0 으로 후반 중반까지 떡 실신 당할 일 .. 전혀 없다.
 
 
 
차범근 선수의 득점이 적다는 둥.. 이런 알지도 못하면서 개드립 치는 녀석들한테
 
이 경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점이냐  하면..
 
 
차범근은 절대로.. 개인 플레이를 안하는 선수이며..득점 욕심이.. 역사상 최고로
 
없는 선수 축에 속하는 선수인데..
 
 
이 말레이자아와의 경기가.. 아주 희귀하게도..
 
차범근이가 개인플레이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후반 20분간 보여준 경기란 것을
 
알아야.. 이경기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 뇌리에 남아있는가를 이해한단 것이다.
 
 
다른 선수들이 제대로 뛰지 않아.. 떡실신 당해가는 당시 상황에서
 
차범근은.. 아마도.. 선수생활중 유일하게
 
개인 플레이를 한다.
 
공뺏어 패스 없이 질주 돌파하여 슛팅까지./
 
 
알것냐?  차범근이 혼자서 세골 넣었단 이야기다. 무슨 의미인줄 아냐고..
 
1대 11로 싸워서 세골 넣었다고.
 
차범근 득점기록이 적다고 하기엔.. [2]
노바디 추천 3 | 반대 3 | 조회수 148 | 2011.05.21

고려해야 할 점이

포지션이 센터로 뛰었는데도 불구하고.. 스타일은 윙포 역할..
(원래 라이트윙 공격수 출신인지라..)

이타적인 플레이 스타일.. (이타적인 걸로 치면.. 여태껏 본 선수중 가장 이타적 같음)

이러한 점을 고려해야 함..


만약 어시스트 기록이 남아있었다면..
득점 숫자를 능가하는 어시스트가 있었을 것 같음..

------

차범근 경기를 보며 그때도 그랬고.. 현재도 비판하는 점중에 이런 것도 있음..

-> 개인기가 부족하다. 수비수를 제치고 돌파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단순 주력으로 돌파다..

이러한 비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증명되지 않는다..

물론.. 발재간이 매우 뛰어나다면.. 수비수를 제치고 개인기를 뽐내는 경우가
왕왕 보였을 것이지만..

다만.. 내가 차범근에 대한 이러한 비판에 대해 다소 회의를 품는 이유는..

차범근 플레이 스타일을 보건데..

지극히 개인 플레이를 삼가고.. 팀 조직플레이에 매진하는 스타일을 신봉하는
선수이니.. 불필요한 동작은 안하고.. 괜히 공뺏길 필요 없이..
돌파 안하고 다른 선수에게 공을 패스하는 식의 플레이를 주로했다는 점이다.

사실.. 차범근이 공잡아서 공 뺏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무튼.. 위에 득점 숫자와 더불어.. 개인기 부족 문제도..

차범근의 이타적.. 조직력 우선 플레이 스타일을 감안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란 점이다..


차범근이 과거 70년대 국대시절에도
절대 공을 잡고 끄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허정무가 비판받았던게 공을 너무 끌다가 공을 뺏기거나.. 경기흐름을 끊거나.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는데..

차범근의 플레이는 항상 간결했다. 잡으면 속공 돌파를 하던지
막히면 보다 좋은 위치에 패스를 하던지.



내가 얼마전 차범근이 말레이지아전과의 석점 몰아넣는 플레이를 예를 든 게 바로 그 때문이다.

이러한 차범근이가 간결한 조직 우선의 축구에서 탈피해서
매우 개인적인 플레이를 감행했던 매우 드문 케이스가

말레이지아전 후반 20분간이기 때문이다.

공을 잡아 패스를 안하고 혼자서 다하는 크레이지 20분간.

그 장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차범근이가 발재간도 장난이 아니구나..

느꼈을 것이다.

차범근이 발재간 안부린 것은

못부린게 아니라 불필요하니 안부린 것이고..


차범근이 득점 수가 적은 것은


득점을 못넣어서가 아니라
무리한 득점 욕심을 안부려서 그런 것이다.


30년후 여기 게시판에선 박주영>>박지성이 될듯. [2]
노바디 추천 1 | 반대 2 | 조회수 80 | 2011.05.24


그러기 아주 쉽다.

남는거라곤.. 숫자고 데이터니까.

박주영이 넣은 득점숫자가 훨신 많을 거거든


작금 30년 전의 차범근을 보지도 못한 넘들이

비하하는 걸 보니..

뭐.. 구체적으로 머라 표현하기 힘든..기록이 별로 없는...

출장도 별로 없는..

박지성이의 30년후 평가가 ..

참 걱정된다.


그때 아무리.. 박지성 본 사람으로서.. 이러쿵 저러쿵 잘했어 해봤자.

뭐 말이 통할 거 같나? 니넘들 같은 먹통들이 고집 피우는데?


그때는 지금같은 빅리그 빅팀 체제가 다시..

과거처럼.. 각팀 각리그로 우수선수가 분산되고

상위팀 후보보다는./. 하위팀 주전이 더 우수했던 과거로..
돌아가게 되면..


그때가서.. 최고 명문 맨유드립질 전혀 안통할테고..

맨유에서 선발도 불투명한 선수 딱지나 남겠지.

그런 식이면.. 이청용보다 훨씬 못한 선수로 박지성이 평가되기 쉬워..

과거 기준이면..

1위팀 맨유 불투명 주전 박지성보다는

중위권팀 선발 이청용이 훨씬 좋은 선수였거든.



차범근 득점이 허접하다고?????
노바디 추천 0 | 반대 2 | 조회수 49 | 2011.05.24

차범근 플레이 영상이나 보고 좀 평가하길..


차범근이 스트라이커 포지션인건 맞는데..

타겟형 오는 공 줏어 넣는 골게터하고 비교질 하면 무의미하지..


원래 했던게 라이트윙 포지션이고.. 70년대 국대에서 센터포드 자리가
비어서..

차범근이 센터포워드를 하게되었는데

그후로..독일가서도 쭈욱.. 센터를 하긴 했지만.

늘 스타일은 윙포워드였다...


득점숫자 비교에 어시스트 기록이 같이 남아있다면../
보다 차범근에 대한 정확한 기록 평가가

가능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가령. 290게임에
98득점에 98 어시스트라면.. 과연 그렇게 허접한 기록일까?

차범근 스타일상 어시스트가 득점 만큼 많았을 거란 가정에서 쓴 글이다..

사실 그 이상 될지도 모르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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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좀보고 15-10-23 20:47
   
말레이시아전 한번 보고싶네요.
아안녕 15-10-23 20:54
   
그 경기를 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서...
     
셀시노스 15-10-23 20:59
   
당시 어려서 그 경기를 풀은 아니지만 넋놓고 후반들어 골을 넣는 장면은 봤었네요 것두 3골

하나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우리 진영에서 공을 잡고 외곽으로 치달해들어가는데 센터아클 지나면서부터는

말레이 선수들이 못따라 잡더라구요 100미터 11초F 의 주력이 어딜 따라잡히겠나요

그걸 골문으로 쑤셔넣는데..

그런 비슷한걸 한번 더했던것 같습니다.

한골은 생각도 안나고 3골인가 4골 넣은 걸로

기억하는데 3골이라니 그런가보다 합니다.
          
아안녕 15-10-23 21:05
   
재능...
               
셀시노스 15-10-23 21:11
   
독일에서도 갈색폭격기라는 별명이

그냥 힘(허벅지)+주력+드리블실력 이 겹쳐져서 상대방 진영을 폭격을 하고 허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winston 15-10-24 00:51
   
개막전이었을 거예요.. 박스컵
저는 첫골만 기억나요.. 나중에 4:4 돼서
아나운서 흥분하던거 기억나고...
당시 저에게 차범근이란... 빠른 주력정도..
그리고 골 넣다하면 거의 차범근이었던 기억.

나중에 녹화로 mbc에서 이철희 주영광 해설로 해주던
분데스리가 보면서 아 개인기도 있구나 하고 느꼈죠..

그러다 최근들어 올라오는 유튜브 영상 보면서
엥 저 정도였어? 하고 놀랐죠.

아뭏튼 국내에서는 축구하면 차범근 이었고
서독(당시)에서는 갈색폭격기...
꾸암 15-10-23 21:13
   
차범근..찾아보니53년생이네요.6.25끝난시점 경기화성.공이나 제대로있고 찰시간이나 있었을까요.
한국이 70년대까지(프로생기기전)잔디구장이라곤 동대문운동장 효창운동장(인조잔디로앎)두개로알고있는데
그러니까 어렸을때부터 평소연습은 물론 왠만한대회는 맨땅에서했던걸로압니다.태클은생각도 못하고 잔디에서의 축구화나 개인기, 패싱등 이중적으로 적응해나가야하는 시절로 기억합니다.
     
동경갈매기 15-10-24 03:37
   
꾸암님 글 잘보고 있습니다. 축계는 늘 눈팅만 하는 스타일이라
제 기억엔 (제가 좀 나이가 있습니다) 효창구장에서는 늘 진흙탕경기 한것만 기억나네여
그것도 중고생들이... 학생들은 동대문을 꿈도 못꾸던 시절이었죠

효창이 인조잔디로 바뀐게 86인가88때인걸로 아는데
그때 축구하던 학생들.. 지금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하죠